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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3.20.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루카19,28-40 이사50,4-7 필리2,6-11 루카22,14-23,56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요한19,5)"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교회의 전례주년 가운데 정점을 이루는 성주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부활은 물론 우리의 부활을 준비하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복음 이야기는 광야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를 주며 자신에 대해 깊이 들여다 보게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과연 ‘어떻게 살아야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에 앞선 근원적 물음입니다. 이런 생각중 떠오른 말씀이 요한복음 19장 5절 말씀 ‘이 사람을 보라!’ 였습니다. 이 말은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를 채찍질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씌운 뒤 성난 무리 앞에서 예수를 가리키면서 말한 대사입니다. ‘이 사람을 보라!’ 대신 라틴어 원문 ‘에케 호모(ecce homo)’역시 마음에 강렬히 와 닿습니다. 십가가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마다 꼭 이 구절을 되뇌시기 바랍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마지막 저작의 이름 도 ‘에케 호모(1988년에 쓰여져 1908년 출판됨)’입니다.


사람 하나 만나고 싶은 세상에 우리는 오늘 인류의 유일한 참 사람이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참 사람 예수님의 거울에 환히 드러나는 나의 실상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오늘 수난 복음의 모두를 환히 비추어주는 예수님이 온 세상을 심판합니다. 심판 받는 예수님이 역설적으로 모두의 진실을 폭로하며 심판합니다. 예수님의 평소 삶의 진면목이 환히 드러납니다.


첫째,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man of prayer)’이었습니다.

삶이 혼란하고 복잡한 것은 기도하지 않은 탓입니다. 기도해야 삶의 하느님 중심과 질서를 잡고 참 나를 발견하여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기를 읽으며 마음에 와닿은 것이 예수님의 깊은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아버지와 깊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셨기에 수난과 죽음에 여정에 항구할 수 있으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는 말씀이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어 다음 감동적인 기도문들을 통해 예수님의 내면이 환히 드러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는 제자들을 향한 권고 역시 감동입니다.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무지의 죄이자 병이 이토록 무섭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르고 악에 가담하여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큰 소리로 기도하시며 숨을 거두십니다. 그 광경을 보고 백인대장은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고백하며,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갑니다.


기도해야 살고 살기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무지의 눈이 열려 참 사람 예수님을 봅니다. 점차 예수님을 닮아가 우리도 비로소 참 사람이 됩니다.


둘째, 예수님은 ‘비움의 사람(man of kenosis)’이었습니다.

비움의 여정은 겸손의 여정, 순종의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워갈 때 텅 빈 충만의 행복입니다.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은 날마다 자기를 비우는 여정에 항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삶의 모든 병고나 시련의 어려움에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 모두를 비움의 계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전화위복이요 모든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2독서 필리비서의 찬미가를 통해 비움의 사람 예수님의 면모가 환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비움, 낮춤, 순종의 자리에서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셋째, 예수님은 ‘침묵의 사람(man of silence)’이었습니다.

침묵 역시 기도입니다. 말한다고 다 소통이 아닙니다. 때로는 침묵이 깊은 소통에 이르게 합니다. 말로 인해 파생되는 오해는 얼마나 많은지요. 예수님은 말과 침묵에 있어 분별의 대가였습니다. 헤로데의 심문시 이것 저것 캐물어도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않으시고 침묵으로 대신하십니다.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나오는 이사야서 말씀이 침묵의 사람, 예수님의 고백같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주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들으라 침묵입니다. 이런 침묵의 기도를 통해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니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확신도 생깁니다. 하느님은 늘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아신다는 전적 신뢰가 이런 침묵을 가능하게 합니다.


넷째, 예수님은 ‘섬김의 사람(man of service)’이었습니다.

오늘 수난 복음은 최후만찬으로 시작됩니다. 미사의 원형인 최후만찬을 통해 섬김의 사람 예수님의 진면목이 환히 계시됩니다. 영원히 성체성사 미사를 통해 믿는 모든이들을 섬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최후 만찬 후 누가 제일 높으냐로 다툼이 일어난 동상이몽의 오합지졸 당신 제자공동체에 섬김의 삶을 살 것을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는 결코 소수 정예의 엘리트 공동체가 아니었음을 깊이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은 모든 믿는 이들의 공동체의 중심에 섬기는 사람으로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에게 직무가 있다면 섬김의 직무 하나뿐이요 리더십이 있다면 섬김의 리더십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연민의 사람(man of compassion)’이었습니다.

비움의 자리에 가득한 연민의 마음입니다. 불쌍히, 측은히, 가엾이 여기는 연민의 마음 자비심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연민의 바다같은 마음입니다. 오늘 수난기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지요. 참으로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악의 유혹에 빠져 휘둘리는 사람들 한 복판에 연민의 사람 예수님은 일체의 판단 없이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시 환영하던 군중은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광분하였으며 철부지 제자들은 당신 수난예고에도 자리를 다퉜습니다. 유다는 배신했고 베드로은 세 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주님 때문에 울었던 예루살렘의 딸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짐을 잠시 덜어준 키레네 사람 시몬도 있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의 주님을 유혹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사탄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옆의 한 죄수는 예수님을 비아냥 댔지만 회개한 죄수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청했고 즉시 응답을 받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24,43).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이들 모두를 판단 분류함이 없이 연민의 품에 안으십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심판하는 것 같지만 예수님 한 사람이 온 세상을 심판합니다. 예수님 앞에 모두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의 수난현장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까요? 오늘 수난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화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회개하여 당신을 닮은 참 사람의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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