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나의 목자-2016.4.17.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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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17. 부활 제4주일 (성소 주일) 

                                                                                 사도13,14.43-52 요한묵7,9.14ㄴ-17 요한10,27-30


                                                                         주님은 나의 목자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아주 예전 어느 분의 묘비명 부탁에 써드린 시편 23장 1절 말씀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비명이기도 합니다. 참 정답고 위로가 되는 성구입니다.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 또는 착한 목자 주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지체없이 ‘주님은 나의 목자’로 택했습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시편도 한껏 흥겨움을 더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것, 당신 백성이어라. 기르시는 양떼이어라.”


이런 짧은 시편 성구의 화답송 후렴은 가사에 곡을 곁들여 ‘끊임없는 기도’로 바쳐도 아주 좋은 기도입니다. 어제 일간신문에서 감명깊게 읽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관한 기사를 소개합니다.


-교황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앞에는 열두 명의 난민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지난달 부활절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로마 외곽의 난민센터를 찾았을 때 일이다. 교황은 천천히 성수를 붓고 두 손으로 그 발을 감싸 쥔 채 입을 맞췄다. 난민 중에는 무슬림과 힌두교도, 콥트교 신자도 있었다. 벨기에 브뤼셀 테러 사건으로 난민과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던 시점이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식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평화 속에서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표정 변화가 없던 난민들의 볼 위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교황은 난민 센터를 떠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문화와 종교와 전통이 달라도, 형제자매로 함께 사는 것의 아름다움을 기억해 주세요.”-


교황님에게서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모습을 뵙는 듯 합니다. 착한 목자 주님을 닮을 때 이런 모두를 향한 열린 마음입니다. 깊고 넓게 보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안에 한 형제들입니다. 무엇보다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착한 목자 하느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린 착한 목자 영성은 우리 모두가 평생 배워야 할 영성입니다. 각기 불린 성소의 은총은 다 달라도 모두가 지녀야 할 ‘열림의 영성’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복음 선포에 충실한 삶에서도 착한 목자 영성이 반영되고 있음을 봅니다. 


‘많은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따라오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이야기하며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였다.’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라 권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한 사실에서 두 사도의 열린 마음을 읽습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 집착함이 없는 활짝 열린 영혼들이 바오로와 바르나바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에게 돌아섭니다.”


박해로 쫓겨 나면서도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합니다. 착한 목자 영성은 주변 모두에게 활짝 열린 영성이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영성입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주어진 역할의 과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100% 하느님 손에 달린 듯이 기도하고, 100% 내 손에 달린 듯이 노력하는  진인사대천명의 영성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착한 목자 주님은 기쁨과 성령의 선물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시며 더욱 당신을 닮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착한 목자 주님의 양떼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과연 착한 목자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관계인지요. 각자 제 삶의 자리에서 제 고유의 성소에 충실하는 것도 착한 목자 주님과의 관계에 달렸습니다. 오늘 복음은 비록 짧지만 착한 목자 주님과 그분의 양들인 우리의 관계가 잘 드러납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선언하신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과연 착한 목자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항구히 주님을 따르는 삶인지요. 주님은 우리를 알고 우리 역시 주님을 알 때 영원한 생명의 선물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이 하나이듯이 우리의 예수님과 상호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 자체가 영원한 생명입니다. 세상 그 누구, 그 무엇도 이 하나됨의 사랑의 일치를 갈라 놓을 수 없습니다. 문득 떠오르는 바오로 사도의 열화와 같은 고백입니다.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 모든 시련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이런 착한 목자 주님과 일치의 관계가 내적 힘의 원천입니다. 오늘 요한묵시록을 통해 착한 목자 예수님과 그를 평생 항구히 추종했던 우리의 미래가 환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 서 있는 이들’이 가리키는 바, 바로 우리의 미래 모습입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일상의 크고 작은 환난과 시련을 통해 착한 목자 주님의 은총으로 정화되고 성화된 깨끗해진 영혼들의 모습입니다. 다음 아름다운 묘사 역시 그대로 우리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되는,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미리 맛보는 천상비전입니다. 평생 착한 목자 주님과 일치의 삶을 추구하며 항구히, 충실히 그분을 따랐던 우리의 미래입니다. 부활하신 착한 목자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며 당신과 사랑의 일치를 깊이 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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