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16.연중 제20주간 화요일 에제28,1-10 마태19,23-30
하늘 나라의 삶
-참 부자의 삶-
부자가 되는 방법을, 하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되면 누구나 될 수 있는 부자 체험, 하느님 체험,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누구나 영적부자, 내적부자로, 하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 부자입니까? 누가 진정 내적으로, 영적으로 부자입니까? 누가 하늘 나라의 삶을 사는 자입니까? 행복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기뻐하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희망 가득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부자입니다. 평화로운 사람이 부자입니다.
소유의 삶이 아닌 존재의 삶을 사는 이들이 참 부자입니다. 이런 이들이 오늘 지금 여기 하늘 나라의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하는 하늘 나라입니다.
아무리 권력과 재물을 지녔어도 내적으로 행복하지도 평화롭지도 못하다면, 기쁨과 희망이 없다면 진정 부자라 할 수 없습니다. 하늘 나라의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부자되는 첩경의 길을 보여줍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이런 이들이 부자입니다. 하늘 나라의 행복을 사는 이들입니다. 어제 하루 내내 행복했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간혹 이런 체험을 합니다. 행복의 나눔, 축복의 나눔, 사랑의 나눔입니다. 어제 성모 승천 대축일, 참으로 많은 지인들과 ‘성모님 아침인사’란 제하의 사진을 카톡으로 나눴습니다. 하나하나 성모님의 축복을, 성모님의 사랑을 나누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눴습니다.
아침 기도후 성전 창살을 통해 들어온 빛과 조화되어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성모상을 순간 포착하여 찍은 사진입니다. 수도원의 성모님은 수도원 창고 공사 때, 베어낸 오동나무를 신심 깊은 조각가 형제가 친히 한국적 풍취가 물씬 나는 성모상으로 조각하여 새 성전 건립과 더불어 설치한 것입니다.
결론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없이, 하느님 없이는 부자로 사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나눔의 영감은 분명 성령의 은총입니다. 재물과 권력의 소유로, 세상 잡사雜事들로 인해 하느님을 잊어 교만해 지면 행복도 끝입니다. 오늘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이 좋은 교훈입니다.
“사람의 아들아, 티로의 군주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의 자리에, 바다 한 가운데에 앉아 있다.‘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에 비긴다. 너는 큰 지혜로 장사를 하여 재산을 늘리고는, 그 재산 때문에 마음이 교만해 졌다.”
영혼의 질병같은, 내적부자가 되는 데 최대의 걸림돌인 교만과 탐욕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잊으면 필시 그 마음에 자리 잡는 교만과 탐욕입니다. 이들이 주는 것은 기쁨과 평화, 희망과 행복이 아니라 파괴와 죽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말하는 부자는 바로 탐욕의 사람을 지칭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 눈 먼 탐욕, 교만입니다. 소유와 함께 가는 부자의 탐욕과 교만이요 더불어 하늘 나라도 실종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탐욕의 본능은 이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빈자貧者라 하여 하늘 나라 무사 통과입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을 잊어 그 마음에 욕심이 가득하다면 하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부자라 하여도 하느님 중심의 나눔의 삶으로 마음이 텅 비워져 있다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바로 다음 제자들과 예수님간의 문답이 이에 답을 줍니다.
제자들;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예수님;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느님 은총의 기적으로 회개하여 자기를 버릴 때, 비울 때, 비로소 누구에게나 열리는 하늘 나라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드러나는 축복이 놀랍습니다. 제자들처럼 문자 그대로의 추종을 주님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 충분합니다. 어제 읽은 주석의 한 대목도 생각납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유식한자와 무식한 자, 힘있는 자와 별볼일 없는 자, 모든 이들의 삶은 눈깜짝 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운명은 ‘다른 손(Other hands)’에 달려 있다. 하여 우리가 이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의 행복과 마음의 평화는 더욱 좋아질 것이다.”
영원히 ‘살아있는 보물’이신 주님을 따를 때 저절로 세상 것들로 부터의 이탈과 더불어 탐욕과 교만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주님으로부터의 보호입니다. 내외적으로 비워질수록 가득해 지는 기쁨과 평화의 선물이요 자유로운 삶입니다.
하느님이신 주님만을 믿고 희망하며 사랑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행복한 삶,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내적부자가 되어 하늘 나라의 기쁨과 평화를 살게 하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눈만 열리면 오늘 지금 여기 우리 삶의 자리가 주님의 집, 하늘 나라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