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우리의 영원한 배경背景이시다 -자연 배경, 공동체 배경-2016.9.27. 화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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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27. 화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욥기3,1-3.11-17.20-23 루카9,51-56


                                                           하느님은 우리의 영원한 배경背景이시다

                                                                                           -자연 배경, 공동체 배경-


오늘의 강론 제목은 ‘하느님은 우리의 영원한 배경이시다’입니다. 배경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웬지 쓸쓸하게 느껴지는 올 가을입니다. 자연 배경의 빈약함 때문입니다. 올 여름엔 메꽃, 달맞이꽃등 야생화 풍경이 초라했고 능소화꽃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미소리도 유난히 약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예전 이 때쯤이면 한창 영롱하게 울려 퍼지던 풀벌레 소리들도 거의 들리지 않는 적막한 가을밤입니다. 하느님 배경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자연배경이 많이 빈약하게 느껴진 올해입니다.


콘테이너로된 원장집무실 공사후 잠시 들렸다 입구문벽에 붙어있는 시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올해 4월 22일 원장에게 선물한 ‘배경의 사랑은 이런 것’이란 자작 애송시였습니다.


-수도원 배경의/신록新祿/연록軟綠/초록草綠

 온갖 색깔의 생명生命으로 충만充滿한 

 불암산

 무언無言의/축복祝福/환호歡呼/격려激勵/응원應援

 배경의 사랑은 이런 것-2016.4.22. 아침


원장직에서 물러난 후 제 소망을 담은 시인데, 이를 좌우명座右銘 삼아 살려는 원장수사의 마음이 느껴져 순간 감동했습니다. 진정 이상적 배경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 배경의 사랑은, 공동체 배경의 사랑은 이러합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은 제1독서 욥기입니다. 갈수록 욥의 점증하는 고통입니다. 욥기 주석의 첫 단락의 글이 참신했습니다.


-욥기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알려지 바와는 달리, 불의한 고통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것도,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우리가 욥기를 읽는 궁극의 목적도 우리의 영원한 배경이신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각자의 제자리를 찾기위함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하느님 배경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욥의 환경입니다. 하느님의 철저한 침묵입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침묵에 답답해 할까요. 바로 오늘 욥기 독서 앞에 나오는 욥의 아내와 욥의 대화가 인상적입니다.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


비수같이 아픈 살인적인 말입니다. 이에 대한 욥의 답변을 통해 드러난 그의 믿음이 감동입니다.


“당신은 미련한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


욥기는 이어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기술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욥기 전편을 통해서도 욥은 극한적 고통의 상황속에서도 환경만 탓할뿐 결코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고 하느님 앞에서 끝내 제자리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아내와의 시련후에 세 친구의 방문입니다. 


욥을 방문한 세 친구들은 이레 동안 밤낮으로 그와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합니다. 욥의 고통이 너무도 큰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친구들 앞에서 펼쳐지는 욥의 독백의 탄식입니다. 생일을 저주하고, 차라리 죽기를 소원하는 욥이요, 왜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셨는가에 대한 항의로 이루어진 오늘의 독서입니다.


저절로 ‘하느님은 어디에게 계신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답은 욥과 함께 계신 하느님입니다. 침묵의 배경이 되어 욥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순간적 깨달음은 세 친구들은 바로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세 친구의 배경이 없었다면 욥이 죽음과 같은 침묵과 고독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종일관 세친구들과의 주고 받은 문답을 통해 고통의 극한 상황을 통과한 욥입니다. 새삼 세 친구들은 하느님이 파견하신 배경의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탄식의 독백으로라도 자기를 표현하지 못했더라면 욥은 참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세 친구들과의 주고 받은 문답 내용을 침묵의 배경이 되신 하느님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었을 것입니다. 흡사 욥의 독백은 하느님께 바치는 탄식의 기도처럼 들립니다.


“어찌하여 그분께서는 고생하는 이에게 빛을 주시고, 영혼이 쓰라린 이에게 생명을 주시는가?”


욥의 독백을 통해서도 빛과 생명의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배경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 배경입니다. 세 친구들의 공동체가 욥의 구원의 배경이 되어 주었듯이 오늘 복음의 제자공동체도 예수님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아니 서로가 배경이 되어주는 역동적 공동체의 상황입니다. 예수님의 배경이 된 제자들, 또 제자들의 배경이 된 예수님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되자 제자들과 함께 발걸음을 서둘러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을 때 제자들과 예수님의 주고받은 문답은 역동적 상황의 절정입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야고보와 요한의 생각없는 무모無謀한 언행을 꾸짖으시고 다른 마을로 향하는 지혜롭고 권위있는 배경의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열심한 제자들의 배경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운신의 폭도 퍽이나 좁았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께 크게 꾸중을 들었지만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이 중요한 순간마다 대동한 주님의 삼총사였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배경이신 주님과의 끊임없는 생명의 소통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친히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빛의 배경이심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시편107.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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