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2016.10.4. 화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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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4. 화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기념일 

                                                                                                                             갈라1,13-24 루카10,38-42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축일이자 제 영명축일이기도 합니다. 어제 저녁식사때는 수도원에 머물고 있는 안동교구 정영훈 프란치스코 부제와 함께 수도형제들의 따뜻한 축하도 받았습니다. 형제애를 실감나게 확인하는 것이 축일맞이 저녁식사때요 식사후 형제들 각자와의 진한(?) 축하 포옹입니다. 한 형제는 가을의 들꽃들 가득 담긴 꽃꽂이도 선물 해줬습니다.


매년 영명축일을 맞이할 때 마다 떠오르는 말마디는 ‘하느님을 찾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을 찾아온, 또 찾게 될 여정을 저절로 성찰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는 여정은 동시에 회개의 여정이자 하느님께 점차 가까워지는 여정을 뜻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종파를 초월하여 가장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이요 성인의 삶 역시 하느님을 찾는 여정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톨릭으로 오기전 개신교에 다닐 때 알았던 가톨릭의 성인은 프란치스코 한 분이었고, 처음으로 안 수도회도 베네딕도 수도회 하나뿐이었습니다. 가톨릭에 온 후 세례명은 물론 수도명은 지체없이 프란치스코로 정했고, 이어 1982년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세월 지나고 나니 새삼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밖으로는 山/안으로는 江

 천년만년千年萬年 임 기다리는 산/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


자주 되뇌는 제 자작 애송시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찾는 여정을 상징하는 시입니다. 정주定住의 산은 정주의 수도승 성 베네딕도를 닮았고 끊임없이 흐르는 강은 탁발 수도자 성 프란치스코를 닮았습니다. 하여 위 시를 다음과 같이 읽으며 베네딕도 수도회 안에서 프란치스코 수도사제로 살고 있는 제 신원을 확인하곤 합니다.


“밖으로는 베네딕도/안으로는 프란치스코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베네딕도/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프란치스코”


마침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의 절묘한 보완관계를 연상시키는 시입니다. 두분 다 색깔은 다르지만 똑같이 하느님을 찾는 여정의 모범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성인같은 교황님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와 독서의 바오로도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우리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바오로의 하느님 찾는 삶의 여정은 참 극적이며 비상합니다. 다음 고백이 그의 흔들림 없이 여정에 항구할 수 있었던 내적체험의 비밀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 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보십시오.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문장의 주어 역시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주도하시어 바오로의 여정을 인도해주셨듯이 우리 또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오늘 지금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내가 수도원에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 친히 부르셨고 보내셨음을 깨닫습니다. 축일을 맞이하여 언젠가 강론에서 밝혔던 제 세가지 소원을 다시 확인합니다.


1.죽는 날까지 요셉수도원에 정주하는 것.

2.죽는 날까지 매일 강론을 쓰고 미사를 봉헌하는 것.

3.죽는 날까지 메테세콰이어 가로수길, 수도원길, 하늘길을 걸으며 기도하는 것.


저뿐만 아니라 우리 수도형제들에게 하느님은 모두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평생 끊임없이 ‘하느님의 일’인 성무일도를 바치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에게 하느님은 우리 삶의 존재이유이자 모두일 수뿐이 없습니다. 문득 산악계의 전설인 이탈리아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첫 방한한 후 인터뷰 한 대목도 화두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산이라는 현실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요. 그 산은 ‘불확실’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신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며 환상입니다. 불변의 진리는 자연에 있고, 행복은 산의 정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발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발견입니다. 아직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의 반응입니다. 새삼 발견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불변의 진리는 하느님께 있고, 행복 역시 하느님께 있다는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은 평범합니다. 바로 마리아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을 섬기는 모범을, 환대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우선적인 것이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매일의 회개의 시스템 같은 일과표에 충실하여 성전에서의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회개의 여정에, ‘회개의 일상화日常化’에 이보다 더 좋은 평범한 수행은 없습니다. 주님은 마르타의 불평에 마리아가 옳았음을 판정해 주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마르타의 수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아 주십니다. 필요한 것 한가지 좋은 몫은 하느님을 찾는 일이요, 주님이 바라시는 대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주님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저절로 염려와 걱정은 줄어들고 삶은 단순해지며 깊은 내적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평범하나 가장 좋은 회개의 수행이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마리아와 함께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복된 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온갖 좋은 것을 다 베풀어 주십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루카11,28).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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