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행복 -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2016.10.8.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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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8.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갈라3,22-29 루카11,27-28


                                                                                  참행복

                                                                  -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에서 영감을 받은 열정으로 길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도는 짧고 순수해야 한다고 사부 성 베네딕도는 말씀하십니다. 말이든 글이든 짧고 순수해야 좋습니다. 아주 예전 선배 신부님이 뉴튼 수도원에서 영어강론후의 주고받은 유우머를 잊지 못합니다.


"신부님, 강론 참 좋았습니다."


반색을 하며 무엇이 좋았는가 묻는 신부님에게, '짧아서 좋았습니다.'라는 어느 수사님의 답변에 신부님의 씁쓸한 미소와 수사님들의 폭소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오늘 성무일도 아침 세번째 시편도  단 두절로 너무 짧아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뭇나라 백성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온 세상 사람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


오늘 복음이 짧고 주제도 선명하여 좋습니다. 단 두절에 소제목도 ‘참행복’입니다. 하여 강론 제목도 ‘참행복-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로 정했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바 행복입니다. 행복은 인간의 궁극목표입니다. 참으로 행복할 때 자유롭습니다. 행복할 때 살아있는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마다 행복도 저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진정한 참행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은 참행복의 소재를 밝혀 줍니다. 아주 단순명료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군중 속의 어떤 여자가 예수님께 하는 말은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적 마음을 반영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의 즉각적 대답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이렇게 두절로 끝나는 오늘의 복음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행복이라는 무수한 시편의 고백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갈 때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닮아가는 참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친히 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참행복을 사셨습니다.


참으로 평범한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누구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 참행복이니 말입니다. 멀리있는 행복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하는 행복이요, 평생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하는 평생수행의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말씀 실행을 통한 위로와 치유요 정화와 성화에 따른 참행복입니다. 새삼 말씀의 힘은 하느님의 힘임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생각난 것이 우리 수도자의 기본적 수행인 렉시오디비나 성독입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생활화가 평생 참행복을 보장해 줍니다. 잘 아시다시피 렉시오디비나의 구조는 ‘들음-묵상-기도-관상’으로 이루어진 통합적, 전인적 성서독서법입니다. 여기다 행함을 더하면 4단계는 ‘들음-묵상-기도-관상-행함’의 5단계가 되고, 렉시오디비나는 삶 전반으로 확대되어 비로소 렉시오디비나의 생활화가 이루어 집니다. 사실 옛 수도승들은 끊임없이 기도하며 이렇게 살았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는 세가지 렉시오디비나입니다. 1.성경독서의 렉시오디비나, 2.자연성경의 렉시오디비나, 3.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디비나입니다. 저는 성경의 범위를 넓혀 자연도, 내 삶도 성경에 포함시켜 렉시오디비나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런 삶 전반에 걸친 렉시오디비나의 수행으로 참행복의 성취요 관상적 삶입니다. 이래야 참 풍요롭고 부요한 참행복한 삶입니다. 참으로 평범하고 건강한, 성경에 바탕한 관상적 삶을 이뤄주는 렉시오디비나의 생활화입니다. 비단 신구약성경에 멈추는 렉시오 디비나가 아닙니다. 매일의 공동시편성무일도 시간도, 이 거룩한 성체성사 시간도 일종의 렉시오디비나 시간입니다. 


그러니 렉시오디비나의 생활화보다 참행복의 관상적 삶에 도움이 되는 수행은 없습니다. 이렇게 신구약성경의 렉시오디비나가 전 삶에 확산되어 정착되는 것이 바로 렉시오디비나의 궁극목표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옛 교회의 교부들입니다. 서방의 4대 공교부인 예로니모,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대 그레고리오 교황, 모두가 렉시오디비나의 대가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와의 육친관계와 대립시키면서까지 신앙의 위대함을 선포하십니다. 이 선포의 대상은 모든 신앙인입니다. 루카는 이 구절에서 마리아에 대하여 무슨 평가를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루카복음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묵상하며 살았던 전형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바로 성모마리아 역시 참행복을 살았던 렉시오디비나의 대가였습니다. 


성모마리아만 아니라 1독서의 갈라티아서의 저자 바오로 사도 역시 렉시오디비나의 대가이자 관상의 대가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다음 바오로의 갈라티아서의 깨달음은 깊은 렉시오디비나 관상의 열매임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이 거룩한 성체성사시간 역시 그대로 ‘들음-묵상-기도-관상’이 한 셋트가 실현되는 참행복의 렉시오디비나 시간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임을 깨닫게 하시고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루카11,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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