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6.11.1. 화요일  모든 성인 대축일(All Saints)

                                                                                             요한묵7,2-4.9-14 1요한3,1-3 마태5,1-12


                                                                              희망성월

                                                               -우리는 모두 성인들입니다-


교회의 전례가 참 고맙습니다. 오늘 11월 위령성월의 첫날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하늘과 땅위의 모든 성인들을 기리는 잔칫날입니다. 전 감히 위령성월을 희망성월로 부릅니다. 하늘나라 희망의 창문을 활짝 열어준 모든 성인 대축일 때문입니다.


사방의 희망의 문이 닫혀 답답한 곳이 지옥입니다. ‘미래가 없다’ ‘희망이 없다’라는 말이 요즘 회자되는데 사실 그렇다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우리는 감히 ‘하느님이 미래다’ ‘하느님이 희망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 무아의 집 사제관 출입구 문을 열었을 때의 확트인 아름다운 전망을 통해 ‘아, 하늘 나라 희망은 이런 것이구나!’ 깨닫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희망의 창이 활짝 열린 11월은 희망성월이라함이 마땅합니다. 11월 첫날 하느님께서는 오늘 모든 성인대축일에 우리 모두에게 하늘 나라 희망의 창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자 대축일 미사잔치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위에 있는 모든 성인들만 아니라 우리 역시 이미 성인들입니다. 깨달아 눈만 열리면 우리 모두 이미 성인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성인임을 깨달아 사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어제 저녁식사하면서 ‘도대체 왜 사는 가?’ 자문하면서 나온 대답이 성인이 되기 위해서란 답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가는 여정이 아니라 이미 성인임을 깨달아가는 여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성인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본래의 고유한 나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삶의 의미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성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와 비교할 것도 없이, 누구를 부러워할 것도 없이 본래의 나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라고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숨돌릴틈 없이 쏟아내는 사도 요한의 고백은 바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인 성인이라는 것입니다. 하여 그분께 이런 희망을 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묵시록은 우리의 희망을 실체를 환히 계시해 줍니다. 하느님은 요한 사도를 통해 천상세계의 창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권에서 나온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손에는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서 어좌 앞에 또 어린양 앞에서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성인들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 


“구원은 어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의 것입니다. 아멘, 우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힘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하늘 어좌 곁의 성인들과 천사들의 하느님 찬양과 경배에 화답하여 지상에 있는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중에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림으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됩니다. 이어 천상 원로는 성인들의 정체를 밝혀 줍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내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 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세상 온갖 시련과 환난을 믿음으로 승리한 성인들, 그대로 하느님의 승리를 상징합니다. 어린양의 성혈로 죄로 얼룩진 우리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요한은 계속 성인들이 누리는 영원한 행복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요한묵7,16-17).


바로 이 것이 우리의 영원한 희망의 정체입니다. 이미 이런 천상세계의 희망과 기쁨을 앞당겨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인다운 삶을,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바로 오늘 복음의 참행복의 진복팔단이 그 답을 줍니다. 


성인들은 모두 이렇게 살았습니다. 구약의 모세의 십계명을 능가하는 진복팔단입니다. 참행복의 진복팔단을 실천해야 성인이, 예수님의 제자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 때 이미 오늘 여기서 실현되는 하늘나라입니다.


1.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을 앎으로 전적으로 하느님께 위탁한 겸손한 이들입니다. 

2.온유한 이들은 타인의 아픔에 깨어있어 배려와 연민과 부드러움으로 이웃의 아픔을 돌보는 이들입니다.

3.슬퍼하는 이들은 그들이 속한 사랑의 그리스도공동체로부터 위로를 확신하는 이들입니다.

4.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들은 무슨 대가를 치르든 이웃이 존엄과 자기존중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투신한 이들입니다.

5.자비로운 이들은 주변 모든 이들에게 자비와 용서를 베푼 사람들입니다.

6.마음이 깨끗한 이들은 성적 깨끗함이 아니라 단순하고 위선이나 편견, 선입견이 없는 마음 순수한 사람들로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은 너무나 자명한 현실이 됩니다.

7.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개인이나 단체간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모든 장벽을-계급, 직업, 인종, 종교등- 허무는 사람들입니다. 

8.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생존 너머 진리와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다 박해를 받는 용기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성인들은 이렇게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행복을 사셨습니다. 참행복은 한두번의 행동이기 보다는 하느님께 활짝 열린 근본적 삶의 자세를 뜻합니다. 아무리 이렇게 참행복을 살려해도 언제나 부족함을 느낄 것이며, 결코 이들을 완전히 살아낼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겸손히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하는 길뿐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위의 참행복이야 말로 성덕의 진짜 믿을 만한 처방입니다. 성인들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보여준 하느님의 사랑에 관대하게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성인들은 늘 깨어 부드러운 마음, 따뜻한 마음,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 은총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한 번 자신의 성덕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기본 점수 20점에 참행복 8개 항목당 10점 만점으로 도합 80점, 합하여 100점 만점에 내 성덕 점수는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백성사때 죄를 성찰할 때도 참행복의 진복팔단의 참고는 필수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모든 성인들 대축일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성인들임을 깨달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순교복자수도회의 창립자이신 무아 방유룡 성인신부님의 죽음을 앞둔 고별노래의 일부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이제 나는 떠나가네/죽지 않고 떠나가네

 시공넘어 은하건너/길이길이 살러가네

 믿음이 죽지 않는다면/하물며 사랑이야

 사랑은 사랑으로가/그립든 그분을 모신다네.”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80 희망이 최고의 명약이다 -우연은 없다-2019.1.17.목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9.01.17 73
1779 희망이 최고의 명약名藥이다 -희망과 구원의 하느님-2018.12.5.대림 제1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2.05 69
1778 희망이 답이다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인 그리스도-2017.9.13. 수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344/49-407)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7.09.13 110
1777 희망이 답이다 -끝까지 잡아야 할 희망의 끈, 하느님-2017.10.31.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7.10.31 92
1776 희망의 선물-하느님의 나라-2015.11.27.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프란치스코 2015.11.27 255
1775 희망의 사람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2015.10.27.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5.10.27 202
» 희망성월-우리는 모두 성인들입니다-2016.11.1. 화요일 모든 성인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6.11.01 185
1773 희망과 기쁨의 표지-성모 마리아-2015.8.15. 토요일 성모 승천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5.08.15 381
1772 희망과 기쁨-2016.5.23. 연중 제8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6.05.23 147
1771 희년禧年의 영성 -하느님이 답이다. 다시 하느님께 희망을-2015.8.1. 토요일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 학자(1696-1787)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5.08.01 291
1770 희년禧年의 비전과 영성의 실현 -하늘 나라-2017.8.5.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17.08.05 95
1769 훌륭하고 기품있는 삶 -하늘 나라 살기-2018.7.30.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7.30 75
1768 후회하지 않는 삶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2017.4.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프란치스코 2017.04.09 144
1767 효경과 두려움의 믿음 -기도, 회개, 믿음-2019.7.2.연중 제13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7.02 83
1766 회심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 -복음 선포의 사명-2019.1.25.금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2 프란치스코 2019.01.25 107
1765 회심의 여정, 겸손의 여정 -겸손 예찬-2016.1.9. 주님 공현 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6.01.09 333
1764 회심의 여정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2019.5.10.부활 제3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5.10 57
1763 회심과 복음 선포의 삶-2017.1.25. 수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프란치스코 2017.01.25 198
1762 회심回心의 은총 -복음 선포의 사명-2018.1.25. 목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1 프란치스코 2018.01.25 120
1761 회심回心과 자기발견의 여정 -자기 비움의 여정-2016.1.25. 월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프란치스코 2016.01.25 31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9 Next
/ 89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