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5.(일) 주일 왜관수도원의 수도원의 사부 성베네딕도의 제자들, 

성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대축일

집회2,7-13 1코린1,26-31 마태14,28-33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오늘은 왜관수도원의 주보 성인들인,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대축일이자, 김태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수도형제의 종신서원식날입니다. 저 역시 옛 고향집에 온 듯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좋습니다. 참으로 감개무량感慨無量합니다.


지금부터 25년전, 그러니까 제가 맨 처음 수련원 연례피정을 지도한 후 1992년 1월 15일, 종신서원식 미사 때 강론 내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 수련장이셨던 고故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의 각별한 배려로 사제서품 3년째 맡았던 피정지도였습니다. 당시 강론 제목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였고, 지금까지 수도사제로 살면서 가장 공들였던 강론이었습니다. 강론 서두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얼마 전에 사는 것이 힘들고 답답해서 경험 많은 어느 어른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 물음에 그 어른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냥 살면 돼!”라 말씀하셨습니다. 깨달음처럼 번쩍 제 어둔 마음을 환히 밝혀 주었습니다. 집착없이 자유롭게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지금 밝힙니다만 그 어른은 지금은 고인故人이 되신, 당시 원장님이셨던 장 엘마르 신부님이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지만 우리 주님만은 영원하십니다. 당시 수련원 연례피정을 부탁하셨던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도 떠나 가셨고, “그냥 살면 돼!”란 말씀으로 제 어둔 맘을 환히 밝혀 주셨던 장 엘마르 신부님도 떠나 가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제 두 번 째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더 구체화하여 강론 제목을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로 정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제목은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이지만,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로 물으면 답은 분명해 집니다. 바로 복음서에서 예수님 친히 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9.23).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적용되는 영원한 구원의 진리입니다. ‘버리고 떠나기’는 막연합니다. 방향이 없습니다. ‘버리고 떠나 따르기’가 정확한 답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 진리의 길, 구원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사람이 되는 길 역시 이 길 하나뿐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나눕니다.


첫째, 사랑입니다.

주님께 대한 열렬하고도 항구한 사랑이 있어 자발적 자기 버림과 비움의 수행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쁘게 자기를 버리고 비우는 겸손의 수행입니다. 새삼 사랑의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삶은 부단히 자기를 버려가는 사랑의 여정, 비움의 여정, 겸손의 여정, 자유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저절로 표현을 찾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은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늘 바치는 하느님의 일인 성무일도의 하느님 찬미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찬미요 찬미의 기쁨, 찬미의 맛, 하느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수제자 베드로가 그 사랑의 모범입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주님께 대한 베드로의 지극한 사랑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베드로의 사랑에 응답하여 예수님께서 “오너라,”명령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 예수님께 걸어갑니다. 주님 사랑으로 자기를 완전히 비웠기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베드로입니다. 사탄이 추락한 것은 중력때문이었다 합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이 있어 끊임없는 자발적 자기 버림이, 비움이 가능합니다. 어제 저녁기도 첫 번째 후렴처럼,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정주하면서 주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끼어 그분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음도 끊임없는 사랑을 통한 자기 비움이 있어 가능합니다.


둘째, 믿음입니다.

믿음의 힘이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합니다. 누구와 비교하여 우열優劣과 호오好惡를 말할 수 없는 내 고유의 운명의 십자가, 책임의 십자가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구원도 없습니다. 


“삶은 선물입니까? 짐입니까?” 제가 피정자들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입니다. 믿음이 있을 때 십자가는 선물이 되지만 믿음이 없을 때 십자가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삶도, 공동체도 짐이 됩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입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것도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주변의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하느님 찬미와 감사도 샘솟기 마련입니다. 오늘 제1독서 집회서의 저자가 강조하는 바 역시 믿음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그분을 믿어라. 너희 상급을 결코 잃지 않으리라.”

“불행하여라. 믿지 않는 까닭에 나약한 마음! 그 때문에 보호를 받지 못하리라.”


오늘 복음의 베드로도 물에 빠져드는 순간 주님께 부르짖자 예수님께서도 손을 내밀어 붙잡으시면서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하시며, 베드로의 약한 믿음을 책하십니다. 나중에 남는 것도 믿음 하나뿐입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순위도 하느님 믿음입니다. 


아주 예전 왜관수도원을 방문했을 때의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저녁성무일도가 끝나고 어둑해질 무렵 노수사님들의 모습이 ‘있는 듯 없는 듯, 보일 듯 말 듯 ’, 참 초라하고 허무해 보였습니다. 순간 그 모습들이 믿음으로 보였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이 걸어 다니는 모습들로 보였습니다. 정말 하느님 믿음이 있어 충만한 삶이지만 하느님 믿음이 빠지면 허무한 삶입니다. 


우리의 정주와 수도승다운 생활과 순종의 3대 서원 역시 우리 믿음의 표현입니다. 저는 베네딕도 영성을 요약하여 감히 ‘산山과 강江’의 영성이라 칭하며 자주 짧은 자작시를 애송하곤 합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山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江”-


산과 강 역시 믿음의 표상입니다. 순종의 믿음, 순종의 사랑입니다. 오늘 대축일로 지내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 마오로가 물위를 달려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쁠라치도 형제를 구해낸 것도 그의 순종때문이었다고 그레고리오 교종의 베네딕도 전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베네딕도 수도승들의 순종의 믿음을 찬양한, “순종의 극히 강하고 훌륭한 무기를 잡는 자들이었도다.” 저녁성무일도 세 번째 후렴도 새삼스러웠습니다.


순종이야 말로 믿음의 표현이자 영적성숙의 잣대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순종의 믿음 있어 십자가의 무거운 짐은 가벼운 짐의 선물로 변합니다. 자발적으로 기쁘게 십자가의 짐을 질 수 있습니다. 탓할 것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요 청할 것은 믿음의 은총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희망입니다.

막연히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곧장 희망의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따르는 분은 자랑스럽게도 이런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미래가 없다고 희망이 없다고 비전이 없다고 탄식합니다.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요 비전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의 두 말씀도 생각납니다.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성규4,41).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마라.”(성규4,74).


진정 대죄는 하느님께 희망을 접는 절망임을 깨닫습니다. 한 수도형제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느 공동체를 방문했는 데 모든 것을 다 지녔는데 하나가 빠졌다는 것입니다. 궁금하여 물었더니 “기쁨이 없었다.” 대답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는 데, 기쁨이, 희망이, 평화가 없어 무겁고 어둔 환경이라면 그 얼마나 허전하겠는지요. 우리가 따르는 주님은 기쁨과 희망, 평화의 원천이십니다. 희망의 주님을 항구히, 충실히 따를 때 주어지는 ‘기쁨과 평화’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내적부요의 삶입니다. 


희망의 주님을 항구히 충실히 따를 때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분도규칙은 참으로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바로 어제 저녁 성무일도 세 번째 노래한 후렴입니다.


“수도생활에 더욱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며 감미로써 계명의 길을 달렸도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까?” 오늘 연중 제2주일, 성 마오로 성 쁠라치도 대축일에 주님은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자기를 버리고, 믿음으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희망의 주님을 항구히 충실히 따르는 것입니다. 신망애信望愛 삼덕이 고스란히 하나로 모아지니 기분이 좋습니다. 


끝으로 제가 요셉수도원에서 30년째 살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있는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시의 마지막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그대로 오늘 강론을 요약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02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세가지 깨달음-2015.10.5.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15.10.05 338
3301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침묵이 가르쳐 주는 진리-침묵 예찬 2023.10.2.연중 제26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3.10.02 212
3300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2016.5.24. 연중 제8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6.05.24 192
3299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의 예수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2024.1.15.연중 제2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4.01.15 142
3298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2016.10.17. 월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110)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6.10.17 143
3297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합시다” 십자가 예찬 -한반도의 십자가-2023.9.14.목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프란치스코 2023.09.14 228
3296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리스도와의 우정, 너와 나의 우정-2021.1.2.토요일 성 대 바실리오(330-379)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330-390) 기념일의 1 프란치스코 2021.01.02 122
3295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우리 모두 승천하신 마리아 성모님과 함께-2023.8.15.성모 승천 대축일 프란치스코 2023.08.15 285
3294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회개, 사랑, 평화-2018.4.15. 부활 제3주일 1 프란치스코 2018.04.15 175
3293 “길을, 희망을, 빛을, 진리를, 중심을 잃은 병든 사회” -답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뿐이다-2023.9.6.연중 제22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3.09.06 214
3292 “깨달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하늘 나라의 제자들 -기도와 회개, 분별과 선택, 협력과 훈련, 종말과 심판-2022.7.28.연중 제17주간 목요일 프란치스코 2022.07.28 236
3291 “깨어 사십시오!” -회개와 사랑-2018.11.16. 금요일 성녀 제르투르다 동정(1261-1302)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11.16 123
3290 “깨어 있어라!” -거룩하고 슬기로운 삶-2019.8.30.연중 제21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8.30 152
3289 “깨어 있어라!” -충실하고 슬기로운 삶-2017.8.31.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2 프란치스코 2017.08.31 381
3288 “깨어 있어라” -충실하고 슬기로운 행복한 하느님의 자녀들!-2018.8.30.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8.30 148
3287 “끝은 새로운 시작, 절망은 없다” -희망하라, 찬미하라, 인내하라-2022.11.24. 목요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116명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프란치스코 2022.11.24 261
3286 “나는 누구인가?”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2024.3.26.성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24.03.26 125
3285 “나는 누구인가?” -주님과의 관계-2018.12.15.대림 제2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2.15 118
3284 “나는 문門이다” -벽壁이 변하여 문門으로-2018.4.23. 부활 제4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4.23 150
3283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믿음이 답이다-2019.7.15.월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1217-1274)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9.07.15 13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0 Next
/ 170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