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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2. 사순 제2주일                                                                          창세12,1-4ㄱ 2티모1,8ㄴ-10 마태17,1-9



떠남이 답이다

-멈춤, 만남, 떠남-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멈출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며 떠날 때가 있습니다. 제 때에 맞게 처신할 때 아름답고 지혜롭습니다.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참으로 냉철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할 때입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깨어 자중자애自重自愛하며 넓고 깊이 길게 보며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 충실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합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목표없는, 방향없는 막연한 여정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여정입니다. 믿음의 여정에 우선적인 것이 멈추는 일입니다.


첫째, 주님 안에 멈추십시오.

멈춤이 답입니다. 멈춤이 구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떠 방황합니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멈춤이 없어서 그러합니다. 멈춤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 안 제자리로 돌아와 멈춤이 회개입니다. 멈추지 못함이 병입니다. 멈춰 몸도 마음도 생명으로 충전시키는 것입니다. 멈춰야 삶도 시야도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문득 생각나는 시편 구절입니다. 얼마전 기사도 생각납니다. 불교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스테디 베스터 셀러 수필집이 영국에서도 베스트 셀러라 합니다. 시사하는 바 깊습니다. 바로 멈춤이 없이 생존에 급급하여 고단하게 살아가는 세태를 반영합니다. 모두의 마음 깊이에 상존하는 멈추고 싶은 본능의 표현입니다.


멈추라 있는 집이요 멈추라 있는 방이요 멈추라 있는 산입니다. 멈추라 있는 하느님의 집, 수도원입니다. 하여 광야순례여정중에 있는 많은 이들이 산을 찾고 수도원을 찾습니다. 특히 우리 요셉수도원은 산같은 정주의 수도원입니다. 멈추어 산처럼 사는 정주의 훈련이 참 필요한 때입니다. 아주 예전에 써놓은 ‘산처럼’ 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가슴 활짝 열고/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아버지 산 앞에 서면

 저절로 경건, 겸허해져/모자를 벗는다.

 있음자체만으로/넉넉하고 편안한/산의 품으로 살 수는 없을까

 바라보고 지켜보는/사랑만으로/늘 행복할 수는 없을까

 산처럼-


유난히 산들이 많은 우리나라입니다. 산보다 좋은 멈춤의 표상, 정주의 표상도 없습니다. 산처럼 멈출줄 알아야 비로소 따뜻한 환대입니다. 멈추어 가슴 활짝 열어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는 산은 말그대로 정주의 표상이자 환대의 표상입니다. 멈추어 하느님을 발견하고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을 높은 산으로 안내하시어 멈춤의 기회를 선사합니다.


둘째, 주님을 만나십시오.

멈춤은 자연스럽게 만남으로 이어집니다. 만남이 답입니다. 만남이 진리입니다. 만남이 구원입니다. 참된 만남이 없어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입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해 영혼의 갈증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이웃을 만나고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만남의 욕구, 소통의 욕구는 우리의 근원적 욕구입니다. 만나야 삽니다. 살기위해 만나야 합니다. 독서도, 기도도 결국 만나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멈춤에 이은 만남의 체험, 빛의 체험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이렇게 산같은 정주의 삶을 살 수 있음도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 때문입니다. 바로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여기 성전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 너와의 만남, 나와의 만남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성전입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살아게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바로 거룩한 전례은총입니다. 주님은 파스카 여정중에 지친 제자들을 당신 빛의 신비체험으로 안내하십니다. 바로 산은 멈춤의 장소이자 주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주님의 눈부신 변모를 체험한 제자들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겠는지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 그대로 빛의 신비체험입니다. 아, 이런 체험있어야 살 수 있는 인간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행운의 인간입니다. 오늘의 위기와 불행은 이런 주님의 빛의 신비체험의 부재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은혜롭게도 우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처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의 눈부신 변모를 체험합니다. 주님의 변모체험과 더불어 우리 역시 내적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닮아 갑니다.


주님의 체험, 빛의 신비체험을 통해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우리의 삶입니다. 이런 신비체험을 통한 품위있는 삶, 깊이있는 삶입니다. 이런 신비체험없이는 삶의 신비도 삶의 비전도 삶의 깊이도 없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의 신비체험이 기쁨과 평화의 원천이 됩니다. 오늘 주님의 거룩한 변모를 기린 감사송의 다음 대목이 은혜롭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 주시고, 그 거룩한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시어, 구약과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수난을 통해서만,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 것을 밝혀 주셨나이다.”


그대로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주님의 부활에 앞서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앞당겨 체험한 복된 제자들이요 우리들입니다. 신비체험의 황홀경에 빠진 베드로의 즉각적 반응입니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의 선의善意라기보다는 집착執着의 반영입니다. 이 신비체험을 독점하여 누리고 싶은 것 또한 우리 사람의 자연적 욕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수도원 피정이 좋아도, 미사중 주님 체험이 좋아도 마냥 머물 수는 없습니다.


셋째, 주님과 함께 떠나십시오.

떠남이 답입니다. 떠남이 구원입니다. 떠남의 기쁨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중 가장 기뻤을 때는 매일 새벽 떠날 때 였습니다. 떠남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떠남의 미학, 떠남의 아름다움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같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물처럼 미련없이 집착없이 떠날 때 떠나는 것입니다. 떠날 때 잘 떠나는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떠날 때를 알아 잘 떠남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잘 떠남은 잘 살아온 내공內攻의 반영입니다. 하여 지체없이 강론 제목을 ‘떠남이 답이다.’로 정했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운 뒷모습의 떠남이 아니라 희망찬 떠남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기쁨의 떠남보다 이웃에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이런 일상의 아름다운 떠남들이 있어 마지막 죽음의 아름다운 떠남입니다. 주님 빛의 신비체험에 집착 안주하려는 제자들에 대한 하늘 아버지의 말씀이 엄중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세 제자들뿐 아니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의 변모체험에 참여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체없이 떠남의 여정에 오르라는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주님은 그를 하란에서 떠나 보내십니다. 


“네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은 아브라함을 맨손으로 떠나 보낸 것이 아니라 축복가득 주시어 파견하십니다. 떠날 때 그의 나이는 무려 75세였다 하니 영원한 청춘의 아브라함입니다. 이 복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아브라함입니다. 하여 미사가 끝나기 직전 파견에 앞서 강복이 있습니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바로 아브라함은 물론 우리의 복된 신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끊임없이 하느님의 복을 받아 복된 존재가 된 우리들이요, 이어 우리를 통해 복을 받는 이웃들입니다. ‘욕망덩어리’ ‘짐덩어리’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복덩어리’가 되어 제 삶의 자리로 떠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여정을 살아 갑니다. 주님은 사순 제2주일 미사를 통해 우리 믿음의 여정에 있어 세가지 중요한 답을 주셨습니다.


첫째, 생명의 주님 안에 멈추십시오. 멈춤이 답입니다. 

지금 여기가 멈춰 생명으로 충전시켜야 할 자리입니다. 


둘째, 빛이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만남이 답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샘솟는 기쁨과 평화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빛이신 주님을, 또 나를, 이웃을 만나는 것입니다. 


셋째, 희망의 원천이자 미래인 우리 주님과 함께 떠나십시오. 떠남이 답입니다. 복된 존재로 주님과 함게 떠나는 것입니다. 혼자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가 바로 떠남의 자리입니다. 잘 떠날 때의 뒷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눈부신 변모를 체험한 우리 모두를 복된 존재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시중 떠남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노래한 다음 연을 나누며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밖으로는 천년만년 하느님을 기다리는 정주의 산으로, 안으로는 천년만년 하느님을 향해 맑게 흐르는 강이 되어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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