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지혜는 하나다 -늘 새로운 출발-2017.4.3. 사순 제5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pr 0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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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3.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다니13,1-9.15-17.19-30.33-62 요한8,1-11



자비와 지혜는 하나다

-늘 새로운 출발-



오늘 독서의 ‘수산나를 구한 다니엘’과 복음의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구해 주는 예수님’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오늘 복음은 언제 읽어도 잔잔한 감동을 주며 다니엘서는 미사독서중 가장 긴 독서로 흥미진진합니다. 수산나와 간음하다 잡힌 여자의 가련한 위치가 흡사합니다. 사면초가의 위기상황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의 선정이 참 적절합니다.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두려울 것 없어라.”(시편23,4ㄱㄴㄷ).


이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자비하신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간음하다 사로 잡힌 여자를 구해 주셨고, 다니엘을 통해 억울하게도 죽을 위기에 처한 수산나를 구해 주십니다. 정말 두 경우 다 위기 상황입니다.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우선 복음을 살펴 봅니다. 예수님의 적대자들인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의 의견을 묻습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요한8,4-5).


진퇴양난의 질문입니다. 어떻게 대답하든 이들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율법대로 하면 여자의 생명을 잃음으로 예수님께서 설파해온 자비에 어긋나고 사면의견을 내놓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니 대답할 길이 막막합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신적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앞전의 상황묘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로 모여 들었다.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요한8,1-2).


예수님의 영적 삶의 리듬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저녁에는 올리브 산에 아버지와 깊은 친교의 기도를 나누셨음이 분명합니다. 낮의 활동과 밤의 관상이 균형과 조화를 이룹니다. 바로 여기 관상기도중에 예수님 안에 형성된 아버지의 자비심이고 바로 이런 자비심에서 샘솟는 지혜였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침묵의 반응이 참 절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십니다. 침묵을 통해 이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측은지심의 자비가 전혀 없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보다 이들의 무자비가 더 큰 죄입니다. 


자기를 몰라 무자비한 심판이지 정말 자기를 아는 겸손과 자비의 사람이라면 절대 남을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줄곧 물어대자 예수님은 마침내 몸을 일으켜 침묵을 깨며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8,7ㄴ).


우리 일상에서도 참 많이 회자되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화두처럼 이 말씀을 던진후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십니다. 이 지혜로운 말씀에 자신들의 죄가 부끄러워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갑니다. 저절로 해결입니다. 


정말 배우고 싶은 주님의 침묵의 자비, 침묵의 지혜입니다. 주님의 자비가, 지혜가 모두를 살렸고 회개에로 이끌었습니다. 이제 모두 사라지고 남은 사람은 예수님과 간음하다 잡힌 여자뿐입니다. 


-예수님;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할 자가 아무도 없느냐?”

여자;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8,10-11).


회개했을 때 주님은 단죄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과거는 묻지 않고 불문에 붙힙니다. 회개한 영혼들에겐 지금부터의 삶이 중요하고 늘 새로운 출발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를 통해 하느님 앞에 완전 범죄는 불가능함을 깨닫습니다. 두 장로의 감쪽같은 간계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수산나를 살린 하느님의 사람, 다니엘입니다. 


수산나의 됨됨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산나’라는 이름은 ‘나리꽃’을 뜻하는 히브리 말 슈산을 음역한 것입니다. 나리꽃처럼 용모도 아름답고 무엇보다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정절을 지켰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무죄한 이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마침내 주님은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고 다니엘을 당신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다니엘의 지혜를 통해 당신께 도움을 청한 무죄한 수산나를 살리셨고 두 악한 장로를 심판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당신을 닮은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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