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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13. 연중 제19주일                                                                  1열왕19,9ㄱ.11-13ㄱ 로마9,1-5 마태14,22-33



참 행복한 삶

-사랑, 기도, 믿음-



누구나의 소망이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행복은 선택이자 발견입니다. 언젠가 살아야 할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선택하여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행복도 발견입니다. 행복을 선택하여 살려 할 때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행복입니다. 알게 모르게 삶에 녹아있는 행복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에어컨 작동 성공! 역사적인 날! 감사합니다. 시간되면 잠시 오세요!”


어제 원장수사에게 보낸 텔레그램 문자 메시지입니다. 마침내 제 집무실에 공동체 형제들의 사랑으로 에어컨이 설치되었습니다. 작년에도 제자들이 에어컨을 해 준다는 것을 사양했지만 이번은 형제들의 사랑을 수용했습니다. 선풍기만으로는 참 불편했고 우선 면담성사차 무수히 찾는 분들을 생각했습니다. 


새삼 형제들의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여러 형제들의 에어컨이 잘 되느냐 묻는 평범한 말 속에도 사랑이 묻어 있었습니다. 한 형제는 고장난 문 열쇠 장치를 보고 곧 고쳐준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수도형제들의 사랑의 배려를 발견하며 새삼 사랑도 발견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사랑입니다. 어제 성무일도 새벽 독서기도시 계속됐던 시편 136장의 후렴과 미사시 신명기 제1독서도 잊지 못합니다. 


시편 136장은 26절 까지 계속 반복됐던 후렴이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였고, 신명기 독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크고 작은 사랑을 체험하면 주님의 자비를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에 널려있는 평범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형제들을 통한 크고 작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입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전례기도는 하느님 사랑은 물론 이웃 사랑의 촉진제가 활력소가 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샘’같기도 하고 ‘사랑의 발전소’와도 같은 매일 규칙적으로 평생 바치는 시편공동전례기도입니다.


참 행복한 삶의 첫째 요소가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 삶의 의미이자 전부입니다. 삶의 허무에 대한 유일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췄어도 사랑빠지면 공허할뿐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의 동포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큰 감동을 줍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동포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바오로에겐 커다란 슬픔이자 아픔이었던 것입니다. 과연 북녘 동포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어느 정도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지옥의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 위해 성불을 포기했다는 지장보살이 생각납니다. 그리스도교의 지장보살처럼 생각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고린토 1서 13장의 사랑의 찬가에서 보다시피 ‘사랑의 대가’ 바오로입니다. 동포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바오로의 하느님 사랑도 놀랍습니다.


“그분은 만물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입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 마지막 바오로의 고백입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철저한 하느님 찬미의 사랑이 있어 동포들에 대한 큰 슬픔과 아픔을 감당할 수 있었음을 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참 행복한 삶의 첫째 요소가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행복을 부단히 선택하고 발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참 행복한 삶의 둘째 요소가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삽니다. 기도해야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마침내 기도와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저절로 호흡같은 기도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주인공들인 엘리야, 바오로, 예수님 모두가 한결같이 기도의 대가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한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기도하는 예수님입니다. 빵의 기적후 예수님의 신속한 대처가 인상적입니다. 분명 군중들과 제자들의 열광에 유혹의 위기를 느끼셨음이 분명합니다. 기도가 예수님을 지켜줬습니다. 제자들을 재촉하여 보내시고 군중들을 돌려 보내신후 지체없이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신 주님이십니다. 


이렇듯 예수님처럼 매일 일상에서 잠시 떠나 기도할 수 있는 외딴곳 기도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관상에서 흘러나오는 활동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하여 분도회의 모토도 ‘기도하고 일하라.’입니다.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도, 제자들의 곤경을 알아챌 수 있었던 비결도 바로 아버지와 일치의 기도였음을, 기도의 은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풍랑에 위기를 겪던 제자들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기도의 힘’이였음을 깨닫습니다.


진정 찾아갈 곳은 ‘기도처’뿐이요, 진정 만나뵈올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살아갈수록 절감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그랬고 바오로가 그랬고, 하느님의 산 호렙을 찾은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하느님은 시끄럽고 혼란하고 요란한 와중에는 만날 수 없습니다. 고요할 때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강한 바람, 지진, 불속에서가 아닌 고요중에 하느님을 체험한 엘리야입니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어귀로 나왔다.’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했고 간절히 하느님께 기도한 엘리야 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기도처인 산처럼, 하느님의 산 호렙 역시 엘리야의 가시적 중심이자 기도처였음을 봅니다. 여기 하느님의 산, 불암산 기슭 요셉수도원 하느님의 집에서 항구히 정주하며 기도의 삶을 사는 우리 수도형제들입니다. 


셋째, 참 행복한 삶의 요소가 믿음입니다.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세상을 떠날 우리들입니다.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와 더불어 믿음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타고난 믿음도 없습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보고 배우는 믿음입니다. 


제자들이 믿음만 있었어도 풍랑에 혼비백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파도 흉흉한 밤, 호수가 상징하는바 인생항해중 곤경중의 우리 삶입니다. 믿음의 눈만 있으면 늘 함께 계신 주님이신데 제자들은 믿음의 눈이 닫혀 있었습니다. 하여 부끄럽게도 물위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유령이다!” 두려워 소리를 질러대는 멘붕의 제자들입니다. 이 또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일상에서 어려움을 직면할 때 마다 늘 상기해야 할 오늘 복음의 핵시 말씀입니다. 두려움을 몰아내는 믿음입니다. 애당초 믿음이 있었다면 이런 혼란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어 두 번째 믿음 부족을 보여주는 베드로의 적나라한 모습도 교훈입니다. 물위를 걸어 주님께 가다가 거센 바람의 유혹에 걷잡을 수 없이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드는 베드로였지만 그의 대처가 참으로 신속하고 정확했습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즉시 화살기도를 바치는 베드로입니다. 이어 “아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주님의 애정 가득한 꾸중을 들었지만 이런 체험을 통해 베드로는 물론 배안의 동료들의 믿음도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위태한 순간 구원받은 제자들의 이구동성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 고백, 사랑고백, 희망고백, 찬미와 감사의 고백과 더불어 깊어지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진정성 가득한 고백은 얼마든 좋습니다. 


예전 중환자실의 노신부님을 문병했던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의 베드로의 화살기도와 흡사했습니다. 너무 괴롭고 아파 끊임없이 호소하는 듯한 말마디가 기도처럼 들려 간병 자매에게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날 살려 줘!”


겉으로는 진지했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날 살려 줘, 날 살려 줘, 날 살려 줘,---’ 곤경중에 끊임없이 바치기에 얼마나 적절한 짧은 기도문인지 감탄했습니다. 십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참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도 끊임없는 선택이자 발견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해야 삽니다.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에서 벗어납니다. 결국 찾아갈 곳은 기도처뿐이요 만나 뵈올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믿으십시오. 하느님을 믿어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셋은 하나로 연결되었음을 봅니다. 사랑할 때 기도요 기도할 때 믿음의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중의 기도가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주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믿음을 가득 선사하시며 두려움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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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녜스 2017.08.13 12:28
    기도중의 기도가 미사, 매일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축복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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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사랑 2017.08.15 22:5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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