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까?" -파스카의 삶, 하나뿐!-2018.5.3. 목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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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3. 목요일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1코린15,1-8 요한14,6-14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까?"

-파스카의 삶, 하나뿐!-



-“암사슴이 시냇물을/그리워하듯

 하느님/제 영혼이 당신을/이토록 그리워하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제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시편42,2-3).


시편 성무일도시 자주 대하는 시편 구절입니다. 종파를 초월해 사람 누구나 이런 영원한 분,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있습니다. 하여 토마스 머튼은 사람은 마음 깊이에서는 모두가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이라 말했습니다.


실제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은 갈망입니다. 시편을 읽다 보면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어하는 무수한 고백의 구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복된 운명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바로 우리 모두의 성소입니다. 바로 이런 갈망이 오늘 복음의 필립보를 통해 고백되고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필립보의 청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마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필립보’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넣어보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냈는데도 예수님을, 아버지를 모를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상호내주의 사랑의 일치를 말하는데 예수님은 바로 아버지와 상호내주의 사랑의 일치를 이루신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 서두에서 예수님이 누구이며 하느님이 누구인지 잘 드러납니다. 토마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는 날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뵌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이라 하지 않고 꼭 아버지라 부릅니다. 과연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렇게 하느님을 친근감있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는지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버지를 아는 것이고,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이 아버지와 일치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뵙는 것이 아버지를 뵙는 것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예수님과 일치의 친교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유일무이한 최고의 구원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과 관계의 깊이와 함께 가는 아버지와의 관계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얼굴을 뵈올수 있겠습니까? 바로 오늘 독서가 답을 줍니다. 바로 파스카의 복음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통해 복음과 구원, 그리고 파스카 삶의 관계가 잘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 안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 말씀을 굳게 지킨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말씀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의 복음 내용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 바로 구원의 복음입니다. 죽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한결같이 믿고 사랑하는 것, 바로 이것이 파스카의 삶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부활하는 파스카의 삶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입니다. 파스카의 삶이 바로 영원한 삶의 구원입니다. 하여 깊어가는 바로 파스카의 삶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예수님의 얼굴을 뵙게 되고 하느님 아버지의 얼굴을 뵙게 됩니다. 


파스카의 삶이 깊어가면서 점차 또렷해 지는 아드님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의 얼굴입니다. 만일 복음의 필립보 사도가 진정 파스카의 삶을 살았다면 이런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 달라니 예수님도 참 어처구니 없고 답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까? 답은 파스카의 삶, 하나뿐입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여 주님과 함께 끊임없이 죽고 부활하는 파스카의 삶에 충실하고 항구하는 것입니다. 파스카의 삶이 깊어갈수록 점차 또렷해는 예수님의 얼굴, 아버지의 얼굴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예수님의 얼굴을, 아버지의 얼굴을 뵈옴으로 영육의 위로와 치유가 뒤따르고, 영육의 배고픔과 목마름이 비로소 해결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의 신비체험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신비가로 변모시켜주는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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