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놀랍고 고마우신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2018.5.27.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y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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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27.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신명4,32-34.39-40 로마8,14-17 마태28,16-20



참 놀랍고 고마우신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



참 좋으신 하느님이십니다. 한민족의 기도와 열망에 응답하신 하느님은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 한반도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참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새벽 강론쓰기전 인터넷 검색중 반가운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文대통령-김정은, 판문점 북측서 전격 2차 정상회담. 오후 3시부터 2시간 회담, 文대통령 27일 오전 10시 회담 결과 직접 발표 예정”


평화의 선물보다 더 좋은 사랑의 선물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첫 선물도 평화입니다. 지난 3월 21일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문대통령의 다음 발언도 참 좋았습니다.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합리적인 공존공생의 평화와 사랑입니다.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 모습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축일이 많아도 결국 축일은 하나뿐이니 하느님 축일입니다. 모두가 하느님 사랑에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하느님 축일 하나뿐입니다. 사실 깊이 들여다 보면 매일이 하느님 축일입니다. 


“이 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매일이 주님 선물하신 좋은 날, 축일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사랑 공부보다 더 좋고 필요한 평생공부도 없습니다. 지난 주일 성령강림 대축일에 하느님은 우리 모두에게 사랑의 성령을 선물하셨고,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에 하느님은 사랑으로 당신을 활짝 개방하시어 우리 모두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제 읽은 중세 독일의 신비가 힐데가르트의 아름다운 삼위일체 비전과 찬미노래가 생각납니다.


-삼위의 신성이여/찬양받으소서

 모든 것의 아름다운 가락/세상의 생명

 살아있는 모든 것에 담긴/창조의 힘이여!

 천사들 무리의 찬양노래/바로 이 삼위의 신성이어라

 인간이 밝힐 수 없는/저 모든 깊고 깊은 신비

 그 놀라운 광채/삼위의 신성

 모든 것 안에 사랑으로 살아있는 생명/사랑을 일깨우며 살아있는 이로다!-


우리 수도형제들은 오늘 새벽 성무일도 초대송 후렴으로 삼위일체 대축일을 활짝 열었고 이어 아름다운 찬미가를 노래했으며 방금 화답송을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전례의 아름다움으로, 말씀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삼위에 일체이시고/일체에 삼위이신 참된 하느님께/어서 와 조배드리세.”-초대송-


“영원한 낙원동산 천사성인들/성부와 말씀이신 독생 성자와

 거룩한 바람이신 성령삼위를/한분의 주님으로 고백하도다.”-찬미가1절-


“복되다/주께서 당신 기업으로 뽑으신 백성이여!”-화답송


참 좋으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안에서 숨쉬며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허무한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성부 하느님을 향해 성자 예수님과 함께 성령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도 더 큰 행복도 없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지 살 줄 알면 모두 하느님 큰 사랑에 행복할 수 뿐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계신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사람이, 공동체가 있는 곳에 삼위일체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모두의 눈높이에 맞게 체험할 수 있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가 적절하고 고맙습니다. 제1독서 신명기는 성부 하느님에 대해, 복음은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에 대해, 제2독서는 성령 하느님에 대한 자상한 설명입니다. 하여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가 환히 드러납니다.


첫째, 성부 하느님이십니다.

성부 하느님은 모세의 고백을 통해 환히 계시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시작이자 끝이신 성부 하느님이시며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모세의 시공을 초월한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그래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잘 되고,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영원한 오늘’뿐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모세를 통한 성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은 당신을 늘 마음에 새겨 기억하며 당신 계명과 말씀을 준수할 것을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부 하느님에게서 나와 성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우리 인생 여정입니다. 성부 하느님이야 말로 우리 믿는 모든 이들의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우리 삶의 모두인 성부 하느님이십니다.


둘째, 성자 하느님, 예수님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원성사原聖事입니다. 성자 예수님을 통해 환히 계시되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성부 하느님은 바로 성자 예수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을 통해 성부 하느님의 진면목이 환히 드러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역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부여하시는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한 제자들의 모습은 그대로 성부 하느님을 향한 모습입니다. 성자 예수님을 통해 성부 하느님을 체험한 제자들임이 분명합니다.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느님의 일치의 관계가 다음 말씀을 통해 환히 계시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얼마나 장엄하고 고마운 성자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인지요. 이미 이 말씀안에 삼위일체 하느님이 고백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명령과 흡사합니다. 새 모세인 성자 예수님 역시 당신께서 명령하는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제자들에 대한 간곡한 당부입니다. 성자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말씀이 복음의 결론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이 바로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성부 하느님을 향해 성자 예수님과 함께 인생 여정 중인 우리들의 신원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셋째,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성부 하느님을,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성령 하느님 덕분입니다. 사랑의 성령을 통해 어디서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이 모두를 살게하는 사랑이요 생명입니다. 


참으로 모두의 눈높이에 맞게 자신을 계시하신 겸손한 사랑의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지위고하나 지식유무에 상관없이 모두가 마음만 활짝 열면 무상으로 선사되는 사랑의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아빠! 아버지!”하고 외칩니다.


그렇습니다.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성자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상속자가 됨으로 삼위일체 하느님과 우리 역시 깊이 관련되니 이보다 영예로운 일은 없습니다. 


참으로 체험의 은총으로 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이며 이에 결정적 역할을 하시는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값싼 은총도, 값싼 기쁨도, 값싼 구원도 없듯이 값싼 상속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상속자가 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있어 영광의 부활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없는 부활의 영광은 환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온갖 고난을 성자 예수님의 고난에 합류시키는 것이 올바른 구원의 처방입니다.


모두의 눈 높이에 맞게 계시된 겸손한 사랑과 개방의 삼위일체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때 성령충만, 사랑충만한 삶이요 결코 허무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께 깊이 참여할 때 견고한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믿든 이들의 공동체 중심에 늘 현존하시는 삼위일체 공동체 하느님이십니다. 성부 하느님을 향해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사랑의 성령 하느님 안에서 인생 여정 중인 복된 우리들의 신원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과의 깊은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세상에 가장 좋고도 짧은 기도, 성호경과 영광송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합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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