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공부 -참 사람眞人이 되는 공부-2018.6.18.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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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18.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열왕기상21,1ㄴ-16 마태5,38-42



평생공부

-참 사람眞人이 되는 공부-



성경은 우리를 비춰주는 하느님의 거울입니다. 저는 오늘 제1독서 열왕기상권을 읽을 때마다 충격을 받습니다. ‘아, 사람이 이렇게 악해질수도 있나? 도대체 이런 이제벨같은 악인도 있을 수 있나?’하며 충격을 받습니다. 나봇의 억울한, 무죄한 죽음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와 더불어 생각나는 다윗이 악행입니다. 바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감쪽같이 죽게한 후 바세바를 아내로 맞아들인 다윗에 관한 일화 역시 충격입니다. 도대체 우리아의 억울하고 무죄한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입니다.


아,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의 가능성입니다. 천사도, 성인도, 악마도, 괴물도, 짐승도 될 수 있는 것, 다 인간의 가능성입니다. 완전한 선인도, 완전한 악인도 없습니다. 이래서 평생수행입니다. 평생 참사람이 되어 가는 평생과제가 주어진 평생공부에 평생학인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평생과제입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세례받았다 하여 저절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참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참 사람이, 성인聖人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평생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여기는 순교복자수녀회 ‘무아의 집’입니다. 무아는 창설자 방유룡 안드레아 신부님의 호입니다. 무아의 사랑입니다. 내가 없는 무아無我는 진아眞我의 성인을 뜻합니다. 무아의 사람, 바로 참 사람이자 성인이요 우리 수도자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제가 수도원에 들어왔을 때 제 삶의 지표가 된 토마스 머튼의 말도 잊지 못합니다. 우리가 수도원에 들어 온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to do)’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to be)’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생공부가 하느님의 사람이, 참사람의 되기 위한 공부입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모두가 참 사람이, 성인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라고 불림 받고 있는 성소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말씀에 대한 답입니다. 이 모두의 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갈 때 참 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평생 보고 배울 스승이자 주님이 계시기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악인이라 하여 좋아할 사람은, 또 자기를 악인이라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잘 들여다 보면 사람 안에는 악성과 더불어 선성도 있는 법입니다. 제가 보기에 아합은 악인은 아니나 우유부단하고 이제벨은 잔인한 악인같습니다. 둘 다 평생 사랑을 보고 배울 기회가 없었던 ‘무지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병, 무지의 죄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악은 디테일 안에 숨겨져 있다 합니다. 집안의 사랑하는 자녀와 전화를 하며 무자비하게 고문하는 자를 보며 깨달은 진리라 합니다. 집에서는 다정한 아빠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자기 책임을 다해 이런 무자비한 고문의 악행도 할 수 있으니 ‘무지의 악’이 문제인 것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말씀의 빛입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이 이를 입증합니다.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을 밝히는 빛이옵니다.” 두려움의 어둠을 밝히는 사랑의 빛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갈 때 무지의 악으로부터 해방되어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 온유하고 겸손한 참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 이런 참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이런 사람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은 내적으로 강한 사람, 자존감이 높은 자기 존엄과 품위를 지닌 사람입니다. 예수님 몸소 평생 이렇게 사셨기에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강한 듯 하나 참으로 약한 것이 악인입니다. 악인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 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이런 사람은 비겁하거나 비굴한 자가 아니라 진정 강한 자입니다. 악인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win-win'의 사랑입니다.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입니다. 폭력의 악순환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악을 무력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악인을 악의 수중手中에서 벗어나게 함으로 악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 갈수록 두려움이 없는 자비롭고 지혜로운, 온유하고 겸손한 참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 존엄과 품위의 강한 사람입니다.


시편 제가 참 좋아하는 화답송 후렴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저는 여러 말마디를 넣어 부르곤 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부러울 것 없노라.”,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노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노라.” 끊임없이 노래하면서 우리의 목자이자 스승인 주 예수님을 닮아갈 때 ‘무아의 참사람’이 되는 우리의 유일한 평생 꿈도 실현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무지의 악을 몰아내시고 당신 빛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무지의 병의 치유에 예수님의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명약名藥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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