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사람들 -하느님 아버지 중심의 삶-2018.6.20.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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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0.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열왕기하2,1.6-14 마태6,1-6.16-18



참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사람들

-하느님 아버지 중심의 삶-



요즘 우리나라 정계政界를 보며 깨닫는 바 매우 큽니다. 민심은 천심이며 그 누구도 민심을 이길자 없다는 것입니다. 한 번 떠난, 이반한 민심은 참 되돌리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 번 무너져내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는 참으로 지난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으로 두려워해야할 바 민심입니다. 민심을 두려워하듯 천심의 하느님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떠났지 하느님이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떠난 사람 마음을 되돌리기는, 사람을 떠난 하느님 마음을 되돌리는 일 역시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떠난 마음을 다시 하느님을 향하게 함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주님을 찾을 때 주님 역시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주님과의 신뢰 관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늘 깨어 회개의 삶,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함을 봅니다.


‘보수의 아버지'라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한 말이 있습니다. '소나무가 늘 푸른 것은 끊임없이 잎을 바꾸기 때문이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늘 한결같이 푸르른 영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끊임없는 회개의 삶,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의 삶입니다. 열정과 함께 가는 순수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참으로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누가 참으로 살 줄 아는 참 사람들입니까? 바로 애오라지 자나깨나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선망하는 삶일 것입니다. 이렇게 잘 살고 싶은 욕심의 청정욕淸淨慾이야말로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모습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제1독서 엘리야 예언자와 참 좋은 후계자 엘리사가 그 모범입니다. 모세를 통해 하느님 중심의 삶을 보고 배웠던 여호수아처럼, 오늘도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 결정적 순간에 엘리야의 하느님 중심의 삶을 보고 배우는 엘리사입니다. 우리가 보았다시피 엘리야의 삶은 오로지 하느님 중심의 ‘무아無我의 삶’이었습니다. 결코 자기 중심의, 사람들 중심의 허영과 허무의 껍데기 삶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알맹이 삶을 살았기에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자기는 물론 모두를 살리는 삶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아름다운 하느님 중심의 삶에 아름다운 승천의 삶입니다. 에녹의 승천, 모세의 승천에 이어 마지막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마지막 결정적 승리를 상징하는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인정해 주신 엘리야의 하느님 중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참 아름다운 승천 장면에 엘리사의 반응도 인상적입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 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 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자기 옷을 움켜쥐고 두 조각으로 찢었다.’


평생 엘리야 스승의 승천장면의 추억은 엘리사의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는 원천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환히 드러나는 예수님의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이렇게 살지 않고는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없습니다. 바로 참 영성가, 참 관상가, 참 신비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참으로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합니다. 진실하고 단순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적 삶, 실속없는 허영과 교만의 외적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느님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참 어리석은 무지의 삶이 바로 자기 중심의 삶, 사람들 중심의 삶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위선적 허영과 교만의 ‘가아假我’의 외적 삶을 살아가는 지요. 하여 많은 소유에도 불구하고 ‘참나眞我’를 잊고 살기에 마음은 불편하고 가난하고 불행한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만으로 행복한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입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시편18,2).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참 행복입니다. 오늘 바로 예수님은 참 행복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비단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가르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은, 원리는, 영성은 영원하며 우리의 전 영성생활에 관련됩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읽을 때마다 통쾌하고 신선한 충격입니다. 예수님은 막연히 ‘하느님’이라 하지 않고 ‘네 아버지’로 호칭함이 주목할 대목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런 이가 참 겸손한 영성가입니다. 참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고 부요하고 행복한 영원한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세상 누구도 이들을 유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영원한 보물, 하느님 아버지를 중심에 모신 삶인데 세상 무엇이 부럽고 두렵겠는지요. 


결코 비상한 삶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삶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는 삶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줍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마음을 굳게 가져라."(시편31,2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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