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힘 -하느님 중심의 삶-2018.6.23.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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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6.23.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24,17-25 마태6,24-34



믿음의 힘

-하느님 중심의 삶-



믿음의 힘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옵니다. 진정 힘은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앞부분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과 뒷부분은 ‘걱정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삶에 중심이 둘 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든지 재물을 섬기든지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둘 다 섬기려 하기에 정체성의 혼란입니다. 중심이 둘이기에 마음이 갈릴 때 이보다 힘든 것은 없습니다. 몸이 약해도 살 수 있지만 마음이 갈리면 살기 힘듭니다. 


제가 강론 주제중 참 많이 다룬 주제가 ‘삶의 중심’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삶의 중심은 하느님뿐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 아닌 그 무엇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 자리에 하느님 아닌 것이 자리 잡았을 때 바로 우상이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역대기 하권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악순환도 하느님 대신 우상들을 섬김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이 자초한 재앙임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중심에 따라 형성되는 삶의 꼴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은총처럼 뒤따르는 마음의 순수와 열정입니다. 바로 제 좌우명 자작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첫째 연이 수도자의 삶은 하느님 중심의 정주의 삶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30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제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 상본의 성구, 바오로 사도의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라는 말씀도 생각납니다. 제 동료 사제의 서품상본 구절인데 그 일화를 수차례 나눴을 것입니다. 세상 유혹이 올 때마다 그리스도 대신 다른 탐나는 대상을 넣어 봤다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여자가 생의 전부입니다.”

“나에게는 돈이 생의 전부입니다.”

“나에게는 부귀영화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 무엇을 넣어도 마음이 허전하더라는 것입니다. 마침내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고백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았고 성소를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라는 것은 삶의 우선 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모두를 상대화하여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여 저는 노년의 품위를 위해 늘 다음의 우선순위를 강조하곤 합니다. 첫째가 하느님 믿음, 둘째가 건강, 셋째가 돈이라는 것이며, 이 우선순위가 바뀌어 건강이나 돈이 첫째 하느님 자리에 와선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또 제가 자주 드는 적나라한 예도 있습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주라 합니다. 사실 보고 배우는 부모의 믿음보다 더 좋은 유산은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세상 친구의 방문도 생각납니다. 장시간 자랑을 늘어 놓았고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요약해보니 돈자랑, 자식자랑, 건강자랑이었습니다. 셋은 저에게 없는 것이고 하여 제 자랑은 무엇인가 생각했더니 절로 떠오르는 것이 하느님 자랑이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하느님만을 찾는 우리 수도자들이기에 매일, 평생, 끊임없이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하느님 찬미와 감사로 하느님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 중심의 수행이 삶의 중심을 확고히 해주고 날로 주님과의 관계를, 믿음의 관계, 희망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깊이 해줍니다.


바로 주님과의 관계가 세상 걱정에 대한 답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이 불안과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나오는 믿음의 힘은 바로 하느님의 힘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믿음이 약할수록 점증하는 세상 걱정, 세상 두려움입니다. 수도원 십자로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도 주님께 대한 믿음만이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답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여 주님은 다시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조합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을 찾는 본질적 삶에 충실할 때 부수적인 것들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수도원의 성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수도원에서 쟁점이 되는 것이 셋입니다. 1.하느님을 찾는 수행, 2.사람(성소자), 3.재정(돈) 셋인데 하느님을 찾는 본질적 수행에 충실할 때 성소자도 돈도 은총처럼 부수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사람들은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찾는 일에 집중하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과거는 지났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사실 이들은 우리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루하루 살면서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나 기쁘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총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런 우리를 격려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참으로 지혜로운 처신으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도와 주시어 우리 모두 이렇게 하느님만을 찾는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살게 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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