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과 고마움 -교회 가정 공동체 예찬-2018.7.3. 화요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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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3. 화요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에페2,19-22 요한20,24-29



주님의 교회 가정 공동체의 소중함과 고마움

-교회 가정 공동체 예찬-



요즘 사회적 현안인 제주 예멘 난민들 문제로 나라안이 시끄럽습니다. 새벽 인터넷을 보는 순간 한뉴스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기자 출신 예멘 난민, 한국사회의 질문에 답하다’라는 제하의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한국 사회의 우려를 충분히 알고 있어요. 우리에 대한 한국인들의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잘 알고 있고, 그런 의견을 가진 한국인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하지만 우리가 왜 한국에 오게 됐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를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경험한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대단한 나라다. (그는 주저 없이 여러 번 이를 반복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21세기에 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현대식 사고다. 한국인들이 존경스럽다. 예멘에서도 젊은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한다. 개방적이고, 미래를 바꾸며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난민 출신 기자의 진솔한 답입니다. 새삼 한국이란 공동체 조국에 속해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생각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돌아갈 나라없는 서러움, 집없는 서러움, 타향살이 서러움보다 큰 서러움은 없을 것입니다.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했다 돌아온 이들이 흔히 말하지 않습니까? ‘집떠나면 고생이요, 집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고 말입니다. 일명 ‘즐거운 나의 집’이란 ‘홈 스위트 홈’이란 노래도 기억할 것입니다. 난민에 대한 강우일 주교님의 제주교구민들에게 보낸 사목서간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지난 세기 초부터 일제 강점기에 땅과 집을 뺏긴 수많은 우리 선조들이 연고도 없는 만주로, 연해주로 떠냐야 했다. 어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이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떠났다. 제주에서는 일자리를 찾아서, 또는 4.3 사건의 재앙을 피해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도 많다. 


현재 700만명에 이르는 우리 민족이 전세계에 흩어져 다른 나라 사람들의 선의로 타향살이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 친척과 가족이 그 나라 국민에게 배척당하고 내쫓긴다면 얼마나 분노하겠는가.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배척과 외면은 인간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거부하는 범죄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난민을 포용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과연 교회는 물론 사회 어른다운 지당한 말씀입니다. 공동체를 찾는 인간입니다. 공동체 소속감의 욕구는 근원적인, 본능적이 삶의 욕구입니다. 공동체를 떠나선 살 수 없는 인간입니다. 난민은 바로 소속의 공동체 나라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옛적 두 가지 예도 떠오릅니다. 신학교 시절 주말 외출 때 신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산이 아닌 도시 사람들을 찾는 다는 것입니다. 또 수도원 들어오기 전 삶이 무기력하고 답답할 때마다 찾았던 삶의 열기와 활기로 가득찼던 시장도 생각납니다. 이 모두가 공동체를 찾는 인간의 욕구를 반영합니다. 외로워서 사람이요, 외로워서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공동체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공동체와의 고립단절이 지옥입니다. 공동체중의 공동체가 우리가 소속된 교회가정공동체요, 수도가정공동체입니다. 저는 가정이란 말을 넣습니다. 강론 제목 역시 ‘교회가정공동체의 고마움-교회 가정 공동체 예찬-’입니다. 참으로 교회가정공동체가 수도가정공동체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가정법은 없지만 만일 내가 세례받아 교회에 속함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말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 가정에 속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행운인지요. 예전 야만의 광야같던 유럽의 문명화 과정도 눈여겨 볼만합니다. 인적 없는 광야 한복판에 수도원 공동체가 들어서면 수도원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광야는 옥토가 되고 흡사 거대한 가정공동체가 들어선 모습이 됩니다. 


현재 우리 요셉수도원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도가정공동체가 형성된 느낌도 듭니다. 계속 확장되고 있는 수도가정교회공동체입니다. 십여년 이상 성장을 거듭하는 예수성심자매회, 코이노니아자매회도 넓은 의미로 요셉수도가정교회공동체에 속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피정을 통해 다녀간 이들 역시 익명의 요셉수도가정교회공동체의 가족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두렵고 무서운 것이 ‘영적난민’입니다. 궁극의 안식처가 없는, 죽어 돌아갈 곳 없는 영적난민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우리는 몸과 마음을 담고 있는 영혼의 안식처, 정주처, 피난처인 교회가정공동체가 있기에 영적난민이 아닙니다.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런 일인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분명해 집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이돌이 되십니다.”


바로 우리가 속한 교회공동체는 하느님의 한 가족 공동체입니다. 살아있어 끊임없이 성장, 성숙하는 공동체요 이 공동체의 성장과 더불어 이루어 지는 각자의 영적성장과 성숙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 속해 있기에 우리는 영적난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성장 성숙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하느님-그리스도-성령의 삼위일체 교회가정공동체입니다. 


오늘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열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곳도 주일 교회공동체 전례때였고, 이어 토마스가 예수님을 체험한 곳도 한 주 후의 주일 교회공동체 전례때였습니다. 은총의 선물같은 부활하신 주님의 체험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나타나셔서 토마스 사도에게 당신을 체험시키는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공동체에 속해 있었기에, 또 성 토마스 덕분에 토마스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란 고백과 더불어 주님의 귀한 말씀을 듣는 제자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참으로 교회공동체형성에, 성장과 성숙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인류에게 주신 참 좋은 최고의 선물인 이 거룩한 성체성사, 미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가 속한 교회가정공동체를 끊임없이 보호해주시고 성장, 성숙시켜 주시며,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참 좋은 믿음도 선물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주님을 찬양하라, 모든 사람들아! 우리 위한 주님 사랑 굳건하여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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