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인식(self-knowledge)의 전인적 치유와 구원 -중심, 균형, 조화, 소통-2018.7.5.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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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5.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아모7,10-17 마태9,1-8



자기인식(self-knowledge)의 전인적 치유와 구원

-중심, 균형, 조화, 소통-



삶의 중심에 따른 삶의 균형, 삶의 조화, 삶의 소통입니다. 이래야 자기인식의 전인적 치유와 구원입니다.  참으로 영육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영육이, 심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영육은, 심신은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영육의, 심신의 건강해야 참 나의 삶입니다. 몸은 아프더라도 영혼은, 마음은 건강해야 합니다. 이래야 깊은 자기인식을 지닐 수 있습니다. 참으로 깊은 자기인식을 지닌 사람이 실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무지ignorance의 병’이 치유되어야 자기인식의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무지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무지로 인해 죄인도 되고 병자도 되고 악마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바로 자기인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알아가는 공부가 영육의 건강에 필수입니다. 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이 참으로 본질적임을 깨닫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간탐구와 하느님 탐구는 함께 갑니다. 나와 하느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영육의 건강, 심신의 건강을 위해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만남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여 영육이, 심신이 건강한 참 나의 삶을 위해 소통, 균형, 조화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제가 요즘 계속 몸의 중심과 균형을 잡는 물리치료를 받으며 새삼 깨닫는 바가 몸의 중심과 균형입니다. 몸의 중심과 균형은 마음의 중심과 균형에도 직결됩니다. 바른 몸 자세에 바른 마음 자세입니다.


소통과 함께 가는 ‘균형balance과 조화harmony’입니다. 균형과 함께 가는 소통과 조화입니다. 소통과 균형과 조화는 셋이자 하나요 영육의 건강에 필수적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건강한, 아름다운 사람은 소통의 사람, 균형의 사람, 조화의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이 참 자기인식에 도달한 사람입니다.


‘병dis-ease’의 영어 어원이 심오합니다. '병dis-ease’은 바로 ‘편치 않은, 불편한 것’을 뜻합니다. 바로 조화가 깨져 부조화(不調和;dis-harmony)일 때, 균형이 깨져 불균형不均衡일 때, 소통이 막혀 불통不通일 때 편치 않은 것입니다. 바로 삶의 중심과 질서가 깨져 불균형과 부조화, 불통으로 야기되는 심신의 병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병sickness’의 뿌리에 부조화, 불균형, 불통의 ‘죄sin’가 있음을 봅니다.


자연과의, 이웃간의, 나와의 조화와 균형과 소통이 깨졌을 때 바로 심신의 병입니다. 바로 이들의 뿌리에는 주 하느님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주 하느님과의 조화와 균형, 소통의 관계가 바로 심신 건강의 근본 처방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죄의 회개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모토의 우선순위대로 끊임없이 공동전례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과의 조화와 균형, 소통을 추구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를 날로 깊이하는 우리들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복음의 중풍병자의 치유과정도 좋은 깨달음을 줍니다.


주님과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치유입니다. 이에 전제되는 바, 중풍병자 동료들의 간절한 믿음이었습니다. 치유에 앞서 필수전제조건이 간절한 믿음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하였다.’


치유 기적에 전제되는 바, 바로 우리의, 동료들의 간절한 믿음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권능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권위있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주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니신 파스카의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바로 죄가 병의 뿌리임을 직시하신 주님의 근본적 처방입니다. 부조화, 불균형, 불통의 죄가 주님을 만남으로 용서받아 주님과 조화, 균형, 소통의 관계로 변할 때 저절로 심신의, 영육의 치유입니다. 


바로 위 말씀은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합니다. 우리 모두 간절한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아 치유의 구원을 받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하여 미사가 시작되면서 곧장 이어지는 참회의 고백과 자비송이 참으로 고마운 것입니다. 그러니 영육의 건강에 죄를 용서받는 매일의 성체성사와 수시로 받는 고백성사의 두 평생성사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어지는 주님의 중풍병자의 결정적 치유의 구원 선언입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주님은 물론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완전 회복된 영육의 치유를 뜻합니다. 마치 미사가 끝난후 치유받고 파견될 우리의 복된 모습과 흡사합니다. 죄의 용서를 통해 부조화는 조화로, 불균형은 균형으로, 불통은 소통의 관계로 완전 전환되었음을 뜻합니다.


심신의, 영육의 치유와 건강에 필수전제조건이 믿음이요 주님을 만나 죄의 용서를 받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믿음-죄의 용서-영육의 치유-참 자기인식의 건강’의 순서입니다. 


새삼 주님과의 참 만남이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병의 근본적 처방이 바로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과 참으로 만날 때 참 나의 진아眞我의 건강한 삶입니다. 바로 제1독서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와 진짜 주님의 예언자 아모스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전자가 ‘가아假我의 사람’이라면 후자 아모스는 ‘진아眞我의 사람’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난 아모스의 통쾌한 고백입니다.


“나는 예언자가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떼를 몰고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참으로 자기를 알았던 자기인식에 정통한 영적으로 건강한 진아眞我의 사람, 상쾌爽快, 유쾌愉快, 통쾌痛快의 삼쾌三快의 아모스 예언자입니다. 아마 육적으로도 쾌식快食, 快辯, 快眠의 건강한 삼쾌三快의 사람 아모스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외적으로는 아마츠야의 승리같지만 진짜 승리는 진아의 예언자 아모스입니다. 바로 이어지는 아마츠야에 대한 심판예고가 이를 입증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모두의 간절한 믿음을 보시어 죄를 용서하시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어, 참 나를 알게 하시고 조화, 균형, 소통의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시편1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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