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聖化의 여정 -거룩하신 주님과의 만남-2018.7.14.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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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4.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이사6,1-8 마태10,24-33



성화聖化의 여정

-거룩하신 주님과의 만남-



오래 전 잠시 외국에 머물 때 친근하게 느껴지는 수도형제들에게 자주 웃으며 던지던 짧은 영어 덕담이 생각납니다.


“You are a holy monk! (너는 거룩한 수도승이다!)”

말하면 그 형제도 화답했습니다.

“You are a Korean holy monk!(너는 한국의 거룩한 수도승이다!)”


서로 유쾌하게 웃으며 대화를 주고 받으면 관계 역시 더욱 친밀해지는 느낌입니다. 좋은 신자, 착한 신자보다는 거룩한 신자가 더욱 절실한 시대라고 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은 모두 거룩함에로 불린 ‘성화의 여정’중에 있는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위에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성서에도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하게 되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1베드1,15-16)


매일 3시경 기도때마다 듣는 성경소구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믿는 이들 모두의 의무입니다. 인간이 지닌 악성惡性이나 마성魔性, 광기狂氣에 대한 치유도 거룩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이뤄집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도 ‘성화의 여정-거룩하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정했습니다.


아모스서, 호세아서에 이어 오늘부터 시작되는 제1독서 이사야서입니다. 참 다양한 예언자들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좋습니다. 다양한 예언자처럼 우리 모두 각자 유일무이한 성인이 되라 불린 성소자聖召者들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이사야 성소체험이 참 인상적입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도다.”


외치는 사랍들의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되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합니다.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둔 미사전례 거행시 감사송에 이은 ‘거룩하시다’입니다. 매일 이사야 예언자처럼 우리 역시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 거룩해지는 미사은총입니다.


“큰 일 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뵙다니!”


거룩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이사야 예언자의 즉각적 반응입니다. 거룩하신 분의 거울에 고스란히 드러난 더러운 죄인으로서 자신의 실상을 발견한 이사야 예언자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고백을 연상케 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5,8ㄴ)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입니다. 이런 거룩하신 주님 체험을 통해 피조물인 인간에 대한 통절한 자각이 겸손의 기초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이사야의 정화과정 역시 인상적입니다. 사랍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손에 들고 이사야 입에 대고 말합니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그대로 미사중 거룩한 주님을 만난 우리 모두에 대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만나 그분의 성체성혈을 모심으로 죄는 사해지고 정화되고 성화되어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마지막 주님과 이사야가 주고 받는 대화도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드러맞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주님의 물음에 이사야 예언자의 답은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응답입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 예언자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어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되는 우리들입니다. 비단 미사전례뿐 아니라 모든 시간경 전례, 묵상시간, 성독시간 등 모두가 거룩하신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시간입니다. ‘주님과 만남의 시스템’과도 같은 일과표가 고맙습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위로 받고 마성이나 악성은 광기, 내적 상처는 치유됩니다. 저절로 이어지는 영육의 정화와 성화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기쁨과 평화도 선물 받고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해지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시편성무일도와 미사를 공동으로 바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이 의도하는 바 마음의 순수요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거룩하신 주님을 체험할 때 주님께 대한 두려움을 지니게 됩니다. 주님의 거룩함의 체험과 주님께 대한 두려움은 함께 갑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황홀과 외경畏敬을 겸한 거룩하고 복된 사랑의 두려움입니다. 얼마전 왜관 수도원의 도반 방에 들어섰을 때 액자의 한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敬聽경청!”


‘경청傾聽(귀기울려 들음)’이 아니라 ‘경청敬聽(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음)이었습니다. 참으로 거룩하신 주님을 만날 때 경천애인敬天愛人이요 경청敬聽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 할 때 세상을,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을 제1독서 이사야서가 줍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문제는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부족에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아시는 거룩하신 주님을 사랑하여 알아갈수록 주님께 대해 깊어지는 외경심과 더불어 세상 두려움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거룩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만나는 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리스도와의 앎의 깊이와 함께 가는 하느님 인식이요 성화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며,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님과 앎의 깊이는 그대로 하느님 아버지와 앎의 깊이로 직결됨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고백하고 증언하며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더불어 깊어지는 거룩한 주님과 앎의 관계요 세상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 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정화淨化하시고 성화聖化하시어 당신의 거룩한 빛의 사람으로 파견하십니다. 더불어 세상에 속화俗化되지 않고 세상을 성화聖化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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