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여정 -섬김이 답이다-2018.7.25. 수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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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25. 수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코린4,7-15 마태20,20-28



섬김의 여정

-섬김이 답이다-



삶은 섬김입니다. 섬김이 답입니다. 섬기라 주어진 삶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입니다. 그러니 살아야합니다. 끝까지 살아야합니다. 교만과 절망은 한 실재의 양면입니다. 무지의 결과가 교만이고 교만의 끝은 절망입니다. 교만이나 절망이 정말 큰 죄입니다.


참으로 섬김의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삶의 모든 위기의 어려운 순간들을 겸손의 계기로 삼아 끝까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견디며, 섬기며 살아 갑니다. ‘교만-절망’의 반대가 ‘겸손-희망’입니다. 섬김의 사람들은 바로 겸손의 사람들이요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제 소원은 셋인데 둘이 추가되어 다섯입니다. 모두가 사제서품 상본의 성구(마르10,45)처럼 ‘섬김의 삶’을 목표로 합니다.


-‘죽는 그날 그날까지 매일 1.새벽마다 강론을 쓰는 것, 이어 2.묵주기도하며 수도원 한바퀴 돌며 산책하는 것, 3.미사봉헌하는 것, 셋에다 4.공동체에 짐이 되지 않는 것, 5.주님의 전사戰士로 싸우다, 즉 ’기도하다 또는 공부하다 또는 일하다’ 죽는 전사戰死하는 것, 두가지가 추가되어 다섯이 제 소원입니다.’-


바로 이 다섯이 제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소원입니다. 어느 세 거룩한 은수자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어떻게 사느냐?'의 질문에 영어로된 짧은 답변입니다.


“We served and supported with each other(우리는 서로 섬기고 받쳐주었다).”


서로 섬기고 받쳐주며 살아가는 사랑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어제 복음 말씀처럼 예수님의 참가족입니다. 예수님 친히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분도 성인 역시 당신의 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학원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학원을 설립해야 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설립하는데 거칠고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제정하기를 결코 원치 않는 바이다.”(성규;머리45).


하여 분도 수도원은 죽을 때까지 주님을 섬기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공동체 모두가 함께 하느님을 찾는 도장이 됩니다. 결코 졸업이 없는 평생 섬김을 배워야 하는 죽어야 졸업인 평생 섬김의 학인學人이 분도회 수도자입니다. 


섬김의 사랑, 섬김의 겸손, 섬김의 공동체, 섬김의 권위, 섬김의 리더십, 섬김의 직무입니다. 섬김이 모두입니다. 섬김이 답입니다. 영성이 있다면 ‘섬김srvice)과 종(servant)’의 영성이 있을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제자공동체는 한마디로 동상이몽의 철부지 공동체입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섬김(service)’의 과정보다는 ‘지위(status)’나 ‘권력(power)’의 결과에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세 번째 수난과 부활 예고후에 뒤따릅니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제자들은 스승 예수님의 심중과는 아랑곳 없이 보이는 외적 자리의 결과에 연연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섬김의 모범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은 섬기러 오셨고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그분의 온 삶은 모든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과 섬김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모와 치욕중에 ‘아무것도 아닌 분(a nobody)’으로 죽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비우셨습니다(He totally emptied himself for us).’ 그것이 바로 위대함입니다. 


바로 오늘 수난과 부활 예고에 이어지는 다음 말씀은 죽음을 앞 둔 예수님의 유언처럼 들립니다. 당대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그대로 ‘에버 오울드 에버 니유’, 시공을 초월하여 늘 새롭게 와닿는 말씀입니다. 백성위에 군림하고 세도를 부리는 세속의 지도자들과는 분명히 선을 그은 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20,26-28).


그러니 우리 믿는 우리들의 삶은 섬김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섬김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주님은 약하고 부족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끊임없이 엄청난 하느님의 힘이란 보물을 부어 주십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서 샘솟는 예수님의 생명, 성령이 백절불굴, 칠전팔기의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섬김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하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딛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예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어 섬김의 여정에 충실하고 항구할 수 있게 하십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시편126,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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