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여정旅庭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깨달음이다-2018.7.26.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 안나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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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26.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 안나 기념일

                                                                                                                   예레2,1-3.7-8.12-13 마태13,10-17



깨달음의 여정旅庭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깨달음이다-



어제 강론 제목은 ‘섬김의 여정’이었고, 오늘은 ‘깨달음의 여정’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깨달음입니다. 어제는 공동체 하루 휴가날이었습니다. 오전에는 시내에서 86세 고령의 수도형제와 함께 모두 아홉 수도형제들이 ‘미션 임파서블’ 영화를 봤고 오후에는 ‘수상한 흥신소’란 연극도 봤습니다. 


내용보다도 하루 긴장을 풀고 모두를 공동체에 맡기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함께 지낸 자체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코스모스cosmo의 질서’의 삶에 때로는 ‘카오스chaos의 혼돈’도 필요한 것이 인간 삶의 현실이자 리듬이자 지혜입니다.


저는 정장하고 책가방을 들고 ‘고전적classic’(?) 스타일로 함께 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책은 보든 안보든 늘 책가방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몸에 밴 탓입니다. 좀 무거워도 들고 다녀야 마음도 편합니다. 새삼 공동체는 ‘최고의 치유제’이자 ‘깨달음의 학교’임을 발견했습니다. 얼마전 수도원에서 머물다간 어느 평신도 신학자의 깨달음도 신선했습니다.


-“수도원에서 깨달은 점

1.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2.오지랖은 넓히지 말고 줄여야 한다.

3.하고픈 말보다 해서 안될 말을 먼저 분간하자.

4.할 수 있는 일도 다 하지 말고 줄여야 한다.

5.중요한 일에도 순서가 있다.

6.시간 관심 아껴 공부하자.”-


새삼 수도공동체가 깨달음의 학교임을 입증하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삶은 깨달음의 여정입니다. 깨달음이 없는 삶은 무의미합니다. 부단한 깨달음을 통해 치유되고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고 너를 알아가면서 내외적으로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삶입니다. ‘아, 그렇구나!’, ‘아, 그럴수 있구나!’, ‘아, 그게 현실이구나!’ 부단히 깨닫고 배우고 알아가면서 서로간 이해와 수용도 깊어지고 자유로워지는 공동체 삶입니다. 


깨달음의 여정은 ‘앎의 여정’이자 ‘자유의 여정’입니다. 그러니 삶은 얼마나 축복된 은총인지요! 이런 깨달음의 여정과 더불어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무지의 병의 치유에 깨달음보다 더 좋은 약도 없습니다. 깨달음의 여정에 항구할 때 저절로 치유되어가는 무지의 병입니다. 새삼 무지의 병의 치유도 평생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여정이란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바로 복음에서 인용된 이사야서 내용은 무지한 사람이 그 대상입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도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바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무지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보고 깨달아 알라 있는 눈이요, 듣고 깨달아 알라 있는 귀입니다. 바로 무디어진 마음이 문제입니다.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주님과 늘 함께 할 때 선사되는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마음따라 보는 눈이요 마음따라 듣는 귀입니다. 마음의 겸손과 순수가 우선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참으로 하느님을, 이웃을 사랑할 때 은총처럼 주어지는 마음의 겸손이요 순수란 선물입니다. 바로 겸손과 순수는 수행의 궁극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에서 샘솟는 깨달음이요 저절로 터져 나오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무지의 치유에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는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가 얼마나 고마운지요. 이런 깨달은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을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은 물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참행복입니다. 정말 하늘 나라의 신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의 발견도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행복을 옆에 놔두고 눈이 가려 보지 못보고 불행하게 사는 이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청할바 깨달음의 은총, 깨달음의 행복입니다.


무지는 만악의, 만병의 근원입니다. 옛 교부들이 말하는 여덟가지 악한 생각들, 즉 ‘탐식, 음욕, 탐욕, 분노, 슬픔, 나태, 허영, 교만’ 모두도 무지의 산물이요, 불가에서 말하는 탐진치 삼독(貪瞋痴 三毒),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 역시 무지의 산물입니다.


바로 이런 무지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 깨달음입니다. 회개와 함께 가는 깨달음입니다. 회개의 은총,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하여 회개를 그리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음의 여정은 바로 ‘회개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역시 예루삼렘의 회개를, 깨달음을 촉구합니다. 첫사랑의 순수를 회복하라 외치며 생수의 원천을 찾으라 외칩니다. 한마디로 하느님과 자기를 잊은 무지에서 파생된 재앙임을 밝힙니다.


“가서 예루살렘에 듣도록 외쳐라. 네 젊은 시절의 순정과 신부 시절의 사랑을 내가 기억한다. 너는 광야에서, 씨뿌리지 못하는 땅에서 나를 따랐다.---정녕 내 백성이 두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인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팠다.”


오늘도 여전히 무지로 인해 생수의 원천인 주님을 버리고,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 동굴을 파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무지로 인해 여전히 반복되는 악순환의 현실입니다. 무지로 인해 모래위에 집짓는 인생들이요, 밑빠진 독에 물붓듯 하는 참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끊임없는 회개와 깨달음의 은총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무지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깨달음의 은총과 더불어 마음의 겸손과 순수도 선물하십니다.


“주님,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당신을 아는 이들에게 자애를 베푸시고, 마음 바른 이들에게 정의를 펼치소서.”(시편36,10-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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