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합당한 삶 -스토리와 내용이 있는 성체성사적 삶-2018.7.29. 연중 제17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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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29. 연중 제17주일                                                                           2열왕4,42-44 에페4,1-6 요한6,1-15



부르심에 합당한 삶

-스토리와 내용이 있는 성체성사적 삶-



한밤중 어느 신자분의 카톡 메시지에 잠을 깼습니다. 착하고 약하고 돈없는 이들이 참 살기 힘든 세상입니다. 예나 이제나 비슷한 삶의 현실입니다. 외적으로볼 때 화려해 보이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 데 참 공허한 삶도 많습니다.


“신부님, 사는 게 참 힘드네요. 돈도 직업도 꿈도 이룰수 없고 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굴욕속에 생존을 위해 견뎌내야 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저절로 나오는 질문입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힘든 세상입니다. 며칠전 공동체 휴가날 관람한 영화와 연극이 생각납니다. 딱 잡히는 메시지가 없었습니다. 순간 두 가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아. 스토리story와 내용contents이 없구나. 한번은 생각없이 그냥 볼 수 있겠지만 두 번은 볼 수 없겠다. 우리 삶도 그럴 수 있겠다. 생각없이, 의식없이, 의미없이 살다보면 참 스토리도, 내용도 빈약할 수 있겠다.”


이처럼 아무리 외적으로 부요하고 화려하고 활동적인 삶이라 해도 각자 나름대로 고유한 스토리story가 없으면, 내용contents이 없으면, 참 공허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여러분의 각자 삶의 스토리는 잘 전개되고 있는지요. 지금까지 내 삶의 스토리에 만족하는지요. 과연 내 삶의 내용은 의미있는 내용으로, 기쁨과 감사의 행복한 추억의 내용들로 차 있는 지 묻고 싶습니다.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이 답을 줍니다.


“당신이 그 손을 벌려 주시고 우리 원을 채우나이다.”


주님께서 당신 손을 펼치시어 우리를 은혜로 채워주시기에 비로소 충만한 삶입니다. 믿는 이들은 주님을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라 고백합니다. 이런 주님이 빠졌기에 스토리 없는, 내용 없는 공허한 인생입니다. 바오로의 한 말씀이 우리 삶의 중심을 잡아 줍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갈 때 비로소 내 삶의 스토리요 의미 가득한 내 삶의 내용들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야기story와 내용contents가 있는 성체성사적 삶’으로 정했고, 이를 위한 일곱가지 요소를 묵상했습니다.


첫째, 중심입니다.

삶의 중심이 우선입니다. 삶의 중심에 따른 삶의 질서요, 삶의 균형과 조화입니다, 삶의 중심이 없어, 불안과 두려움입니다. 안정과 평화가 없습니다. 삶의 중심에 깊이 뿌리 내릴수록 스토리도 컨텐츠도 저절로 충실해 집니다. 계속되는 불볕더위에 시들어 죽어가는 풀들과는 달리 뿌리 깊은 나무들은 독야청청獨也靑靑합니다.


바로 하느님 중심입니다.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내린 제1독서의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만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 역시 하느님의 사람, 교회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자부심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곤경중에도 하느님 중심에 뿌리 내리고 있기에 흔들림이 없는 옥중의 바오로 사도요 복음의 예수님이십니다. 사무엘과 바오로, 예수님의 삶의 스토리와 컨텐츠는 얼마나 탄탄하고 꽉차 있는 지요. 


둘째, 작은 것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작은 것이 소중합니다. 사무엘 예언자의 놀라운 기적도, 예수님의 놀라운 것도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참으로 영성가들은 지극히 작은 것에 섬세하며 깨어있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참으로 작은 것에 집중할 때 놀라운 기적도 일어납니다.


보십시오. 어느 정성스런 사람이 맏물로 만든 보리빵 다섯 개를 가져왔기에 엘리사는 백명이나 되는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었습니다. 복음에서 예수님 역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기에 오천명 장정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작은 것을 영어로 하면 ‘디테일details’이라 부릅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다’,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디테일에 집중하라’, 어디선가 읽은 글귀도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셋째, 사랑입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연민의 사랑입니다. 엘리사는 가져온 보리 빵 스무개를 즉시 나누니 백명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빵 다섯 개로 오천명이 배불리 먹였고 남은 조각은 12광주리나 가득찼다 합니다. 바로 사랑의 기적을 보여줍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광야인생중의 우리에게 당신 생명의 빵을 나눠주십니다. 


넷째, 감사입니다.

사랑의 기적, 감사의 기적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에 대해 감사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절망적 상황에도 예수님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습니다. 참 믿음은 감사로 표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게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에 감동하신 하느님은 기적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를 감사의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다섯째, 나눔입니다.

삶은 나눔입니다. 사랑의 나눔입니다. 고립단절이 지옥입니다. 나눔을 통한 관계 맺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혼자는 살 수 없습니다. 끊어져 단절되면 죽고 이어져 연결되면, 연대하면 삽니다. 나눠야 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나눠야 삽니다. 오늘 엘리사는 보리빵 스무 개를 즉시 나눠 백명이 먹고도 남았다 합니다. 나눌 때 남습니다. 


나눌 때 주님의 축복이 뒤따릅니다. 복음의 예수님은 보리빵 다섯 개를 나누니 오천명이나 먹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합니다. 나눌 때 남습니다. 나눔의 축복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 생명을 나눠주시고자 이 거룩한 미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여섯째, 하나입니다.

하나를 추구하십시오. 하나가 내적으로 분열된 우리를 치유해 줍니다. 하나를 체험할 때 저절로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전력을 다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시십니다. 


이런 하나의 체험이 우리를 단순하고 순수하게 합니다. 내적일치의 삶을 살게 합니다.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신 주님이신 하느님은 우리 모두 당신과의 일치를 원하십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과 하나된 내적일치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일곱째, 초연함입니다.

집착없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사랑, 초연한 사랑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후 예수님의 처신이 참 신선한 충격입니다. 군중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홀연히, 단호히 떠납니다. 떠나야 할 때 잘 떠나는 뒷모습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습니다. 


분별력은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 내신 후 미련없이 떠나십니다.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고독과 침묵의 외딴곳에서 삶의 중심을 잡고 아버지와의 깊은 친교를 위해 산으로 물러가십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많은 것을 소유해도 삶은 한없이 공허할 수 있습니다. 각자 삶의 스토리가, 내용이 없으면 기쁨도 평화도 행복도 없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삶의 스토리를 잘 써가고 있습니까? 삶의 내용은 어떻습니까? 믿음, 희망, 사랑으로,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삶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스토리와 내용이 가득한 성체성사적 삶을 살아가십시오. 오늘 알려드린 일곱까지 요소를 명심하면서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중심, 작은 것, 사랑, 감사, 나눔, 하나, 초연함 일곱가지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스토리와 내용이 충실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제 좌우명 애송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중 넷째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오늘 복음중 예수님 삶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늘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열려있어야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요, 삶의 스토리도, 삶의 내용도 깊고 풍부해집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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