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12. 연중 제19주일 1열왕19,4-8 에페4,30-5,2 요한6,41-51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
-기도, 사랑, 생명의 빵-
요즘 기록적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8월10일쯤 지나면 찬바람이 나고 더위도 물러가는데 8월7일 입추가 지났는데도 여전한 폭염입니다. 이번주 한겨레 주간지도 폭염을 특집기사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폭염은 사회적 약자를 노린다’, ‘폭염에 타들어간 타향살이-외국인 노동자들’, ‘부채로 폭염과 싸우는 사람들’,‘불타는 지구촌, 북극권도 30도 넘겼다’, ‘폭염에 생사 오가는 홀몸노인들’ 등 폭염에 따른 분석기사들이였습니다. 이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 종말까지 언급되고 있습니다. 일간신문의 컬럼 내용도 생각납니다.
“인류는 기후 변화를 막을 기회를 영원히 놓쳤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지금의 기후변화가 인간활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인간이 기존 삶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교정한다면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이론적 틀은 여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인류는 그럴 수 있을까?”
대목이 화두처럼 남아있습니다. 계속되는 폭염으로 인해 참 힘들고 어려운 광야 여정의 삶입니다. 말그대로 폭염과의 전쟁입니다. 삶은 전쟁입니다. 영적전쟁입니다. 참으로 내적혁명의 삶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으로 정했고, ‘기도와 사랑, 생명의 빵’의 세측면에 걸쳐 그 구체적 내용을 나눕니다.
오늘 제1독서를 읽던 중 반가운 말마디가 한 눈에 들어왔고, 13년전 수녀원 연피정 지도시 식당에 붙어있던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주님의 천사가 광여정중의 엘리야에게 한 말씀입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피정 수녀님들에게 공감이 가는 말씀이고, 오늘 미사에 참석한 광야 여정중의 형제자매님들에게도 고맙고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일어나 생명의 빵인 주님을 모시고 기력을 회복합시다. 갈 길이 멉니다. 하여 오늘 주님은 고맙게도 광야여정중에 지친 우리를 오아시스와 같은 수도원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은 그대로 엘리야의 인생 광야 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성공적 광야 여정의 삶을 상징하는 엘리야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우리에겐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밤낮으로 사십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그대로 인생 광야 순례 여정중의 미사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미사를 통해 생명의 빵, 주님을 모심으로 힘을 얻어 목적지인 하느님의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의 소망이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일 것입니다. 오늘 그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늘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답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살기위해 기도해야 하고, 기도해야 삽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에는 영원히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평생 공부하는 마음으로, 배우는 마음으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이자 대화입니다. 사랑과 생명의 소통이자 대화입니다. 하느님 없이 인간은 영원히 반쪽의 미아인생이라 길잃어 방황하기 십증팔구입니다. 하여 온갖 정신질환에 급기야는 삶의 의미를 잃고 자살입니다.
오늘 광야 여정중의 엘리야를 보십시오.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목숨을 끊었을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주님을 만나 살아나는 엘리야입니다. 멀리 있는 듯 하지만 엘리야의 광야 여정 중 늘 함께 했던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는 엘리야입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제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 엘리야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내적평화를 얻었음이 분명합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할 때 그냥 주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나 엘리야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다정히 말하면서 깨웁니다, 엘리야가 일어나 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다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 맡에 놓여 있었다 합니다.
참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입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은 이처럼 당신 수호천사를 보내시어 엘리야를 돌보듯이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늘 기도할 때 하느님의 현존에 깨어 있을 수 있고, 오늘 지금 여기에 충실할 수 있습니다.
기도와 더불어 함께 가는 믿음이요, 실망도 절망도 원망도 사라집니다. 사실 광야 순례 여정 중의 영적전투에 기도보다 더 좋은 무기도 없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참으로 다양한 기도입니다. 오늘 엘리야는 죽여달라는 기도를 했지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기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권하고 싶은 것이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사실 광야 순례 여정 중에 찬미와 감사의 시편기도와 미사보다 더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의 체험적 진리입니다. 하여 저는 이 두 기도를 영적주식이라 칭하곤 합니다.
수도영성이 보편화되어 가는 시대입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찬미와 감사의 시편기도와 미사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첫 부분의 내용은 얼마나 흥겹고 사랑스러운지요.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이처럼 하느님 사랑은 찬미와 감사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찬미입니다. 사랑의 찬미에서 샘솟는 마음의 순수와 열정입니다. 사랑의 찬미가 주님을 닮은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찬미와 감사의 기도야말로 축복의 샘, 행복의 샘, 기쁨의 샘, 평화의 샘입니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찬미와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와 감사가 운명을 바꾸고 파스카의 삶을 살게 합니다.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을 살게 합니다.
둘째, 늘 사랑하십시오.
사랑이 답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사랑하라는 소명을 받고 세상에 파견된 우리들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삶의 의미입니다. 사랑이 없어 허무와 무의미의 어둔 삶입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육신의 영양실조보다 더 심각한 것이 영혼의 영양실조 사랑 결핍입니다. 정체성이 희미하고 자존감이 낮은 것도 순전히 사랑 결핍에서 기인합니다. 기도뿐 아니라 사랑도 배워야 합니다. 기도뿐 아니라 사랑에도 영원한 초보자들인 우리들입니다.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만이 성령을, 하느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하느님을, 나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앞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에서 고백되는 하느님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요.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바로 오늘 제1독서 광야여정중의 엘리야의 구원을 통해 그대로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바라볼 대상, 기쁨의 샘이신 주님을 모신 우리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사랑의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합니다.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바로 하느님을 닮은 용서의 사랑입니다. 사랑할수록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본연의 참나의 실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바로 그 사랑의 영원한 롤모델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사랑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입니다. 우리 사랑의 영원한 롤모델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비로소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입니다.
셋째, 늘 생명의 빵,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생명과 빛, 우리의 기쁨, 우리의 평화, 우리의 사랑, 우리의 희망, 우리의 진리, 우리의 길과 문, 우리의 모두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바오로뿐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없다면, 무슨 맛, 무슨 기쁨, 무슨 재미로 광야인생 살아갈 수 있을런지요.
시편 23장의 첫 구절,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쉬울 것 없어라.’ 대신 ‘두려울 것 없어라.’, ‘부러울 것 없어라.’, ‘걱정할 것 없어라.’ 무엇을 넣어도 다 통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파스카 예수님의 미사에 참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순전히 은총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음 예수님 말씀이 이를 입증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아버지께서 인도해 주셨기에 이렇게 예수님 앞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날이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예수님을 만날 때 영원한 생명이요 구원의 성취입니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그러나 이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는 이는 영원히 살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영원히, 늘 찾아 만나야 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생명의 빵, 예수님을 모시고 주님과 하나될 때 생사를 넘어 영원한 삶, 충만한 삶의 실현입니다. 주님은 고맙게도 연중 제19주일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을 위한 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늘 기도하십시오.
2.늘 사랑하십시오.
3.늘 생명의 빵, 주님을 찾으십시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시어 충만한 삶을, 행복한 성공적 광야 순례 여정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이 오늘 강론을 요약합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