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매력적인 파스카의 예수님 -배려와 여유, 유머와 지혜, 그리고 사랑-2018.8.13.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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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13.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에제1,2-5.24-28ㄷ 마태17,22-27

        


참 매력적인 파스카의 예수님

-배려와 여유, 유머와 지혜, 그리고 사랑-



오늘 제1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서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밖, 바빌론 유배지에서 활동한 최초의 예언자 에제키엘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땅입니다. 하느님은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에 따라 예언자들을, 성인들을 보내십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은 에제키엘의 환시와 주님의 발현입니다. 이어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와 성전세를 바치시는 내용입니다. 


과연 복음과 독서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여러모로 묵상해 봤습니다. 우선 복음부터 살펴봅니다. 우선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입니다. 늘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오늘 지금 여기에서 깨어 사셨던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에 대해,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는 제자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에 대한 장미빛 환상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제자들의 무지와 불신을 반영합니다. 예수님의 강조점은 수난이 아닌 부활에 있습니다. 부활을 앞당겨 사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셨기에 배려와 여유, 유머와 지혜, 그리고 사랑이 넘칩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참 매력적인 주님-배려와 여유, 유머와 지혜, 그리고 사랑-’으로 정했습니다. 수난과 부활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참 따뜻하고 평온해 보입니다. 슬퍼하는 제자들에 대한 배려가 눈물 겹도록 고맙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성전세를 바치는 예화를 통해 주님은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먼저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성전세를 바치시는 내용은 마태복음에만 실린 고유 자료입니다. 성전세를 바치라는 내용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과 부활 예고로 인해 제자들의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일신시킵니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자기 자녀들에게서냐, 아니면 남들에게서냐?”


베드로의 “남들에게서입니다.”라는 답변을 예수님 역시 긍정하시며 왜 성전세를 납부하는 지 설명하시고 세금 납부의 대책까지 마련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 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바로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인품이 빛을 발합니다. 제자들에 대한 배려와 여유, 유머와 지혜, 그리고 사랑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인품의 원천은 하느님과 제자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배려와 여유로 드러나고, 성전세를 바치라는 지혜로운 처신으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연상되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바치라’는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입니다.


여기에서 물고기 입에서의 스타테르 한 닢의 자연이적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입니다. 자연이적은 처음부터 대담에 딸려 있지 않았고 후대에 덧붙여졌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제 생각은 이와 다릅니다. 바로 황당해 보이는 자연이적은 파스카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할 뿐 아니라, 주님의 유머처럼 저절로 웃음짓게 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파스카의 예수님 수중에 있다는 상징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이제는 파스카의 예수님과 제자들의 공동체가 성전이 됩니다.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4년젼 산티야고 순례시, 매일미사때 마다 매일 바뀌는 장소를 통해 미사가 거행되는 세상 어디나 하느님의 거룩한 제대임을 깨달았습니다. 매일 순례자 숙소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우선 물색해 두는 것이 다음 날 새벽 미사드릴 제대 자리였습니다. 


매일미사 도구를 배낭에 짊어지고 순례하는 제가 흡사 파스카의 예수님을 등에 업고 ‘움직이는 성전’처럼 생각되니 샘솟는 힘을 느꼈습니다. 이때 가장 많이 바쳤던 화살기도는 약식기도서 3시경 첫 머리에 나오는 ‘주님의 집에 가자할 제 나는 몹시 기뻣노라.’는 시편 성구였습니다.


그러니 파스카의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제자들의 공동체가 성전인데 새삼 무슨 성전세를 납부할 까닭이 있겠는지요. 그래도 스캔들이 되지 않기 위해 성전세 납부를 권고합니다. 모두를 배려한 사랑이요 이런 사랑과 함께 가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은 환시를 통해 세상 어디나 하느님 계신 성전임을 깨닫습니다. 가시적 예루살렘뿐 아니라 세상 모두가 하느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깨닫습니다. 바빌론 칼데아인들의 땅 크바르 강가에 발현하신 주님을 환시중에 체험한 에제키엘은 주님 영광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 후렴이 온 세상이 주님의 영광 가득한 성전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영광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하여 저는 신구약성서뿐 아니라 주님 영광 가득한 자연도 자연성서로 렉시오 디비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주장합니다. 성전은 밖에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파스카의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성전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이 눈이 열렸다면 에제키엘 예언자처럼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바로 파스카의 주님을 모신 그 자리가 주님 영광 가득한 성전임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중심이 되신 파스카의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중 우리 공동체의 중심으로 계시됩니다. 주님을 모심으로 우리 역시 주님 영광 가득한 거룩한 성전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의 참 매력적인 인품을 닮게 합니다. 바로 ‘배려와 여유, 유머와 지혜, 그리고 사랑’입니다.


“주님의 위엄 하늘과 땅에 가득하시다. 그분이 당신 백성 위하여 뿔을 높이셨네.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 그분께 가까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은 찬양하여라.”(시편148,13ㄷ-14ㄱㄴㄷ).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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