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聖德의 소명召命 -혼인, 이혼, 독신-2018.8.17.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7,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8.8.17.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에제16,1-15.60.63 마태19,3-12


                                                                    

                                                                       성덕聖德의 소명召命

                                                                         -혼인, 이혼, 독신-



엊그제 어느 형제로부터 카톡을 통해 전해 온 사진이 흡사 성화처럼 너무 아름다워 감동했습니다. 성전 제대를 배경으로 사제를 중심으로 한 고운 옷차림의 부부사진 앞에는 교황님의 ‘강복장’이 있었고, 사진 아래에는 다음 글귀의 메시지가 있었고, 얼마 지나 격려와 칭찬의 메시지로 화답했습니다. 그대로 인용합니다.


-“신부님, 하는 일도 별로 없이 갈등과 번민, 고민을 조금 하고 살았을 뿐이데 교황님의 성가정 강복장을 받았습니다. ㅎㅎ.”


 “부부 사진이 참 아름답고 성화聖畫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형제님은 성공인생이시고 이미 하늘 나라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주님 축복을 빕니다.”-


혼인이후 아마 30년 이상, 화목한 성가정을 이루고 사는, 우리 수도원과 거의 30년 이상 관계맺고 사는 부부입니다. 특히 돌아가신 마인라도 수사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분들입니다.


젊거나 나이들었거나 함께 화목하게 성가정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분들의 모습은 얼마나 존경스럽고 아름다운지요. 참으로 어려운 것이 함께의 공동생활이고, 비교하긴 그렇습니다만, 수도가정 공동생활보다 더 힘든 것이 부부가정 공동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 힘들어도 끝까지 가정을 이뤄 사는 부부들에게 저는 피정 강의 중 자주 격려합니다.


“함께의 공동생활은 답이 없습니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고 합니다. 권태기간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늘 새롭게 노력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잘살든 못살든 평생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이요 성덕의 삶입니다. 우리 수도자들 역시 함께 사는 것이 수도생활이요, 함께 사는 것이 수도생활의 어려움이요, 함께 사는 것이 도道닦는 것입니다. 우리 수도자만 아니라 여러분 부부들도 함께 도닦는 수도자修道者들입니다.”


요지의 말씀을 드리면 모두가 공감하며 흐뭇해 합니다. 참으로 답이 없는 공동생활입니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없이 혼자 사는 것보다 위태한 것은 없습니다. 함께 살아야 인간 성숙이지 혼자 살면 자기만 아는 이기적 괴물이 되기 십중 팔구입니다. 1인 가구의 증가 추세가 바로 공동체 없는 혼자의 삶을 반영합니다. 


기혼자든 미혼자든 이혼한 자든 공동체에 소속감 없이 혼자 사는 이들이 많다는 재앙적 오늘의 현실입니다. 독신의 수도자라 해도 반드시 수도공동체를 이루어 삽니다. 그러니 혼자 사는 이들의 공동체 소속이 참으로 절실합니다. 교회의 역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혼자 사는 독신자들이나 동정녀들을 교회가정공동체로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분명히 창세기의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혼인에 대한 결정적 지침을 주십니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의 이혼 불가 교리는 여기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갈라서는 이혼은 얼마나 많은지요? 참으로 딜레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상적으로 맞는 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여 ‘연애는 황홀한 착각이요 혼인은 참혹한 이해’라는 말도 있습니다. 제가 자주하는 말도 생각납니다. ‘부부자격시험이, 부모자격시험이 있어 부부자격에 합격한 사람들만 혼인하고, 부모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자녀를 갖게 하자’는 우스개 소리 같은 제안입니다.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평생 부부가, 평생 부모가 되어 가는 여정중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이혼 불가의 주님 말씀을 율법으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함께 살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헤아려 온갖 사랑의 노력을 다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옛 교회법 신학교 교수님이 로마에서 1년 과정의 혼인법 공부를 마칠 때 스승 교수님의 마지막 수업때 하셨다는 결론 말씀도 생각납니다.


“교회법을 총동원하여 살 사람은 살게 해 주고, 도저히 못 살 사람은 헤어지게 해주라.”


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죽지 못해 억지로 마지못해 불행하게 혼인생활할 바에야 이혼하도록 해주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극단적 처방이 이혼이기에 끝까지 사랑의 노력을, 믿음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예화도 생각납니다.


-‘십대 부부는 꿈속에서 살고, 이십대 부부는 신나게 살고, 삼십대 부부는 사랑하며 살고, 사십대 부부는 싸우면서 살고, 오십대 부부는 미워하면서 살고, 육십대 부부는 불쌍해서 살고, 칠십대 부부는 고마워서 산다.’


는 예화입니다. 미운정 고운정 들면서 내적으로 성숙되어 가는 부부공동생활 과정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혼인이냐 독신이냐가 아니라 지향에 있습니다. 모두가 하늘 나라 삶의 성덕의 소명으로 불림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인한 부부로 살든, 독신의 동정으로 살든 하느님을 중심으로 성덕의 삶을, 성인의 삶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 말씀도 독신의 참 의미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에 대한 어느 성서학자의 주석을 소개합니다. ‘이들은 숙명이 아니고 자유로운 결단으로 독신을 택하는 실존적 결단의 동기는 하늘 나라 때문이다. 일편단심 오직 하느님께 매료된 까닭에 전적으로 성덕의 소명에 충실한 이들이다. 결혼하는 일이 없는 부활의 하늘 나라를 암시하는 상징적 삶을 살려는 까닭이다. 이 도리를 깨친 이만이 푸른 하늘에 흰 구름 가듯 청정 비구로 살아 갈 수 있으리!’


혼인을 혐오하거나 부정해서가 아니라, 또 이기적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 사랑 때문에 택한 거룩한 동정의 독신을 말합니다. 하여 기쁘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인이나 독신이나 성덕의 소명이 목표이고 어떤 삶을 살든 중요한 것은 기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사랑의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혼인이나 독신을 해치는 결정적 요인에 주목합니다. 바로 간음과 불륜입니다. 혼인한 부부들이든, 독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정결의 덕입니다. 간음과 불륜으로 서로간 신뢰를 상실함과 동시에 영육이 망가져 패가망신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이혼의 중요 원인이 되는 간음과 불륜입니다. 복음의 다음 주님 말씀이 중요한 묵상 자료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자이다.”


주님께서도 마지못해 인정하는 간음의 불륜으로 인한 이혼입니다. 십계명의 두 조항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6계, 간음하지 마라.’와 ‘9계,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정결한 혼인이나 독신의 유지를 위한 구체적 현실적 지침의 계명입니다. 정말 간음의 불륜의 대죄를 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 관계에 회복 불능의 치명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예루살렘의 역사를 부정한 아내의 역사로 견주어 해석합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말마디가 불륜입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탄식입니다.


“내가 너에게 베푼 영화로 네 아름다움이 완전하였다. 그런데 너는 불륜을 저질렀다. 그러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너와 맺은 내 계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계약을 세우겠다.”


자비로운 하느님은 우상숭배로 인한 종교적 불륜을 저질렀어도 진정 회개한 영혼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십니다.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종교적 불륜과 남녀 관계의 인간적 불륜이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남녀 불륜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혼인이든 독신의 동정의 삶이든 정결의 덕, 성덕의 소명에 하느님 중심의 삶이 얼마나 본질적이고 중요한 지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정결의 덕을 선물하시어 성덕의 소명에 충실하게 하십니다. 정결 유지와 성덕의 소명 완수에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아멘.


Articles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