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8.18.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에제18,1-10ㄱ.13ㄴ.30-32 마태19,13-15
하늘 나라의 삶
-사랑, 회개, 순수, 동심童心의 회복-
하늘 나라의 삶, 믿는 모든 이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나이와 관계 없이 동심으로 사는 이들이 하늘 나라의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동심을 회복하여 살아야 합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지닌 동심입니다. 예수님이 참으로 사랑했던 이들이 동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 또한 늘 동심의 마음을 지니고 사셨던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점이 제자들과는 대조적입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하자 완고한 제자들은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즉각적 반응입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 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십니다. 오늘 복음은 짧지만 참 신선한 느낌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지 깨닫습니다. 비단 여기서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어린이들뿐 아니라 어린이의 자질을 지닌 모든 이들을 뜻합니다.
어린이다움의, 동심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개방성, 단순성, 유연성, 신축성입니다. 모두가 순수성 안에 포함됩니다.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이들이 바로 개방적이고 단순하고 유연하고 신축적입니다. 바로 어린이다움의 특징입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이 지닌 동심의 품성입니다.
제 좋아하는 것도 강복을 주는 일입니다. 고백성사후 사죄경에 이어 곧장 강복을 줍니다. 수도원에서 간혹 만나는 이들도 필요하다 싶으면 멈추어 강복을 드립니다. 강복을 받을 때 나이에 관계 없이 순수하고 개방적인 모습은 그대로 어린이같은 모습입니다. 깊이 잘 들여다 보면 우리는 모두 순수한 어린이들같습니다.
마음의 순수는 수도생활의 목표입니다. 직접적 목표는 마음의 순수이고 궁극의 목표는 하늘 나라입니다. 마음의 순수에서 샘솟는 사랑의 열정입니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삽니다. 어찌 수도자들뿐이겠습니까? 제 50대 초반의 초등학교 여제자도 세상 한복판에서 이런 하늘 나라의 삶을 삽니다. 잠시 소개합니다. 남편과 조그만 음식점을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남매를 잘 키우면서 교회에서 일주 1회 그림을 배운다 합니다.
바로 순수한 마음의 반영입니다. 카톡으로 보내 준 메시지가 고마웠고 그림 솜씨가 놀라웠습니다. 말그대로 세상 광야에서 일상의 모두를 사랑하며 어린이처럼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제자입니다.
“저는 이렇게 그림도 그리고 하느님께서 매일 주시는 선생님의 강론 말씀 선물로 위로와 감사와 용기를 얻으며 더위 속에서도 잘 버티며 지내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 블레드섬의 성모마리아 성당이예요. 이번에 그려본 그림입니다.”
사랑이 우선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할 때 회개요 회개에 이은 마음의 순수로 어린이성의, 동심의 회복입니다. 사랑과 동시에 진행되는 내적회개에 마음의 순수입니다. 이 점은 사막의 수도자들도 똑같았습니다. 어제 금요강론시 나눴던 아름다운 사막수도자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안토니오는 사막을 보았고 그리고 사막을 사랑했다. 사막은 안토니오와 거기 사는 수도자들의 고향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과의 친교는 물론 땅과의 친교감각도 거기서 체험했다. 그들은 거기서 땅과 그들 과거와의 연속성 감각도 체험했다.
사막은 그들에게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장소였고, 그렇게 갈망했던 하느님을 거기서 볼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고, 하느님과 함께 살 수 있었다. 이탈은 사막의 수도자들을 에워싸고 있는 모래알처럼 그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nothing’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이탈은 더 나아가 환경과 하나되는 감각을 함축한다. 그들의 ‘거룩함holyness’은 바로 ‘온전함wholeness’이었다. 그들이 이웃과 하나됨이 사막영성의 핵심이었다. 하여 그들 사막수도자들은 환경과 세상과 하느님과 하나로 조화되어 살 수 있었다.-
사랑의 이탈이요, 이탈의 자유요 순수입니다. 저절로 어린이성의, 동심의 회복입니다. 사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가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야 할 장소입니다. 사랑의 이탈로 사랑의 순수로 살아갈 때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입니다.
사랑의 회개를 통한 마음의 순수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주님은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우리 각자 사랑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죄지은 자만 죽는다.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회개하여라. 너희의 죄악에서 돌아서라. 너희가 지은 모든 죄악을 떨쳐 버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을 갖추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회개의 복음입니다. 사랑의 회개로 주님께 새 마음과 새 영의 선물을 받을 때 비로소 동심의 회복입니다. 회개가, 끊임없는 회개가 답입니다. 깨달아 회개하면 언제든 늦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회개의 삶을, 회개의 여정을 살아가는 이들이 마음의 순수로 하늘 나라를 살아가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회개의 시스템’, ‘하늘 나라의 시스템’같은 기도와 공부와 노동에 조화된 수도원의 일과표입니다. 특히 매일, 평생, 끊임없이 사랑으로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이 거룩한 미사의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우리를 회개에로 이끌어 마음의 순수와 더불어 하늘 나라를 살게 합니다. 회개를 통한 동심의 회복에 끊임없이 바치는 사랑의 찬미와 감사기도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 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 주소서.”(시편51,12.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