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의 삶 -자비가 답이다-2018.8.22. 수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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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8.22. 수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에제36,23-28 마태22,1-14



하늘 나라의 삶

-자비가 답이다-



자비는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자비가 답입니다. 어제 ‘하느님이 답이다’와의 강론 제목과 일맥상통합니다. 오늘도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역시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하늘 나라의 실현을 바라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하늘 나라 비유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가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신지 새삼 깨달아 배우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바로 오늘 화답송도 오늘 말씀과 일치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시편 성구입니다. 언젠가 지인의 부탁에 묘비명으로 추천한 성구입니다. 저는 이 시편을 노래할 때마다 ‘아쉬울 것 없어라’ 대신, ‘부러울 것 없어라, 두려울 것 없어라, 불안할 것 없어라, 걱정할 것 없어라’ 등 말마디를 넣어 흥얼 거리곤 합니다. 착한 목자 하느님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오늘의 하늘 나라의 비유입니다. 복음 서두 말씀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임자와 같다.”


참으로 부지런하고 모두를 배려 하는 착한 목자 주님을 비유하는 선한 포도밭 주인입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죽어서 가는 하늘 나라가 아니라, 자비하신 착한 목자 주님을 닮아갈 때 오늘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하늘 나라의 꿈입니다. 


착한 목자 하느님은, 착한 목자 예수님은 바로 오늘 하늘 나라 비유의 선한 포도밭 주인같은 분이십니다. 한량없이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주님 생각과 우리 생각은 다릅니다. 주님 생각을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는 자아초월의 회개를 통해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가는 길이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주님을 닮아 정화되고 성화되면 주변도 저절로 정화되고 성화되기 마련입니다.

 

아침 일찍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집을 나선 포도밭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때 까지 하는 일 없이 장터에서 서 있는 실업자들을 당신 포도밭에 보냅니다.   


“당신들도 포도밭으로 가시오. 정당한 삯을 주겠소.”


완전 고용이란 꿈이 실현된 하늘 나라 같습니다. 아침 일찍 온 사람부터 아홉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일없이 헤매는 만나는 사람마다 곧장 자신의 하늘 나라 포도밭 일터로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해질 무렵 오후 다섯 시까지 장터에서 하는 일 없이 서성이는 사람들을 자기 포도밭에 보내는 주인입니다.


문제는 일당의 분배에서 발생합니다. 한 데나리온의 일당을 분배하는 방식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포도밭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말합니다.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이들에게까지 품삯을 주시오.”


맨 먼저 온 사람 순서대로가 아니라 맨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분배합니다. 일꾼들의 일한 양이 아니라 그들의 사기士氣 저하와 곤궁한 내적 현실을 배려했음이 분명합니다. 문제는 아침 일찍부터 하루 종일 일한 일꾼들의 항의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어찌 맨 나중에 와서 한 시간 일한 이와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일한 이들과 똑같은 한 데나리온의 하루 품삯인지요!


하루 종일 일한 이의 항의에 대한 포도밭 주인의 답변에서 자비하신 착한 목자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항의하는 이가 흡사 루카복음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이것이 하느님의 자비 법칙, 은총의 법칙입니다. 하느님은 모두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하느님이 보시는 것은 일한 양이 아니라 각자의 곤궁한 처지입니다. 바로 항의하는 일꾼은 그대로 편협하고 인색하고 옹졸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합리적 이기적 잣대로 잽니다. 참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나서 좋은 일 많이 해서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 자비의 은총으로 구원입니다.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겸손없이 하느님의 영역에 도전합니다. 주님이 보신 것은 일한 양이 아니라 일꾼의 속 사정입니다. 한 시간 일했다 해도 그에 딸린 식구들의 가장일 경우를 고려했음이 분명합니다. 마지막 늦게 와서 한 데나리온 받은 이가 우리라면 주님의 처사에 얼마나 감격하고 고마워했겠는지요. 정말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불쌍한 이들의 기뻐하는 마음을 생각한다면 주님과 이들의 기쁨에 동참할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요즘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고 일부 시행되고 있는 기본소득제를 생각합니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든 이들에게 최소한의 기본생활비를 국가가 대주는 경우입니다. 하여 빈부 격차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겪고 있는 가난한 자들 모두가 인간으로서 최소한 기본적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오늘 하늘 나라의 비유가 뜻하는 바와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은 과연 기본소득제의 원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바꿔야 할 것은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편협하고 옹졸하고 인색한 마음입니다. 한없이 자비하신 착한 목자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평생공부가 하느님 자비공부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참 목자 하느님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불의하고 무자비한 목자들에 대해 열화와 같이 분노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내 생명을 걸고 말한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나의 양 떼는 목자가 없어서 약탈당하고, 나의 양떼는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는데, 나의 목자들은 내 양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만 먹은 것이다.---나 이제 내 양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마치 오늘의 불의한 목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비단 착한 목자 자비의 영성은 사제만 아니라 모두가 배워야 할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은 그대로 오늘 복음의 착한 목자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선한 포도밭 주인의 하늘 나라 비유를 통해 우리 모두 착한 목자 당신을 닮아 자비할 것을 촉구하십니다. 


아침 일찍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활짝 열려 있는 오늘 비유의 하늘 나라 포도밭처럼 우리 인생 마지막 까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하늘 나라입니다. 모두가 다 들어와야 닫히는 하늘 나라의 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착한 목자 당신을 닮아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 하늘 나라의 삶을 살게 하시며, 우리를 끊임없이 당신 자비로 환대하시고 ‘환대의 사람’으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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