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여정 -순교적 삶-2018.9.15. 토요일 고통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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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15. 토요일 고통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히브5,7-9 요한19,25-27



비움의 여정

-순교적 삶-



힘든 환경 중에도 믿음으로, 희망으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그 삶자체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이런 삶 자체가 참 좋은 선물입니다. 바로 여기 함께 사는 까닭이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삶을 통해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 바오로 노 수사님이 힘껏 믿음 관리, 건강 관리하시며 충실히 사시는 모습 자체가 공동체 형제들에 주는 참 좋은 선물입니다. 하여 공동체 형제들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힘든 중에도 힘껏 사는 부부들을 보면 저는 다음과 같이 격려하곤 합니다.


“힘든 세상, 잘 살고 못 살고는 차후 문제이고, 그냥 끝까지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입니다. 하느님도 형제 자매님에 대해 고마워하며 미안해 하실 것입니다.”


4년전 안식년중 미국의 광야와 같은 뉴튼 수도원에서 약 3개월 머무는 동안 체험했던 진리입니다. 함께 기도할 때, 함께 밥먹을 때, 사막같은 일상 속에서도 함께 하는 형제들을 확인하면서, 즉 ‘나만 힘든게 아니라 저 형제도 힘들구나.’ 생각하며 위로와 힘을 받았던 추억입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함께 먹으면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살아있음을 확인한 공동기도, 공동식사시간 이었습니다.


어제의 9월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이어 오늘의 9월15일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아드님과 어머님의 축일이 9월 순교자 성월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드님과 성모 마리아야 말로 순교적 삶의 모델이자, 인생 광야에서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성모님의 슬픔과 고통이야 말로 상상을 초월합니다. 성모님의 끊임없이 계속됐던 슬픔을 대하면 마태복음의 참행복 선언 중 두 번째 항목이 생각납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을 받을 것이다.”


실로 주님 안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를 받는 우리들입니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과거에는 성모 칠고 축일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모님의 대표적 일곱의 고통을 나열하면, 1.성전에서 아기 예수님 봉헌시 시메온의 예언, 2.이집트 피신, 3.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잃었던 일, 4.갈바리 십자가 길에서 예수님과의 만남, 5.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 6.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받아 안으심, 특히 이 장면은 피에타 성모님이라 불리는 고통의 절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7.무덤에 묻히신 예수님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끊임없는 고통중에도 온전히 아드님과 완전한 일치 중에 사신 분임을 깨닫습니다. 말 그대로 순교적 삶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모델입니다. 오늘 복음 전 20절까지 이어지는 부속가 역시 성모 마리아의 끊임없이 계속됐던 고통에 대한 나열입니다. 하여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 대해 성모님의 삶 자체가 위로와 치유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계셨던 성모 마리아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주목할 사실은 성모 마리아를 비롯해 세 여인들이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도 이 장면을 적절히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동정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역시 ‘구세주의 어머니’란 회칙에서 이 장면을 감동 깊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의 예수님 발치에서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충격적 자기 비움의 신비를 나누신다. 아마도 이것은 인류 역사상 믿음의 가장 깊은 케노시스, 비움이리라.”


우리 믿는 이들이 필히 기억해야 할 말마디가, 메타노니아(회개), 코이노니아(친교), 디아코니아(봉사)에 이어 케노시스(비움)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을 ‘비움의 여정-순교적 삶-’으로 정했습니다.


십자가 상의 예수님이나 십자가 아래 성모님이나 자기 비움의 절정에 도달한 모습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성모 마리아처럼, 일상에서의 모든 크고 작은 고통이나 시련을 자기비움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로 구원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사실 스트레스에 대한 최고의 처방도 자기를 비우는 훈련, 자기를 내려 놓은 훈련에 항구하는 일입니다.

  

상처로 남을 고통이나 시련들을 자기 비움을 통해 영적성장과 성숙의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지혜요 겸손이요 구원입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도 예수님의 자기비움을 참 깊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인생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순종의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삶은 순종이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실감합니다. 더불어 ‘비움의 여정’은 ‘순종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계속 주님께 순종하면서 비워가는 삶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순교자 성월에 주시는 귀한 가르침입니다.


오늘 복음 장면이 미사를 봉헌하는 제대와 흡사한 느낌입니다. 제대 뒤편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계시고 오른 편에는 아기 예수님을 안으신 성모님이 계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성모님은 아기적 예수님을 상상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애제자가 상징하는 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성모 마리아께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복음의 애제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들이요 딸들입니다. 또 주님은 애제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복음의 애제자처럼, 늘 모시고 보고 배우며 살아야 할 우리의 영원한 어머니 성모 마리아입니다. 우리 모두의 영원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죽으시고 부활하신 아드님의 파스카 신비의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비통의 어머니시여, 기뻐하소서. 당신은 큰 고통을 겪으신 후 천상 영광으로 구원되었고, 온 누리의 여왕으로서 당신 아드님 곁에 좌정하셨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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