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삶 -신망애信望愛, 진선미眞善美의 삶-2018.9.22.연중 제24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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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2.연중 제24주간 토요일                                                              1코린15,35-37.42-49 루카8,4-15

 

 

참다운 삶

-신망애信望愛, 진선미眞善美의 삶-

 

 

이런저런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얼마전부터 수도원 경내 곳곳에 피기 시작한 야생화 유홍초가 참 작고 곱고 예뻐 써놓은 시입니다.

 

-“꽃처럼/살 수는 없나

 무아無我/무욕無慾의 꽃처럼 말이다

 누가/알아주든 말든/보아주든 말든

 때되면/하늘향해/곱게/폈다 지는

 하늘 사랑만으로 행복한/꽃처럼 살 수는 없나”-

 

요즘 산책중 자주 눈길이 가는 가을 김장 배추 모종들 자라는 모습이 하루하루가 달라 바라보는 것도 작은 기쁨중의 하나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큰다/가을모종 배추 포기들

 볼 때 마다/생명生命의 기쁨 피어난다

 나이에 상관없이/영적靈的성장도 저랬으면 좋겠다”-

 

가끔 인용하는 젊은 택시 운전사 형제와 나눈 카톡 메시지입니다. 참으로 힘든 삶중에도 결코 좌절함이 없이 줄기차게 노력하며 낙관적 삶을 사는 형제입니다.

 

-“백만원짜리 양복을 중고매장에서 2만원에 구입했는데 택시 출근에 입을 것입니다.”

 “100만원 짜리가 어찌 2만원에! 100만원 짜리 인생을 2만원 짜리 인생으로 추락시켜선 안되겠습니다. 깨어 품위있게 사세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된 모습대로 어떤 환경 중에도 존엄한 품위를 유지하며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답은 항구한 기도와 사랑의 실천뿐입니다.

 

수도원의 먹는 밤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가을 때되면 저절로 밤송이가 벌어져 떨어져 주어다 먹는 굵고 맛있는 밤알들인데 올해는 달랐습니다. 밤알을 주울 때는 은총의 선물을 줍는 느낌입니다. 밤들의 외관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데 맛이 없습니다. 입맛의 신비입니다. 누구나 공통적인 입맛이라 먹어 본 분들은 맛이 없다 했습니다. 웬일인가 한 수사님에게 알아 봤습니다.

 

-“밤이 맛이 없네요.”

 “거름을 하지 않아서입니다.”-

 

너무나 평범 자명한 진리입니다. 나무나 땅은 정직합니다. 땅에서 나는 작물이나 과일들 거름이 없으면 맛 없음은 불문가지입니다. 새삼 우리 영적 삶의 밑거름에 항구한 기도와 말씀공부와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이런 예화들을 렌즈로 오늘 말씀을 보면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참다운 삶, 신망애, 진선미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웁니다. 오늘 복음은 세부분으로 나눠 집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그리고 씨뿌리는 비유의 설명입니다.

 

먼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그대로 예수님 자신의 삶에 대한 묘사입니다. 흡사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연상시키는 비유입니다. 공통점은 둘다 낙관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환경에 상관없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신망애 삶의 자세, 진선미 삶의 자세입니다.

 

씨뿌리는 삶을 살다보면 때로 길바닥 같은 때도 있고, 바위같은 때도 있고, 가시덤불같은 때도 있고, 좋은 땅의 때도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 개의치 않고 항구한 정진의 노력이 있어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백배의 열매를 맺으니 결과는 해피엔드, 성공적 인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이런 신망애의 사람들을 방관傍觀, 방치放置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성공적 인생으로 이끄십니다. 이런 진리를 깊이 깨달아 알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전반부 내용이 예수님 친히 발설하신 비유라면 후반부 내용은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입을 빌린 비유의 해설입니다. 전반부의 초점이 ‘씨뿌리는 사람’에 있다면, 후반부는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토양’이 초점입니다. 아무리 말씀의 씨가 좋아도 씨를 받아 들이는 토양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라는 것입니다. 

 

탓할 것은 말씀의 씨앗이 아니라 우리들의 내적 환경과 자세라는 것입니다. 네가지 사람들의 유형중 우리는 어디에 속할까요? 길에 떨어진 것들의 경우의 사람들, 바위에 떨어진 것들의 경우의 사람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들의 경우의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져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들의 경우의 사람들입니다.

 

항구하고 간절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의 때와 장소등, 이런 환경에 개의치 말고 간절하고 진실하고 항구한 정신으로 수행에 정진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키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삶의 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간절하고 진실한 수행이 우리 존재를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여 좋은 땅의 마음 밭으로 변화시킵니다. 하여 모두가 소망하는 네 번째 부류의 성공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참 좋은 신망애, 진선미의 사람들입니다. 간절하고 진실한, 항구한 수행자들이 바로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입니다. 새삼 우리 수행중의 수행이 바로 이런 거룩한 성서독서, 렉시오 디비나의 수행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이들이야 말로 진정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사람이자 하느님 나라를 오늘 지금 여기서 사는 이들입니다. 이런 이들의 삶자체가 영원한 생명의 씨앗과 같아 부활의 영광을 맞이하게 합니다. 

 

부활 때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구원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희망이 우리의 궁극의 희망입니다. 참으로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은 바오로 사도의 부활에 대한 고백을 공감하며 믿을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 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 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 납니다. 물질적인 것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 납니다. 물질적인 몸도 있지만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이런 부활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바로 이런 궁극의 부활의 희망을 심어주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좋은 땅의 마음 밭으로 변모시켜 주시며, 당신을 찾고 당신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항구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행복하여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8,1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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