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월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기념일

욥기1,6-22 루카9,46-50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찬미가 답이다-

 

 

하느님 찬미가 답입니다. 찬미의 사랑, 찬미의 기쁨, 찬미의 아름다움, 찬미의 순수, 찬미의 행복입니다. 참기쁨도 찬미에 있습니다. 세상에 찬미의 기쁨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 선물에 대한 우리 인간의 자연스런 감사의 응답이 하느님 찬미입니다. 하여 우리 그리스도교를 찬미의 종교라 부르고 수도자는 물론 그리스도인을 찬미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동방정교회 모든 종교간의 일치에도 공통적으로 크게 기여하는 찬미입니다. 수도원에 가끔 피정오는 개신교 형제자매들이 충격적 감동을 받는 것도 수도자들의 장엄한 그레고리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성무일도입니다.

 

오늘부터 짧게 시작될 욥기도 특이한 작품입니다. 잠언에 이어 코헬렛, 그리도 욥기 모두 지혜문학에 속하는 성서입니다. 창세기의 노아처럼 욥의 인품도 매력적입니다. 또한 그가 진짜 하느님의 사람, 찬미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하느님의 종인 하느님의 사람은 그대로 찬미의 사람입니다. 다음 ‘나의 종’ 욥이 라는 호칭에서 얼마나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 욥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과 사탄의 대화입니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

 

“욥이 까닭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하며 하느님의 욥 칭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탄이 흡사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던 뱀을 닮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바, 사탄 역시 하느님 손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탄에게 이르십니다.

 

“좋다, 그의 모든 소유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에게는 손을 대지 마라.”

 

우리의 생명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기에 세상 그 누구도 손상을 끼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허락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라는 개신교 신학자 본훼퍼의 말도 생각납니다. 다음 전개되는 욥의 고난과 불행이 점입가경 상상을 초월합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인 것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났을 때, 욥의 찬미의 응답입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 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이 모든 일을 당하고도 욥은 죄를 짓지 않고 하느님께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하고 주님을 찬미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도 욥의 이 고백에서 큰 격려를 받았다는 내용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진정 ‘주님의 종’으로 만드는 것은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는데 있음을 봅니다. 찬미의 모범, 찬미의 사람 욥입니다. 사실 찬미보다 더 좋은 기도도 없습니다. 찬미로 봉헌할 때 모든 것은 축복이 됩니다. ‘내 행복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아픔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상처여, 주님을 찬미하라, 내 고통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등 내 희노애락, 생노병사 모두를 찬미로 봉헌할 때 놀라운 축복입니다. 젊고 힘있을 때 많이 찬미하시기 바랍니다.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는데 절대적 기여를 하는 찬미입니다.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가 절망을 희망으로,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전화시키니 바로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운명을 바꾸는 찬미의 은총입니다.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하느님 찬미라 합니다. “사탄이여 주님을 찬미하라.” 하면 사탄은 즉시 달아난다 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주님을 찬미함으로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남으로 하느님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욥입니다. 욥처럼 ‘그래서’가 아니라 어떤 역경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찬미가 진짜 찬미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한결같은 하느님 찬미의 삶이 욥을 경외의 사람, 흠 없고 올곧은 사람, 악을 멀리하는 순수의 사람으로 만들어 줬음을 봅니다.

 

사랑의 찬미입니다. 죄없어서 순수가 아니라 한결같은 하느님 경외의 사랑이, 찬미가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을 하느님을 볼 것이다.” 바로 욥에게 그대로 해당되는 참행복선언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의 찬미가 흠없고 올곧고 악을 멀리하는 순수한 욥으로 만들어 줬음을 봅니다.

 

마음 순수한 사람은 바로 자비로운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이요 관대한 사람입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바로 이의 전형적 모범이 예수님이십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오늘 복음에 대한 답을 말하자면 예수님같은 분이요 욥같은 분입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 가장 작은 사람이야 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어린이가 상징하는 바 가난하고 약한 모든 이웃들입니다. 이런 이를 주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자비로운 사람은 바로 예수님을,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장 작은 자비롭고 겸손한 사람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사람이라 하십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가장 작은 자비롭고 겸손한 사람의 면모입니다.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들을 막으려는 제자들을 저지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또 가장 작은 이의 특징은 관대함임을 깨닫습니다.

 

“막지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참으로 마음 순수한 이가 자비롭고 겸손하고 관대한 사람이자 가장 작으면서 가장 큰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한결같은 하느님 사랑의 찬미가 그 답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의 결정적 모범중의 한 분이, 오늘 기념하는 성녀 소화 데레사입니다. 가장 작은 이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이 임을 보여 주는 성녀 소화 데레사의 감동적 고백입니다.

 

“사랑은 스스로 행위들이 입증한다. 나는 내 사랑을 어떻게 보일 것인가? 위대한 행위들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내 사랑을 증거할 유일한 길은 꽃들을 흩어버림에 의해서다. 이 꽃들은 모든 작은 희생, 모든 시선, 모든 말이다. 나는 사랑을 위해 가장 작은 행위들을 행하는 것이다.”

 

만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성녀의 마지막 임종시 고백도 참 감동적입니다.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러울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모든 고통이 나에겐 달콤하기(sweet) 때문이다.”

 

한결같은 하느님 사랑의 찬미가 가장 작으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큰 순수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바로 주님을 닮은 자비롭고 겸손하고 관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욥이, 오늘 기념하는 성녀 소화데레사가 그 모범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가장 작으면서 역설적으로 가장 큰, 자비롭고 겸손하고 관대한 순수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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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젤로 2018.10.01 20:25
    "나는 더 이상 고통스러울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 있다. 모든 고통이 주님과 함께 있기에 나에겐 달콤하기 때문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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