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 happy ending -모든 것은 하느님 손안에 있다-2018.10.6.토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1030-1101)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6,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8.10.6.토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1030-1101) 기념일 

욥42,1-3.5-6.12-17 루카10,17-24

 

 

 

해피 엔딩 happy ending

-모든 것은 하느님 손안에 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 손안에 있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때입니다. 하느님을 벗어난 때는 없습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둡니다. 눈물로 씨뿌리던 때 역시 하느님의 때였습니다. 어제 모처럼 온종일 비오는 날 오전 잠시, 농장 수사님의 부탁에 배밭 수확일을 도왔습니다. 해마다 10월초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본격적 배수확이 이뤄집니다.

 

어제 오전 약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젊은 수도형제들과 함께 일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농장 일에 큰 몫을 하는 젊은 형제와 덕담德談을 나누며 웃었습니다.

 

“내가 수도원에 와서 첫 가을 수확을 돕던 해, 1988년 수사님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당시 내 나이 40이었고 지금은 70입니다. 30년 전, 누가 수사님이 요셉수도원에 들어오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하느님의 계획에 있었던 것이지요.”

 

새삼 삶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야기 나누며 기념 사진도 찍었습니다. 수확된 신고 배열매들을 싸고 있는 종이 봉투를 벗겨내면서 새삼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농사는 80% 하느님이, 20%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최고의 농부는 하느님이시라고 들은 말도 생각났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고백했습니다.

 

‘아, 그렇다면 배열매들은 그대로 하느님의 작품이구나,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하느님의 작품, 생명의 열매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소중히 고맙게 여겨할 하느님의 작품 가을 생명의 열매들입니다. 

 

더불어 열심히 일하는 자매들을 보면서 ‘사람이 일을 못하면 어떻게 살 수 있겠나?’ 작금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겪는 많은 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분도회의 모토는 믿는 모든 이들의 생활원리인데, 일이 빠져버리면 도대체 어떻게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겠나 하는 근원적 물음이었습니다.

 

해피엔딩의 가을입니다. 우연한 해피엔딩의 수확이 아니라, 겨울, 봄, 여름의 인고의 세월을 기다리고 견뎌내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기에 해피엔딩의 가을 수확입니다. 끝은 시작이라 수확이 끝나면 거름을 내고 전지함으로 또 배농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도 해피엔딩, 행복한 끝입니다. 파견받고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던 제자들은 귀환과 더불어 주님과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기쁨에 넘쳐 풍부한 성공적 체험담을 보고 합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제자들의 보고에 곧장 이어지는 말씀이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참 큰 격려가 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궁극의 승리는 하느님께, 하느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이제 아무도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바로 해피엔딩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됐다는 하느님께서 영원히 기억하신다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행복과 참기쁨의 원천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깨달음 역시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동안 인고의 세월 하루하루 제자들과 함께 온갖 고통과 시련중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이런 깨달음의 선물이요 확신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고백은 순전히 깨달음의 선물입니다. 이런 깨달음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게 함으로 무지로부터의 해방도 성취됩니다. 참으로 영적 사람들의 삶의 여정은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열매는 깨달음의 열매요 줄줄이 이어지는 믿음의 열매, 희망의 열매, 사랑의 열매입니다. 삶이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은 이런 은총의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의 확신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런 확신의 깨달음 역시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어지는 제자들에 대한 참행복선언입니다.

 

“너희가 보는 것은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제자들의 해피엔딩의 귀환에 예수님께서 얼마나 흥분하고 고무되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하여 줄줄이 터져나오는 은총의 깨달음들입니다. 눈만 열리고 귀만 열리면 은총의 선물들 가득한 현실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끝과 시작이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시작에 해피엔딩의 끝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지금 시련의 현장도 해피엔딩입니다. 하여 옛 선사들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이 좋은 날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욥기도 해피엔딩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하느님과 사탄의 경쟁에서 마침내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분투했던 욥의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희망 때문입니다. 욥은 결코 하느님을 저주하지 않고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욥의 겸손한 참회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욥이 참으로 고맙고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참으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두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됨을 깨닫습니다. 실패인 듯 하나 결국은 성공이요, 패배인 듯 하나 결국은 승리요, 불행한 듯 하나 해피엔딩의 행복입니다. 그러니 항상 기뻐하고 늘 기도하고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손안에 있고 모두가 하느님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새벽 독서의 기도시 시편 136장 24절까지 반복됐던 후렴,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시다'라는 말마디 기억하실 것입니다. 분도성인은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바로 욥이 그런 인물입니다.

 

부와 건강은 선이고 가난과 시련, 죽음은 악이 아닙니다.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부와 건강, 가난과 고통이나 시련, 죽음도 아니고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희망과 신뢰, 그리고 사랑입니다. 진짜 불행은 재산을, 건강을, 생명을 잃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잃는 것입니다. 하여 참으로 신망애의 사람들이 진정 축복받은 행복한 자들이고 늘 해피엔딩, 일일시호일의 기쁨을 사는 자들입니다. 

 

마지막 까지 놓지 말고 꽉 잡아야 할 하느님 희망의 끈, 믿음의 끈, 사랑의 끈, 생명의 끈입니다. 배들이 수확되는 순간까지 배꼭지로 배나무에 꼭 달려 있듯이 말입니다. 바로 욥이, 예수님이 무수한 성인들이 그 모범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늘 해피엔딩을, 일일시호일의 나날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소서.”(시편119,135ㄱ). 아멘.

 


Articles

4 5 6 7 8 9 10 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