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8.10.7.연중 제27주일                                                                          창세2,18-24 히브2,9-11 마르10,2-16

 

 

최고의 수행, 최고의 예술

-함께 사는 일-

 

 

방금 우리는 화답송 후렴을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평생 모든 날에 복을 내리리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한평생 복을 내리시기에 가능한 공동생활임을 깨닫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어제 읽은 이야기가 재미있어 소개함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느 형제가 인터넷에서 공감이 가는 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자가 살다가 힘이 들 때면 지갑에 있는 아내 사진을 꺼내 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사람과도 살고 있는 데, 이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있겠나?” 자신의 심정을 잘 말해주는 글 같아서 아내에게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아내이지만 함께 사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것입니다. 아내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어, 나랑 똑같네. 나도 힘들면 당신을 생각해. 이런 철없는 남자도 데리고 사는데---”-

 

함께 사는 일이 참으로 힘든 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수행이, 최고의 예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최고의 수행자가 누구인지, 최고의 예술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답은 하나 ‘함께 사는 일’이 최고의 수행이자 최고의 예술입니다. 그러니 함께 사는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수행자가,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최고의 수행, 최고의 예술-함께 사는 일’이라 정했습니다. 어제 잠시 묵상 중 떠오른 생각을 즉시 강론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제가 요즘 강론 중, ‘---이 답이다.’, 즉 ‘사랑이 답이다.’, ‘회개가 답이다.’, ‘겸손이 답이다.’ 등 무수한 제목을 택했는데 정말 ‘함께 사는 일’은 답이 없습니다.

 

결혼생활이든, 수도생활이든 함께 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하여 제가 피정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수도생활은 함께 사는 일이고, 수도생활의 어려움은 함께 사는 일이며, 그러므로 함께 사는 것이 도닦는 것이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결혼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겠습니다. 그러니 함께 사는 부부들 역시 다 도사들입니다. 아주 예전 어느 노수녀님의 말도 잊지 못합니다. ‘둘이 함께 평생 함께 사는 부부는 수도자보다 더 힘들 것입니다. 말그대로 살아있는 순교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웃으며 공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어느 자매의 고백도 잊지 못합니다. ‘부부가 서로 미워하면서 죄짓고 사는 것보다는 이혼하여 혼자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또 어느 자매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단 몇날을 살더라도 정말 사랑하는 이와 잘 소통하며 살고 싶다.’ 모두가 함께 사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 말입니다. 저의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죄짓더라도 함께 살아야 구원받지 혼자 살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죄안짓고 혼자 사는 것보다 죄짓더라도 함께 사는 것이 백배 좋습니다. 잘 살고 못 살고는 차후 문제이고, 우선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입니다. 혼자 절대 천국에 못갑니다. 부부 점수 합하여 평균 내어 60점 넘어야 천국행입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따로 없습니다. 함께 평생 살면 잘 살든 못 살든 성인입니다.”

 

격려하곤 합니다. 지금도 이런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함께 사는 일은 정말 답이 없습니다. 함께 사는 일이 힘든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아주 너무나 자연스런 일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중 똑같은 얼굴이 어디있습니까? 똑같은 옷입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똑같은 신을 신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똑같은 헤어스타일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너무 자연스런일입니다. 이런 다른 사람이 함께 사는 일이 결코 쉬울리 없습니다. 어느 교수신부님이 로마에서 공부할 때 들었다는 결혼에 대한 교회법 교수의 마지막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교회법을 총동원하여 살 사람은 살게 해주고, 도저히 살기 힘든 사람은 헤어지게 해주라.”

 

그러나 제가 어제 읽은 오늘 복음에 대한 긴 주석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옳다. 이혼이 답은 아니다.”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연애는 화려한 착각이요, 결혼은 참혹한 이해다.’부정적이지만 결혼생활의 현실을 지적한 말입니다.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 까요? 답은 하나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답입니다. 오늘 저는 최고의 수행자가, 최고의 예술가가 될 수 있는 함께 살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 함께 살아야 합니다.

혼자 살면 사람되기 참 힘듭니다. 괴물이나 폐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함께 사는 것이 상처도 되지만 또 치유도 거기서 일어납니다. 교육의 목적도 둘이라 합니다. ‘더불어 사는 것과 제 앞가림 하는 것’이요 우선 가르쳐야 할 것이 더불어 사는 것이라 합니다. 정말 이혼은 마지막 카드입니다. 마지막 카드는 끝까지 꺼내지 않고 함께 살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간곡한 호소입니다. 주님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협력자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궁여지책, 사람이 완악한 탓에 하느님의 마지못해 묵인한 것이지 하느님의 뜻은 아닐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보면 사람이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집짐승들과 하늘의 새들, 들짐승들을 보았지만 협력자를, 반려자를 찾지 못했다 합니다. 마침내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 오시니 사람은 기뻐 환호합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됩니다. 상호 협력자로서 보완 관계이 있음을 봅니다. 둘이야 한몸이지 하나가 없으면 영원한 반쪽일 뿐입니다. 요즘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란 말이 회자되는 데, 결코 애완견이, 애완식물이 사람 반려자를 대치할 수 없습니다. 

 

속깊은 대화는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새삼 잘 듣는 대화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예수님 역시 창세기 말씀에 근거하여 부부 한몸 일치를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된다.”

 

이혼불가의 율법조문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살려는 노력을 다 해보라는 주님의 간곡한 권유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고진감래란 말도 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 말도 있습니다. 부부간의 보완관계의 보완성과 더불어 이에 전제되는 평등성을 잊어선 안됩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근거하는 평등성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남녀, 부부 평등성의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런 평등성이 전제된 보완성입니다. 부부일치의 비결이 바로 이런 자각에 있습니다. 서로 하나의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각자의 영역과 역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하늘과 산이라는 제 자작 애송시가 평등성과 보완성을 만족시킵니다. 비단 주님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남녀부부도반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늘 있어/산이 좋고, 산 있어/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주님과 나의 관계는 물론 남녀 부부 관계의 경우도 이렇게 노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 있어/내가 좋고, 나 있어/당신이 좋다

 당신은 나에 신비를 더하고/나는 당신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문득 어느 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 제목이 떠오릅니다. 이런 정도의 사이라면 곁에 있어도 여전히 그리운 대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사실 상호 평등성과 보완성은 평생 살아가며 깊어가는 깨달음입니다. 결혼했다하여 당장 평등한 보완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 배워 깨달아 가야 할 평생과제입니다. 

 

둘째, 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함께 산다 하여 일치가 아닙니다. 바라보는 삶의 중심이 같아야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획일성의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일 때 자유와 행복이 있습니다. 부부공동생활이든 수도공동생활이든 일치의 원리는 똑같습니다.

 

서로 마음이 맞아서, 서로 좋아서, 서로 성격이 같아서, 서로 취향이 같아서 살기로 하면 수도공동체는 벌써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바로 서로 다 달라도 바라보는 중심의 방향이 같기에  공존의 평화 속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코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것입니다.

 

삶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돈도 사람도 또 다른 우상도 아닌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바로 제2독서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 삶의 중심이십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구원의 영도자, 파스카의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삶의 중심입니다. 이런 영원한 삶의 중심인 주님을 바라보면서 삶의 중심을 새롭게 확인하기 때문에 수동공동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여 평생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 성전에서의 공동전례가 없었다면 수도공동체는 벌써 공중분해됐을 것입니다. 

 

한가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형제는, 여러분의 아내는, 여러분의 남편은, 여러분의 자녀는 선물입니까? 짐입니까? 답은 단 하나 기도하여 사랑있으면 선물이고 기도하지 않아 사랑이 식으면 짐이 됩니다. 새삼 기도가 답입을 깨닫습니다.

 

하여 저는 우스개 소리같지만 진정을 담아 말하곤 합니다. 수도공동체는 중심이 둘인데 하나는 성당, 하나는 식당이며, 성당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함께 기도하고, 식당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함께 밥먹기 때문에 비로소 공동체의 일치라고 말합니다. 공동기도만 거룩가 전례가 아니라 공동식사 또한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는 거룩한 전례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끊임없는 회개로 어린이성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필수 전제 조건입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문제입니다. 회개해야 나를 아는 겸손입니다. 회개가 없으면 겸손도 없어 모두가 내탓이 아니라 네탓이요 감사도 사라지고 불평만 늘어납니다. 회개할 때 비로소 주님을 닮아 감사와 찬미요, 기쁨과 평화요, 온유와 겸손, 인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후반부의 어린이가 상징하는 바 회개가 습관화된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어제 저녁성무일도 성모후렴, 오늘 아침일도 즈카르야 후렴도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그대로 오늘 복음을 노래했습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어린이와 같이 순수하고 진실하고 단순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 공동체의 실현입니다. 수도공동생활이나 부부공동생활이나 똑같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끊임없는 회개로 순수와 겸손의 어린이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 수도자들은 흡사 ‘회개의 시스템’같은 기도와 일이 균형을 이룬 일과표 준수의 수행에 충실함으로 어린이성을 새롭게 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성전에서 공동전례를 바치는 시간은 그대로 회개의 시간이기에 하여 저절로 회개의 생활화가 회개의 일상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일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일’인 기도가 가장 먼저이고, ‘함께 사는 일’이 그 다음이고, 제 앞가림의 ‘소임상 일’이 그 다음입니다. 하느님의 일이 잘되어야 함께 사는 일이 잘되고, 제 앞가림의 소임상의 일도 잘됩니다.

 

최고의 수행이, 최고의 예술이 함께 사는 일입니다. 주님은 연중 제27주일 우리 모두 하느님의 나라 공동체에서 최고의 수행자로, 최고의 예술가로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함께 살아야 합니다. 2.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3,끊임없는 회개로 어린이성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8.10.07 14:01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의 삶을 돌아보면서 흔들리지 않는 항구한 믿음을 주소서.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0 참다운 삶 -신망애信望愛, 진선미眞善美의 삶-2018.9.22.연중 제2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8.09.27 17
389 참 아름답고 행복한 삶 -회개, 지혜, 환대-2018.9.23. 연중 제25주일 프란치스코 2018.09.27 22
388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 -찬양, 죽음, 탐욕-2018.9.24.월요일 한가위 프란치스코 2018.09.27 43
387 수행자의 참행복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일-2018.9.25.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프란치스코 2018.09.27 46
386 참 자유롭고 부요한, 품위있고 행복한 삶 -하느님 중심의 삶-2018.9.26.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18.09.27 54
385 삶은 허무虛無이자 충만充滿이다 -텅빈 충만의 행복-2018.9.27.목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1581-1660) 기념일 프란치스코 2018.09.27 65
384 허무에 대한 답은 파스카의 주님뿐이시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2018.9.28.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8.09.28 81
383 천사같은 삶 -찬미, 봉사, 공부-2018.9.29. 토요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1 프란치스코 2018.09.29 87
382 말씀의 힘 -끊임없는 회개-2018.9.30. 연중 제26주일 1 프란치스코 2018.09.30 60
381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찬미가 답이다-2018.10.1.월요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873-1897)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10.01 88
380 어떻게 죽어야 하나? -귀가준비-2018.10.2.연중 제26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02 72
379 삶의 중심 -하느님,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2018.10.3.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03 68
378 비움과 실천의 여정 -성인이 되는 길-2018.10.4. 목요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10.04 95
377 하느님의 살아있는 이콘God’s Living Icon -회개가 답이다-2018.10.5.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05 59
376 해피 엔딩 happy ending -모든 것은 하느님 손안에 있다-2018.10.6.토요일 성 브루노 사제 은수자(1030-1101)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18.10.06 71
» 최고의 수행, 최고의 예술 -함께 사는 일-2018.10.7.연중 제27주일 1 프란치스코 2018.10.07 89
374 영원한 생명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2018.10.8.연중 제27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08 60
373 참 관상가, 참 신앙인 -회개, 환대, 경청-2018.10.9.연중 제27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09 70
372 참 아름답고 도전적인 영원한 기도 -주님의 기도-2018.10.10.연중 제27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10 81
371 항구恒久하고 간절懇切한 기도가 답이다 -영적 탄력彈力, 근력筋力의 비결-2018.10.11.연중 제27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18.10.11 92
Board Pagination Prev 1 ... 64 65 66 67 68 69 70 71 72 73 ... 88 Next
/ 88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