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관상가, 참 신앙인 -회개, 환대, 경청-2018.10.9.연중 제27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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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9.연중 제27주간 화요일                                                                          갈라1,13-24 루카10,38-42

 

 

참 관상가, 참 신앙인

-회개, 환대, 경청-

 

 

어제는 전형적인 가을날씨에 배수확에도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불암산을 배경한 수도원 배밭과 그 안에서 일하는 분들이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말그대로 관상의 분위기였고 모두가 꽃같은 환한 얼굴로 일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새벽 인터넷에서 읽은 어느 호주 이민자의 인터뷰 한 대목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사는 것도 고려하고 있으세요?

"아니요. 지금은 없어요. 없는데 저도 할아버지가 되면 모르죠. 다른 건 모르겠는데, 한국 산이 참 그리워요. 한국 산이 참 예쁜데..."-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부드러운 산능선의 한국산이라 합니다. 불세출의 건축가 가우디는 ‘곡선은 하느님의 선이고 직선은 인간의 선’이라 했습니다. 부드러운 산능선을 닮은 선물받은 둥근 성반과 성작이 참 맘에 듭니다. 미사를 봉헌하는 제단의 사제는 이런 성반과 성작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새삼 언제나 그 자리의 정주의 표상인 불암산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의 정주의 불암산과 배나무들, 늘 봐도 늘 새롭고 좋기가 참 관상가의 전형같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가을철의 수확을 통해 새삼 ‘거룩한 반복’, ‘새로운 반복’중에 날로 내적으로 깊어지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탐스런 배열매들을 가득 단 배나무들이 흡사 참 관상가, 신앙인을 연상케 합니다. 침묵과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뎌내어 열매들을 가득 단 충만한 가을 인생이라면 참으로 성공적 관상가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흡사 탐스런 배열매들이 관상의 열매를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무겁게 매달린 배열매들을 수확한 후 홀가분해 보이는 배나무들이 흡사 텅 빈 충만의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이런 가을 인생의 노년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고 보람있겠는지요. 흉작으로 인한 ‘텅빈 허무’의 배밭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들을 거둔 후 ‘텅빈 충만’의 배밭같은 인생입니다.

 

역시 요행이나 우연은 없습니다. 하루하루 하느님 은총 안에서 충실히 노력해 왔기에 참 관상가로서 이런 풍성한 수확의 가을인생이겠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깨달아 노력하면 늦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또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바로 파스카의 삶이요 정주생활의 핵심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일어나 곧장 새롭게 시작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참 관상가요 신앙인이겠습니다.

 

누가 참 관상가요 신앙인이겠습니까? 회개와 환대, 경청의 사람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주인공 마리아와 제1독서 갈라디아서의 주인공 바오로 사도입니다. 복음의 마리아는 바로 참 관상가, 신앙인의 모범이자 참 좋은 회개의 표징, 환대의 표징, 경청의 표징이 됩니다.

 

환대란 무엇입니까? 끊임없는 회개로 갈린 마음을 하나로 모아 깨어 주님께 온통 집중하는 것입니다. 내 중심의 환대가 아니라 주님 마음에 드는 환대입니다. 이런 주님 환대에 익숙해야 사람 환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경청이란 무엇입니까? 주님 발치에 앉아 마리아처럼 침묵중에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세로 미사에 참여하여 주님을 환대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는 마리아처럼, 일할 때는 마르타처럼해야 관상과 활동이 조화된 이상적인 관상가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둘은 우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로 이해해야 할 것이며 분명한 우선순위는 말씀경청의 환대입니다. 

 

그러니 주님 말씀의 경청의 환대가 환대의 핵심임을 깨닫습니다. 겸손한 경청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사랑의 순종입니다. 이 모두에 전제되는 바 주님 향한 열렬하고 항구한 사랑입니다. 그러니 마리아 안에는 ‘사랑-회개-침묵-겸손-환대-경청-순종’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봅니다. 

 

시중 드는 일로 분주하던 마르타가 주님께 마리아 동생이 자기를 도와 주라 청했을 때 주님의 답변이 마르타는 물론 우리 모두에겐 참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꾸중이 아니라 사랑어린 충고입니다. 주님 환대에 무엇이 본질적인지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상황을 바로 잡으라는 말씀입니다. 분도회의 모토가 ‘기도하고 일하고’의 순서이듯, ‘말씀경청의 환대후 식사환대’라는 것입니다. 하여 미사구조도 말씀전례에 이어 성찬전례입니다.

 

누구보다도 참 관상가의 전형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선교활동가로서 바오로 사도를 능가할 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활동에 앞서 바오로 사도의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적 사랑을 능가할 자도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관상에서 샘솟는 선교활동입니다. 이에 전제되는 바 바오로의 회개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정은 그대로 회개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바로 이런 회개의 깨달음 또한 하느님의 은총임을 다음 바오로의 고백이 입증합니다.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은총의 회개로 마음 활짝 열어 주님을 환대한 관상가 바오로이고 이어 선교활동가로서 맹활약을 펼치는 바오로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말씀의 경청으로 당신을 환대하는 우리 모두를 환대해 주시며, 필요한 모든 은총을 내려 주시어 텅빈 충만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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