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 있는 삶의 일상화日常化-2018.10.23.연중 제29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3,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8.10.23.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에페2,12-22 루카12,35-38

 

 

행복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 있는 삶의 일상화日常化-

 

 

어제 어느 수사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사진을 받았습니다. 주방장 수사님이 지인에게 선물 받은 커다란 ‘삼치’를 들고 기뻐하는 사진입니다. 72세 고령에 부원장에 주방장 소임에 농장일도 꼼꼼히 챙기시는 수사님입니다. 수도원을 내몸처럼 돌보며 깨어 충실히 소임하며 기쁘게, 행복하게 사는 수사님입니다. 오늘 복음 서두 말씀이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같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그대로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막연히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 못가 졸게 됩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님을 기다릴 때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님’향한 기다림이, 그리움이 있을 때, 외로움은 자연스럽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제 ‘산과 강’이란 짧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밖으로는 산/천년만년/님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천년만년/님향해 흐르는 강-

 

물론 '님'자는 주님을 뜻합니다. 문득 ‘님’자를 말하니 신선한 느낌의 체험이 생각나 나누고 싶습니다. 저를 치료하는 물리치료사 젊은이의 저에 대한 호칭입니다. 아주 성실하고 친절한 젊은이인데 ‘신부님’이란 호칭 대신에, ‘이수철님’이라 부르는데 처음엔 어색했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 가을철의 우리나라는 어디나 하늘나라의 절경같습니다. 유난히 아름다워보이는 올해의 단풍들이요 자주 변하는 하늘도 아름답습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하늘이라 ‘당신 모두가 다 좋다’라는 어제 써놓은 글도 생각납니다.

 

-하늘/어느 모습이든 좋다/당신/어느 모습이든 좋다

  당신/모두가 다 좋다/당신/보고플 때 하늘을 본다

  하늘/당신의 얼굴 같다/언제나/아름다운 하늘이다-

 

물론 당신이 가리키는 바, 영원한 그리움, 영원한 기다림의 대상인 주님을 뜻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기다릴 때 비로소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의 기쁨이 깨어 있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혼인잔치에서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종들의 자세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기쁘게 깨어 있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임을 깨닫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시중을 들 것이다.”

 

흡사 깨어 기다리다가 주님을 맞이한 미사잔치에서의 우리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주인을 주님으로, 종들을 우리들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그러니 모든 삶이 그래야겠지만 특히 공동전례기도시간중에는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오시는 주님을 깨어 맞이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면 깨어있는 삶은 전 삶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참행복이 어디있는지 새롭게 배웁니다. 오늘 지금 여기 일상의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깨어 준비하며 주님을 기다릴 때 바로 참행복임을 깨닫습니다. 깨어 있음에는 걱정할 까닭도, 두려워해야 할 까닭도 없습니다. 주님은 예상치 못한 때에 오시기에 유일한 해결책은 미래는 미래에 맡기고, 오늘 여기 지금 깨어 있는 것뿐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언제나 현재입니다. 준비된 종들은 언제나 여기 지금 현재에 살며 지금 여기서 주님을 찾고 발견합니다. 오늘 충실한 삶은 그대로 미래가 됩니다. 결국은 하루하루 깨어 살아감이 미래에 대한 최고의 처방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의 모습이 바로 내일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랑이자 고마움은 막연한 기다림이, 그리움이 아닌 뚜렷한 대상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강조하는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자 연인이자 도반이신 그리스도님이 바로 우리의 자랑이자 고마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 그분을 기다립니다. 참으로 ‘주님 안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역설적 진리가 깨어 역동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입니다. 주님 안에서 깨어 주님을 믿고 기다리는 삶이기에 내적분열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의 깨어있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깨어있을 때 내적일치의 평화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하나의 일치, 하나의 평화를 체험케하는 깨어 있는 삶입니다.

 

새삼 깨어 있는 영성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요즘 널리 유행하는, 일정한 시간 집중적으로 행하는 향심기도는 물론 유사한 모든 관상기도의 수행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도 깨어 있는 삶의 일상화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 평생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수행이 참 좋은 깨어 있음의 영성훈련시간입니다.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가 그대로 연장되는 공동전례기도 시간입니다. 성경 렉시오 디비나의 들음-묵상-기도-관상의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는 공동전례기도 시간입니다. 이 공동전례 시간만이라도 복음의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처럼 깨어 있음에 온 힘을 다한다면 깨어 있는 삶은 점차 전 삶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이렇게 깨어 기도할 때 공동체는 비로소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살아있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 후반부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공동전례를 통한 깨어 있는 삶의 일상화가 이런 거룩한 성전의 공동체로, 하느님의 거처인 공동체로 만들어 줍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를 이루어 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시간, 깨어 기다리다가 당신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시편 말씀대로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아멘.


Articles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