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화두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018.10.28.연중 제30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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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8.연중 제30주일                                                                   예레31,7-9 히브5,1-6 마르10,46ㄴ-52

 

 

영원한 화두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요즘 제 삶의 화두는 참행복입니다. ‘어떻게 하면 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제 관심의 전부입니다. 하느님의 소원은 우리의 행복입니다. 참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참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요 책임입니다. 한 번뿐이 없는 삶,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갈망이요 꿈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참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주님을 만날 때 참 행복입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만이 참 행복의 열쇠입니다. 다음 시편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행복을 향한 갈망은 곧 하느님을 찾는 갈망입니다. 눈이 열려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참 행복입니다. 방금 우리는 화답송을 노래하며 참 행복을 잠시 만끽했습니다. 참행복의 원천인 주님을 만나기위해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주께서 과연 우리에게 큰 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못 견디게 기뻐했나이다.”

 

보십시오.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길가에 앉아 있던 눈먼 거지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메오를 통해 그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길가에 앉아 있는 눈먼 거지가 상징하는 바, 바로 우리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울면서 오리니 내가 그들을 위로하며 이끌어 주리라. 물이 있는 시냇가를 걷게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곧은 길을 걷게 하리라.”

 

오늘 화답송 시편중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는 말씀은 주님을 만난 기쁨의 노래입니다. 그대로 복음의 눈먼 거지 바르티메오를 통해,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통해 실현됩니다.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참 기쁨에, 참 행복입니다. 주님을 만나 행복하게 살 자리는 바로 오늘 지금 여기입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꿈과 비전, 희망을 지녀야 합니다. 갈망해야 합니다. 사랑의 대상은, 꿈과 비전, 희망의 대상은, 갈망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두 말할 것 없이 주님이십니다. 바로 복음의 눈먼 거지, 바르티메오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육신의 눈은 멀었지만 주님을 찾는 갈망은 참으로 컸던 바르티매오였습니다. 

 

주님을 찾는, 기다리는 갈망이 깨어있게 합니다. 기도하게 합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은 영성생활의 시발점입니다. 갈망의 불이 꺼지면 영성생활도 끝장입니다. 우리가 찾는 주님은 누구입니까? 바로 제2독서 히브리서 저자가 고백하는 대사제입니다.

 

하느님께서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말씀하신 분, 또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말씀하신 분, 바로 지금 미사를 집전하시는 원주례자이신 우리의 영원한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의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래서 사제는 매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무지하여 길을 벗어나 죄를 지은 연약한 우리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대사제 예수 그리스도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우라들입니다. 바로 이런 주님을 찾는 우리의 갈망입니다. 눈은 멀었지만 주님을 찾는 갈망에 활짝 깨어 기다리던 바르티매오에 포착된 주님이십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로 미사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바친 자비송 기도입니다. 바르티매오는 외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기도는 이처럼 간절하고 절실해야 합니다. 사실 마음이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말도 글도 짧기 마련입니다. 그대로 바르티매오의 주님을 찾는 갈망의 표현입니다. 참으로 탄력좋은 바르티매오의 믿음입니다. 이런 간절한 기도와 믿음에 감동한 예수님의 응답입니다. 찾지 않았다면 예수님도 그냥 지나치셨을 것입니다.

 

“그를 불러 오너라.”

 

주변의 사람들도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그를 격려합니다. 아, 이 말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좌절에 넘어져 있을 때, 실의에 잠겨 있을 때 들려 오는 이런 좋은 이웃들이 격려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내어 곧장 일어나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곧장 일어나 주님께 응답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감사, 감동, 감격한 바르티메오는 숙명적 불운을 상징하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갑니다. 과거와의 결별이요 숙명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완전한 탈출 엑소더스입니다. 말그대로 부활입니다. 물도 고이면 썩습니다. 매순간, 매일, 평생 버리고 떠나 주님을 따라 흐를 때 비로소 맑게 흐르는 강같은 인생입니다. 다음 주님께서 바르티매오를 향한 물음은 우리 모두를 향한 영원한 화두와 같은 물음입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간절할수록 답도 간단명료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 하나의 소원입니다. 바르티매오의 답은 주님 찾는 구도자의 공통적 답입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멀쩡한 육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믿음의 눈이 멀어 삶의 실상을, 삶의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들을 얼마나 많습니까? 볼줄 몰라 어리석음에 불행이요 볼 줄 알면 지혜에 행복한 삶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르티매오는 물론 마치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파견할 때 말씀처럼 들립니다.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서니 이제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 인생에서 완전히 맑게 흐르는 강같은 인생으로 변모한 바르티매오입니다, 

 

이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행복의 길입니다. 새삼 우리 두 눈은 주님을 보라 있는 눈이요, 두 발은 주님을 따르라 있는 발임을 깨닫습니다. 그대로 제 행복기도문중 다음 대목과 일치합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발견하는/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살 줄 몰라, 볼 줄 몰라 어리석음에 불행이요, 살 줄 알면, 볼 줄 알면 지혜요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뵈옵고 따를 때 비로소 참 행복입니다.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으뜸가는 의무요 책임입니다. 참 행복하시길 바라십니까? 그러시면 제가 얼마전 알려드린 행복기도문 자주 바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참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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