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마음, 말, 행동-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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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연중 제30주건 월요일                                                                           에페4,32-5,8 루카13,10-17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마음, 말, 행동-

 

 

어제 아침 순간의 일출장면이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하여 많은 분들과 나눴습니다. 참으로 거룩하고 신비로운 장면이었습니다. 이 또한 하느님의 참 놀라운 선물입니다. 흡사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사는 영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요즘 피정하는 분들에게 강의중 자주 강조하는 것이 ‘여정-만남-닮음’, 그리고 ‘보고 배움’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믿는 사람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믿는 사람은 하느님이란 목적지 뚜렷한 순례여정중의 순례자라는 것과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날로 살아갈수록 주님을 닮아가는 삶인지 성찰하게 합니다.

 

자연히 교회 전례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하게 됩니다. 미사, 성무일도, 성독 등 전례수행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받고 정화되고 성화되어 주님을 닮게 됨을 강조합니다. 행복기도문 다음 대목 그대로입니다.

 

-“끊임없는/찬미와 감사의 삶중에/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온유와 겸손/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기도하면 그대로 됩니다. 바로 이렇게 날로 주님을 닮아갈 때,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닮아가는 평생공부에 충실하고 항구할 때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삶, 행복한 삶의 성취일 것입니다. 

 

 

또한 보고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머니를 보고 배우는 자녀들의 경우도 참 많이 강조합니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 사랑, 믿음, 언행 등 모든 삶을 보고 배운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참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하느님 믿음임을 또 강조합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이 빠져 버릴 때 사람의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지요. 삶의 의미를 잃고 제멋대로, 본능의 욕망대로, 함부로, 생각없이 막 되는대로 살게 되니 야수도 되고 괴물도 되고 악마도 됩니다. 바로 곳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통해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대로 하느님을 닮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열여덟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던 등굽은 여자도 치유됩니다. 순전히 사랑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무한한 연민의 자비심을 배웁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말씀하신 후 손을 얹으시자, 여자는 즉시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얼마나 통쾌한 치유인지요. 병마로 부터의 해방이자 자유입니다.

 

신체상 등굽은 곱사등이가 상징하는 바 선입견, 편견, 완고함으로 마음이 심히 왜곡된 마음의 곱사등이입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의 치유에 항의하는 옹졸한 회당장이 마음의 곱사등이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치유되는 왜곡된 마음의 곱사등이임을 깨닫습니다. 

 

똑바로 일어서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치유받은 신체의 곱사등이 여자는 동시에 마음의 곱사등이도 치유받았음이 분명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저절로 치유되는 마음의 곱사등이임을 깨닫습니다. 항의하는 회당장은 물론 묵시적으로 이에 동조하는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통쾌한 일갈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물음안에 답이 자명히 드러납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영육의 치유와 더불어 아브라함의 딸로 회복되어 자유인이 된 여자입니다. 참으로 분별의 잣대는 안식일법이 아니라 연민의 자비심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에서 주님은 바오로 사도를 통해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라 하시며,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 권고하십니다. 

 

이어 주님 안에 있는 빛으로서 빛의 자녀답게 살기 위한 마음과 말과 행동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주십니다. 물론 그 모범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처럼 온당치 못한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감사의 말만 해야 합니다.---어느 누구의 허황한 말에 속아 넘어 가지 마십시오.”

 

위와 같은 사람들과는 아예 상종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품위있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동을 늘 살펴보며 분별의 지혜를 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참 좋으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날마다 우리를 만나 주심으로 날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하여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진리이시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소서.”(요한17,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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