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의 삶 -그리스도 안에서 겨자씨같은, 누룩같은 삶-2018.10.30.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30,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8.10.30.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에페5,21-33 루카13,18-21

 

 

하느님 나라의 삶

-그리스도 안에서 겨자씨같은, 누룩같은 삶-

 

 

꿈이 있어야, 비전이 있어야, 희망이 있어야 삽니다. 꿈이, 비전이, 희망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입니다. 이런 꿈이, 비전이, 희망이 내적 활력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비전은, 희망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평생 꿈이자 비전은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실 때의 예수님 일성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나 이제나 시공을 초월하여 예수님은 물론 우리 믿는 이들의 영원한 평생 꿈이자 비전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멀리 있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가까이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가을은 어디나 절경이라 흡사 하느님의 나라같습니다. 올해의 단풍은 유난히 곱고 깨끗합니다. 어느 수녀님 계신 곳의 단풍 사진도 좋아 주고 받는 덕담도 생각납니다.

 

“아, 거기도 천국이네요.” 제 탄성에, “천국이면서 성지입니다.”라는 수녀님의 답변이입니다. 이어지는 저의 화답입니다. “그러고 보니 모두가 천국이자 성지네요.” 

 

성지있어 성인이 아니라 성인있어 성지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있어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이 있어 비로소 하느님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 때 비로소 하느님 꿈의 실현인 하느님 나라가 펼쳐집니다.

 

바로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 꿈의 실현인 하느님의 나라였고 무수한 성인성녀들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었습니다.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는 거기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어디나 하느님이 계시기에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을 만나라는 것이요 하느님의 나라를 살라는 것입니다. 행복기도문 둘째, 셋째 단락이 생각납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하느님의 나라/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발견하는

  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그렇습니다. 죽어서 가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야 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못살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죽어서도 하느님 못 만납니다. 오늘 복음은 한쌍의 하느님의 나라 비유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그것은 누룩과 같다.”

 

루카복음 사가는 하느님의 나라로 독자들의 생각을 이끕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의 상경기 첫 단락을 마무리짓습니다. 여기서 루카는 선교활동에서 직접 체험하는 바와 같이, 막을 수 없는 복음의 확장과 변화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꿈을, 하느님의 뜻을 좌절시키지 않는 섬세한 사랑의 관심입니다. 깨어 있어 하느님의 꿈인 하느님 나라가 잘 실현되도록 돕는 일입니다. 건들이지 말고 그냥 놔두고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물론 이웃에 대한 처신이기도 합니다.

 

더 좋은 것은 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겨자씨처럼 자라남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내적변화와 성장을 통해 내 자신은 물론 주변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확장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주님의 누룩이, 믿음의 누룩이, 희망의 누룩이, 사랑의 누룩이 되어 자신의 내적변화와 성장과 성숙은 물론 이웃을 신망애의 누룩으로 부풀려 성장과 성숙을 돕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두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겨자씨의 성장과 누룩의 변화는 모두 하느님의 나라의 확장과 성장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예전 강론 때 가끔 인용했던 부패인생과 발효인생입니다. 외관상 흡사해 보여도 내용은 천지차이입니다. 

 

부패인생은 악취가 나지만 발효인생은 향기가 납니다. 누룩의 효소가 작용할 때 발효이듯 성령의, 사랑의, 말씀의, 기도의 누룩이란 효소가 활발히 작용할 때 비로소 잘 익어 맛좋고 향기로운 발효인생에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맛좋게 잘 익어가는 향기로운 발효인생인지요? 자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로서의 아내와 남편 사이의 이상적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상에 부부사랑보다 힘든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하여 피정지도시 자주 형제자매들에게 드리는 격려 말씀이 생각납니다.

 

“특별히 성인되려고 노력할 것 없습니다. 평생 부부노릇, 부모노릇만 잘 해도 성인입니다. 부부가 함께 평생 살기만 해도 성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모두가 살아있는 순교 성인입니다. 또 부부는 함께 살았다는 자체로 구원입니다.”

 

격려하면 모두 폭소를 터뜨립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는 수평적 평등의 부부관계는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지요 그대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바로 오늘 바오로 사도는 부부일치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로 견주며 부부관계의 신비를 밝힙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상호사랑과 존경이요 상호사랑과 순종입니다. 이래야 이상적 부부관계에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어느 수도형제 부모님이 주고 받은 대화도 재미있어 나눕니다.

 

-모친이 “내 다시 살아도 당신을 남편으로 택해 살고 싶다.” 라 말하자 부친은 곧장, “내 다시 살게 되면 수도원에 들어 가겠다.” 답변했다는 말에 수도형제들 모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아마 모친보다 부친이 부부생활에 애로사항이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화답송 후렴처럼, 참으로 주님을 경외하여 주님을 닮아갈 때 오늘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를 잘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주님과 나, 나와 너, 남편과 아내의 이상적 관계 속에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기를 소망해 쓴 ‘하늘과 산’이란 제 자작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늘 있어/산이 좋고/산 있어/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깊이를 더하고/산은 하늘에 신비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이렇게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관계가 나쁘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천국은 '장소place'라기 보다는 '관계망network of relationships'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Articles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