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사랑하라 -평생공부-2018.11.3.연중 제30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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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연중 제30주간 토요일                                                                          필리1,18ㄴ-26 루카14,7-11

 

 

겸손을 사랑하라

-평생공부-

 

 

겸손은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겸손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듯 겸손을 사랑하십시오. 여덟가지 악덕중 허영에 이어 마지막 교만에 대치되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기를 몰라 무지無知의 결과가 허영과 교만이요 참으로 자기를 알 때 진실과 겸손입니다. 겸손의 사랑입니다. 겸손의 침묵입니다. 겸손의 지혜입니다. 겸손의 이탈입니다. 겸손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회개할 때 비로소 겸손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참 겸손에 이릅니다. 하느님 없이는 회개도 겸손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겸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더도 덜도 아닌 나일뿐입니다. 인간 본래의 아름다움이 겸손입니다. 

 

겸손의 어원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라틴어를 보면 겸손humilitas과 인간homo 은 흙humus에 어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흙을 닮아 갈수록 겸손의 참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흙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향수는 겸손을 향한 영적 본능처럼 생각됩니다. 하느님과 피조물인 흙의 인간이 극명히 대조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은 하느님이고 인간은 인간임을 아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겸손입니다. 하느님 공부와 참 나의 공부는 함께 갑니다. 결국 평생공부인 하느님 공부는 겸손공부임을 깨닫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그의 규칙 7장에서 겸손에 대하여 참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겸손의 12단계를 오른후완덕에 도달한 수도승의 모습을 통해 인간 삶의 궁극 목표가 무엇인지 환히 드러납니다.

 

“겸손의 이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곧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이전에는 공포심 때문에 지키던 모든 것을 별로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니, 이제는 지옥에 대한 무서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

 

겸손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저절로 습관화된 자연스런 겸손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하느님 중심의 삶이 깊어질수록 이탈의 겸손입니다. 악마도 겸손한 자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사막의 암마 테오도라에 대한 일화입니다.

 

-암마 테오도라는 말했다. 금욕도, 밤샘기도도, 어떤 고통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참된 겸손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악마들을 물리친 은수자가 있었다. 그는 악마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너희를 달아나게 만들었느냐?” “단식인가?”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 “밤샘기도인가?” 그들은 말했다. “우리도 잠자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힘이 너를 쫓아냈는가?” 그러자 그들은 대답했다. “겸손만을 제외한 그 무엇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암마 테오도라는 말했다. “너희는 겸손이 어떻게 악마들을 이길 수 있는지 보지 않느냐?”-

 

오늘 복음의 소주제는 ‘끝자리에 앉아라.’입니다. 무지의 인간의 본능적 경향이 윗자리를 향한 교만입니다. 주님은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말씀하신 다음 결론 말씀으로 끝맺으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교만으로 낮아지고 겸손으로 높아진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자발적으로 이처럼 끝자리를 찾는 이들이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와 연관된 주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9,35), 또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마르9,48) 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이의 종이 된, 가장 작은 겸손한 사람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겸손을 사랑합니다. 덕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겸손을 사랑합니다. 침묵도 고독도 사랑하고, 독서도 사랑하고, 정결도 사랑하고, 순종도 사랑하고, 가난도 사랑합니다. 사랑할수록 날로 저절로 이탈의 자유입니다. 사랑과 이탈, 자유는 함께 갑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완전 무아無我의 사람, 진아眞我의 사람이 된 이탈의 사람, 겸손의 사람, 자유의 사람이 바오로입니다. 비록 영어囹圄의 육신일망정 세상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바오로의 영혼은 하늘 위에 떠도는 흰구름 같습니다.

 

-“하늘보면/마음은/훨훨날아/흰구름 된다”-

 

언젠가 써놓은 짧은 시입니다. 지상에 살지만 영혼은 하느님 하늘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바오로 영혼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은 언제 들어도 감동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나의 생활을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은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리1,20-21)

 

공동번역이 실감나 바꿨습니다. 이 말씀을 바탕한 제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 상본의 성구가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였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가 내 생의 전부가 될 때 저절로 이탈에 겸손이요 자유입니다. 이 모두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는 그리스도께 대한 갈림없는 전적인 사랑입니다. 제 자작 행복기도문 한 연이 생각납니다.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저의 생명/저의 사랑/저의 기쁨/저의 행복이옵니다/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당신을 사랑함으로 우리 모두 이탈의 겸손과 자유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이까?”(시편42,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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