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2018.11.4.연중 제31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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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4.연중 제31주일                                                                     신명6,2-6 히브7,23-28 마르12,28ㄱㄷ-34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우리는 방금 화답송에서 하느님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 내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오늘 복음의 첫째 가는 계명은 유다교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바치는 신앙고백분 ‘셔마’의 일부입니다. 우리도 매주 토요일 끝기도때마다 듣는 말씀입니다. 첫마디 ‘들어라’가 히브리말로 셔마이기에 셔마 신앙고백문이라 일컫습니다. 신앙고백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신명6,4-9).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느님 사랑을 첫째로 두고 밤낮으로 마음에 새겼는지 실감나게 전달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 믿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는 권고 말씀입니다.

 

주 우리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니 우리 삶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아가는 평생 사랑 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아무리 하느님 사랑을 공부해도 여전히 초보자인 우리지만 죽는 그날까지 공부해야 하는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올해의 가을 단풍은 유난히 곱고 밝고 맑습니다. 한국 어디나 절경의 하늘 나라 천국같습니다. 수도원 고백상담실 문앞에 단풍도 너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습니다. 어제 어느 자매와의 면담중 생각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네 자신을 사랑하라 하는 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듣고 말문이 막힌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너무 뜬금없는 그러나 진정성 있는 물음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사랑도 능력이구나. 사랑도 받아야, 체험해야 할 수 있겠구나’, 너무나 자명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는 우리 인간이기에 마음 깊이에는 사랑할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다음 하느님 사랑을 목말라하는 시편 내용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합니다. 그 하느님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올 수 있겠습니까?"

 

이런 하느님의 사랑이 목말라, 이런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싶어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입니다. 사랑할 때 사랑도 받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록 정체성 뚜렷한 삶에 자존감 높은 삶입니다. 곳곳에서 하느님 사랑도 발견하고 체험합니다. 만병의 근원이 사랑결핍이요 만병통치약이 사랑입니다.

 

지금도 선명히 생각나는 기억이 있습니다. 1998년 12월25일 성탄절에 빨간 칸나를 선물 받고 즉흥적으로 흘러나왔던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라는 시입니다.

 

-“당신이/꽃을 좋아하면/당신의 꽃이

  당신이/별을 좋아하면/당신의 별이

  당신이/하늘을 좋아하면/당신의 하늘이/되고 싶다

  늘/당신의 무엇이/되고 싶다”-

 

당신이 지칭하는 대상은 두말할 것 없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모두입니다. 특히 우리 수도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삶이라 정의되는 수도생활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은 우리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라 정의합니다. 

 

어찌 수도자뿐이겠습니까? 믿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런 하느님이 빠진 인생이라면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의 심연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온갖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인생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 사랑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없이 인간신비는 결코 해명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 답입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사람으로 살기 위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참 사람으로 살기위해서 하느님 사랑은 필수의무입니다. 갈림없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정신을 다해,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고맙게도 첫째 하느님 사랑 계명에 하나 더하여 둘째 이웃 사랑의 과제를 부여해 주십니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로 묶어 우리 모두에게 선물이자 과제로 부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랑의 이중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영원히 빛나는 모범이십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가 이의 빛나는 상징입니다. 수직의 하느님 사랑, 수평의 이웃 사랑이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도와 주십니다. 그러니 좌절은 금물입니다. 히브리서가 고백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분께서는 영원히 사시기 때문에 영구한 사제직을 지니십니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을 언제나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살아 계시어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순수하시고 순결하시고 죄인들과 떨어져 계시며 하늘보다 더 높으신 분이 되신 대사제이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당신 안에 완성하신 대사제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에 매진합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하느님 찾는 열정의 사랑은 표현을 찾습니다. 제 강론 역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고, 칸톨 수사님의 아름다운 성가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고. 문간 안내 수사님의 친절한 환대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고, 농장 수사님의 농장 일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고, 주방장 수사님의 주방 일도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든 수행이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랑의 표현이기에 아름다운 수행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막연한 추상이 아닙니다. 사랑의 표현은 우리의 본능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느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기도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모두를 하라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되고 저절로 성화가 뒤따릅니다. 

 

바로 여기서 참으로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우리 공동체가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런 기본적 수행보다 하느님 사랑의 표현에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찬미와 감사가 우리의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앎을 날로 깊게 함으로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하느님 사랑이 우선입니다. 모든 신비의 열쇠가 하느님 사랑에 달렸습니다. 사랑할 때 압니다.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우리 향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비로소 나를 사랑하여 알 수 있게 되고 더불어 이웃도 사랑하여 알게 됩니다. 하여 무지로부터의 해방도 이뤄집니다. 

 

참으로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치명적 병이자 죄이자 악이 바로 무지입니다. 살 줄 몰라, 볼 줄 몰라 어리석음 이요 불행입니다. 살 줄 알면, 볼 줄 알면 행복이요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을 알아가고 나를 사랑하여 알아가고 너를 사랑하여 알아갈 때 비로소 무지로부터의 치유요 해방입니다. 그러니 무지의 병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하느님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사랑하여 알아가고 나와 너를 사랑하여 알아가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평생공부는 없습니다. 이 모든 공부의 전제가 바로 하느님 사랑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할 때 저절로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깨닫게 되고 나를 사랑하여 알게 되고 이어 하느님의 자녀들인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여 알게 되니 바로 거기서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필수 의무입니다. 오늘 신명기에서는 물론 복음에서 예수님의 분명한 명령의 어투입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주님은 ‘사랑해야 한다’로 못박듯이 사랑의 필수의무과제를 부여하십니다. 사실 이 두 계명을 능가할 수 있는 계명은 없습니다. 십계명과 모든 율법도 이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요약됩니다. 이런 사랑이 있고서야 번제물과 희생제물도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하느님 사랑의 고백과도 같은 행복기도문을 나눔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사랑합니다/찬미합니다/감사합니다/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발견하는/기쁨, 평화, 감사, 행복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끊임없는/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주님/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생명, 저의 사랑,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이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 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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