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가득한 행복한 삶 -정주, 찬미, 순종-2018.12.8.토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0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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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8.토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창세3,9-15.20 에페1,3-6.11-12 루카1,26-38

 

 

은총이 가득한 행복한 삶

-정주, 찬미, 순종-

 

 

오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미사중 화답송 후렴이 참 은혜롭습니다. 가사도 곡도 오늘 대축일에도 아주 적절히 잘 어울리고 우리를 한없이 흥겹게  합니다. 오늘 하루만 아니라 자주 노래 기도로 바쳐도 좋겠습니다. 

 

"새로운 노래를 주께 불러 드-려라. 묘-한 일들 당신이 하시었도다."

 

오늘 대축일은 성모님이 테어나실 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교리를 믿고 고백하는 날입니다. 오래전부터 내려 오던 믿음을 비오 9세 교황님이 1854년 믿을 교리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미 1838년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수호자로 정해 줄 것을 청원하였고 그레고리오 교황은 이런 요청을 허락하면서 요셉 성인을 공동 수호자로 정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한국 교회의 생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은총이 가득하신 동정 마리아와 성 요셉을 공동 수호자로 모신 한국교회는, 더 나아가 한반도의 남북한 나라는 얼마나 행복한지요. 도대체 이보다 더 든든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두 수호성인의 간절한 전구로 남북한이 명실공히 한나라로 공존공생의 평화통일을 이뤄주실 것을 믿습니다.

 

은총이 가득한 동정 마리아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바 은총이 가득한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비단 성모님뿐 아니라 누구나 은총 가득한 삶입니다. 하여 제가 참 많이 써드리는 고백성사 보속 처방전 말씀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구절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마리아 대신 형제자매님의 이름을 바꿔 적어주면서 그대로 믿고 생활하라 격려하며 써드리는 말씀 처방전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웃어요.”, 또는 “괜찮아 힘내.”, 또는 “너는 최고야” 스탬프를 찍어 드리면 활짝 웃는 얼굴이 은총 가득 피어난 꽃같습니다. 행복기도 첫 연중 행복을 은총으로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행복기도입니다.

 

“주님/사랑합니다/찬미합니다/감사합니다/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은총이옵니다/이 은총으로 살아갑니다.”

 

누구나의 하느님 지어 주신 이름을 말한다면 ‘이 행복’, ‘이 은총’일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은총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저 또한 제 강론에 대한 평을 통해서 은총의 삶을 확인하며 격려 받았던 일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답니다. 

 

14년전 로마에서 베네딕도 규칙을 사용하는 수도자들의 3개월 간 양성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제 영어 강론에 대한 참석자들의 평이었고, ‘영적사제spiritual priest’란 호칭도 들었습니다. 한영사전을 참고하며 말씀으로 조각하듯 썼던 강론들입니다.

 

“1.단순하다simple. 2,실천적이다practical. 3.풍성하다colorful. 4.좋은 메시지를 준다good message.”

 

이 평가대로 살면 그대로 은총 가득한 삶이겠다는 생각에 참 고무됐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게 용기와 힘을 줍니다. 얼마전 어는 평신도 신학자의 페이스 북에 실린 평도 저를 고무시켰고 강론 평가대로 살면 은총 가득한 삶이 겠다는 자각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949 출생으로 내녀 서품 30년 되는 수도회 신부다, 매일 새벽 2-4시 사이에 설교를 쓴다. 평생 하루도 설교 작성을 빼놓지 않았다. 설교 깊이가 남다르다. 그저 그렇고 그런 설교가 아니다. 루카복음 저자 스타일 설교다. 쉽고, 아름답고, 울림있는 언어를 쓴다. 존경합니다.-

 

깊고, 쉽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이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그대로 동정 마리아처럼 은총 가득한 삶이겠습니다. 오늘 성모님처럼 은총 가득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정주의 삶입니다.

사랑의 정주, 정주의 평화입니다. 안주가 아니라 정주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동반하는 정주입니다. 이래야 늘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입니다.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제자리에서 제대로 제정신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무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정주의 장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정주입니다. 장소의 정주도 있지만 궁극의 영적 정주는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 안에서 정주입니다. 말 그대로 치유의 공간이 정주의 공간입니다. 하여 여기 정주의 수도원이야말로, 또 면담성사가 수시로 이뤄지는 제 정주의 집무실이야 말로 치유의 공간이 됩니다. 

 

아니 내 사는 정주의 집도, 방도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회개로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 내려 정주의 삶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모두 저절로 이웃에게 치유와 평화의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교만과 불순종의 죄로 정주의 제자리를 잃어버리니 책임전가에 분열로 서로간의 관계는 산산조각 납니다. 정주의 위로와 평화를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말그대로 천국의 낙원이 실낙원으로 전락됐습니다. 오늘 창세기 첫 물음은 우리에게 영원한 화두가 됩니다.

 

“너 어디 있느냐?”

 

과연 있어야 할, 정주의 제자리에 있는지 묻습니다. 죄로 인해 정주의 제자리를 잃은 아담은 두려워 숨습니다. 정주의 제자리에 깨어 준비하고 있었다면, “예, 여기있습니다.” 하고 곧장 뛰쳐 나갔을 것입니다.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 같은 안주의 삶이 아니라 내적으로 늘 맑게 흐르는 강물같은 정주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회개가 필수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제자리의 정주에 겸손의 덕입니다.

 

둘째, 찬미의 삶입니다.

사랑의 찬미, 찬미의 기쁨입니다. 성모 마리아 역시 찬미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우리 가톨릭 교회가 매일 저녁기도 끝무렵에 성모님과 함께 감격에 벅차 기쁘게 바치는 ‘마리아의 노래’(루카1,46-55)가 이를 입증합니다. 

 

정주가 늘 새로운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샘솟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찬미입니다. 찬미를 사랑하십시오. 참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찬미의 기쁨입니다. 세상에 사랑의 찬미를, 찬미의 기쁨을 능가할 사랑도, 기쁨도 없습니다.

 

“여기 수도원에서 평생 무슨 맛으로, 무슨 기쁨으로 살아갑니까?”

 

저뿐 아니라 도반 수도형제들의 이구동성의 지체없는 대답은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하느님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간다는 답 하나뿐입니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야 말로 기쁨의 샘, 행복의 샘입니다. 

 

오늘 제 2독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은총에 대한 하느님 찬양입니다. 그리스말 본문에서는 3절에서 14절까지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말그대로 숨을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안에서 베푸신 은총을 내리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매주 월요일 저녁성무일도때 이 찬미가(에페1,3-10)를 바칩니다.

 

셋째, 순종의 삶입니다.

사랑의 순종이요 순종의 자유입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하느님께 순종이 아니라 자발적 사랑의 순종입니다. 순종을 사랑하십시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순종을 사랑합니다. 진짜 영성의 표지가 사랑의 순종입니다. 순종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 이르며 참 자유도 순종을 통해 이뤄집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우리 삶은 순종의 여정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순종에 충실할 때 마지막 순종이자 봉헌인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순종에 앞서 침묵으로 잘 기울여 듣는 경청傾聽이, 공경하며 듣는 경청敬聽이 중요합니다. 

 

침묵중에 잘들어야 순종이요 겸손입니다. 이래야 은총이 가득한 삶이요 하느님께 총애를 받는 삶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성모님이 그 모범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할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순종하신다 합니다. 성모님의 순종은 다음의 '예스yes'로 절정에 이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 구절은 늘 들어도 감동이요 새롭습니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성모님의 '예스yes'의 응답에 온 우주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마리아가 한없이 고마웠을 것입니다. 하여 어느 분은 마리아야 말로 하느님께 내보일 수 있는 우리 인류의 최고의 자부심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하느님 그대의 자랑이듯, 그대 하느님의 자랑이어라.” 그대 대신 성모 마리아를 넣어도 그대로 통하듯, 우리를 넣어도 그대로 통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모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은총을 가득히 받은 복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정주의 삶에, 찬미의 삶에, 순종의 삶에 항구하시고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말 그대로 성모님처럼 무죄한, 은총이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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