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주님과의 관계-2018.12.15.대림 제2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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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대림 제2주간 토요일                                                                       집회48,1-4.9-11 마태17,10-13

 

 

“나는 누구인가?”

-주님과의 관계-

 

 

대림시기 계속되던 제1독서 이사야서 대신 오늘은 집회서의 엘리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복음의 주제 역시 엘리야의 재림입니다. 엘리야는 누구입니까? 구약에서 승천한 인물 에녹, 모세, 엘리야 셋 중 한 분입니다. 바로 오늘 오늘 집회서가 그의 승천을 확인합니다.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승천 전의 엘리야의 활약은 얼마나 눈부신지요? 참으로 하느님의 예언자답게 충실히 하느님의 일을 화끈히 수행하는 모습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진 사명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다음 엘리야에 대한 묘사는 얼마나 인상적인지요?

 

“그 무렵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불처럼 타올랐다.---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 보냈다. 엘리아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말 그대로 불같은 예언자 엘리야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명을 다하며 열정적 삶을 살았던 엘리야의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마치 하느님 주신 사명에 충실했을 때 파스카의 영원한 삶에 참여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엘리야의 승천은 사필귀정입니다.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삶도 아름다웠지만 승천의 떠남도 아름답습니다. 과연 하느님 주신 역할의 사명에 충실하다가 미련없이 홀가분하게 떠나는 이들의 죽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죽음이 마지막이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의 진입임을 예감하게 됩니다. 

 

엘리야의 승천은 그대로 그의 삶을 요약하듯 우리의 죽음도 그대로 우리의 삶을 요약할 것입니다. 참으로 진짜 삶을 살았던 엘리야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하느님께 주어진 배역의 사명에 충실함이 선종의 죽음을 위한 최상의 준비일 것입니다. 이런 엘리야의 삶과 승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재림을 믿었고 말라기 3장24절 말씀이 재차 오늘 인용됩니다.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집회48,10).

 

바로 이런 엘리야의 재림이 세례자 요한임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밝히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오늘 복음의 핵심 말씀입니다. 바로 무지가 불행의 근본 원인임을 깨닫습니다. 무지로 인해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임을 몰라 그분을 죽였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 대한 오해와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이 두분들은 주님과의 깊은 관계중에 사셨기에 주님을 알았고 자기를 알았습니다. 하여 이 두분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사명에 끝까지 항구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후에야 주님이 누구신지 비로소 알았습니다.

 

엘리야의 재림으로 믿어졌던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님은 무지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던 분입니다. 하느님을 알았고 자신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의 신원에 대해 생각합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입니다. 사실 이 물음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물음은 없습니다. 주변에서 어처구니 없는 무의미하다 생각되는 참으로 허무한 죽음들을 많이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하여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고 ‘참으로 살아보지 못하고’ 무지속에 살다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하겠는지요. 세상에 온 목적이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일인데 말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비로소 해명됩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가 우리의 신원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날로 하느님과 깊어지는 관계가 바로 영원한 생명이요 우리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되는 영원한 삶의 하늘 나라입니다. 세상 속의 미아迷兒가 아닌 하느님을 영원한 안식처이자 정주처, 피신처로 삼아 하느님의 자녀로서 정체성 뚜렷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 중심에 ‘삶의 닻’을 내리는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의 자녀, 빛의 자녀로서의 복된 신원을 날마다 새롭게 확인하면서 주님과의 관계를 날로 깊게 해주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다음 화답송 후렴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미사시간입니다.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시편80,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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