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6.대림 제3주일(장미주일) 스바3,14-18ㄱ 필리4,4-7 루카3,10-18
회개를 통한 주님 은총의 선물
-기쁨, 평화, 희망, 찬미, 감사, 겸손-
오늘은 대림 제3주일입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대림촛불 셋이 흡사 믿음, 희망, 사랑, 신망애信望愛의 세 촛불처럼 우리 마음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계시기에 살 맛나는 인생입니다. “미래가 없다”, “희망이 없다” 라고 말하는 분에게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하느님이 미래다”, “하느님이 희망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빛나는 미래이자 생생한 희망이신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오늘은 대림 제3주일, 일명 “가우데테Gaudete, 장미주일”입니다. 바로 입당송 필리비서 4,4절 첫 마디 “기뻐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가우데테Gaudete”를 딴 명칭입니다. 하여 제의 색깔도 기쁨을 뜻하는 장미꽃 핑크빛 분홍색깔입니다. 참 아름다운 기뻐하라, 가우데테 주일입니다. 영어로 “리조이스Rejoice!” 어감도 우리 말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제 집무실 안 벽, 2015년 성탄 때 수도형제가 붙여준 제 사진 안에는, 오늘 제2독서 필리비서 첫구절인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4,4) 라는 성구가 들어 있습니다. 볼 때 마다 기쁨을 상기하게 됩니다. 또 하나 제가 면담고백 성사 때 가장 많이 써드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5,16-18)
말씀 처방전 옆에는 꼭 “웃어요.”라는 붉은 색 선명한 스탬프를 찍어 드립니다. 성탄의 기다림을 앞둔 우리 모두를 향한 다음 제2독서 바오로 사도의 필리비서 말씀이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웁니다. 앞서 말씀과 흡사한 분위기와 느낌입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어느 하나 생략할 수 없는 귀하고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살지 죽을지 한치도 내다볼 수 없는 옥중의 상황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기쁨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기쁨입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고통과 시련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언젠가 세기 중 수도형제와의 대화도 생각납니다. 참 많이 인용했던 늘 현실성을 띠는 잊지 못할 내용입니다. 어느 공동체를 갔더니 다 있는 데 한 가지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그 하나가 뭣인지 물었습니다. “기쁨입니다!”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공감했습니다.
다 있는 데 우리 공동체에, 내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얼마나 공허할까요.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쁨이야말로 참 영성의 표지이자 참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우울보다 하느님께 모독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우울증, 정신질환 모두가 기쁨의 상실에서 기인합니다. 기뻐할 때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이 됩니다. 걱정도 사라집니다.
우리의 기쁨은 기다림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바로 성탄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기쁨입니다. 도대체 주님이 아니곤 누구를, 무엇을 희망하고 기다리겠습니까? 우리가 평생 희망하고 기다릴 분은 주님뿐입니다. 성탄을 통해 오실뿐 아니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일상을 통해 우리가 그리워, 우리를 사랑해 끊임없이 찾아 오시는 주님을 희망하는, 기다리는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희망하며 기다리는 기쁨이 생명을 주는 참 기쁨입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다 해도 이런 기다림의 희망이, 기다림의 기쁨이 없다면 그 공동체나 마음은 얼마나 어둡고 무겁겠는지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쁨에 곧장 이어지는 감사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우리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감사 또한 기쁨과 더불어 참 영성의 표지이자 참 그리스도인의 빛나는 특징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도 발견입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온통 감사일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옥중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몰라서 불평불만이지 진짜 알면 감사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기쁨과 더불어 감사할 때 행복도 저절로 찾아 옵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다 해도 내 공동체나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역시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사에 이어지는 평화입니다. 참으로 기뻐할 때, 감사할 때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줍니다. 기쁨에 이은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평화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선사되는 주님의 평화입니다. 제가 미사전례중 평화 예식중 참 좋아하는 권고 말씀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여기서 제가 늘 강조하는 단어는 ‘항상’입니다. 오랫동안 의식을 못하고 ‘항상’을 빼놓고 하다가 수도형제의 조언에 깜짝 놀라 반드시 강조하는 말마디가 ‘항상’입니다. 늘 기뻐하고, 주님의 평화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할 때 참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세상의 어떠한 유혹도 악의 세력도 그를 다치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선물이자 방패인 기쁨과 평화가 그를 지켜 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지녔어도 내 공동체에, 내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 번 점검해 보십시오. 내 공동체 안에, 내 마음 안에 기쁨이 있습니까? 희망이 있습니까? 감사가 있습니까? 평화가 있습니까? 모두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요 훔쳐 올 수도 없는 것들이요 만들어 낼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기쁨과 희망의 원천, 감사와 평화의 원천입니다. 우리의 영적 건강과 치유에 하느님 주신 최고의 명약이 희망과 기쁨, 감사와 평화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없이는 어디서도 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아닌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기쁨, 희망, 감사, 평화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 은총의 선물들입니다.
하여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례의 궁극 목적도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여 찬미기도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기쁨을, 희망을, 감사를, 평화를 모르는 것 역시 무지의 병입니다. 마음이 무디어져 무지해지면 결코 이를 알 수 없습니다. 찬미와 감사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날 때 비로소 회개에 이어 깨어 있게 되고 무지로 부터의 해방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빛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여 겸손하고 온유하며,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여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시편과 미사전례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시편기도와 미사전례는 믿는 모두에게 영적 주식과 같습니다.
제1독서에서 스바니야 예언자 역시 바빌론 유배의 땅에서 좌절하지 않고 우리를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기뻐하라 하십니다. 딸 시온이, 딸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우리들입니다.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 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축제의 날인양 그렇게 하시리라.”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우리 한가운데, 우리와 늘 함께 계신 하느님이 우리의 자랑이자 기쁨의 원천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주어지는 사랑이, 기쁨이 우리의 지칠줄 모르는 활력이 됩니다. 기쁨의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저절로 사라지는 두려움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한 두 번의 회개가 아니라 평생 깨어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회개를 통해 주님을 만난 겸손해진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참 좋은 은총의 선물이 찬미, 감사, 기쁨, 평화, 희망입니다.
회개의 열매는 나눔의 실천으로 입증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그러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묻는 회개한 이들에게 구체적 회개의 실천 지침을 주십니다. 오늘 자선주일에도 그대로 드러맞는 요한의 권고입니다.
군중에게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권하고,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권하며, 군사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권하십니다.
비상한 회개가 아니라 각자 평범한 일상의 제자리에서 자선과 정의를 실천하고 제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회개의 기쁨은 일상의 기쁨, 나눔의 기쁨이 됩니다. 참 영성의 표지는 겸손이요 자기를 아는 지혜입니다. 바로 요한이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겸손으로 비워진 요한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없다.”
겸손의 매력, 겸손의 아름다움, 겸손의 기쁨입니다. 라틴어 어원을 보면 흙humus에서 기원한 겸손humilitas이요 사람homo임을 알게 됩니다. 흙같이 겸손해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겸손의 모범이 요한입니다.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겸손의 기쁨’자체가 그대로 복음선포임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은총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은총을 통해 깨어 주님을 만날 때 겸손해진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 기쁨, 평화, 찬미, 감사, 희망입니다. 차고 넘치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로 깨끗해진 우리 모두를 기쁨과 평화, 찬미와 감사,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닮아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참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