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중심, 사랑, 질서-2018.12.30.주일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성화주간)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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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0.주일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성화주간)

집회3,2-6.12-14 콜로3,12-21 루카2,41-52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중심, 사랑, 질서-

 

 

오늘은 2018년 마지막 주일이자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교회는 오늘부터 한 주간을 ‘가정성화주간’으로 지냅니다. 모든 공동체의 기초가 가정입니다. 참으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공동체도 없습니다. 하여 믿는 이들의 이상적 가정을 정의하여 ‘성가정 교회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요? 모든 가정교회공동체의 영원히 빛나는 모델인, 오늘 축일로 경축하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끊임없이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믿는 이들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교회에 속해 있는 형제자매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이런 성가정 한 몸 교회에 속해 있음을 은혜로이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줍니다. 바로 감실 옆 소박하게 꾸며진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우리 모두가 속한 영원한 고향, 주님의 집을 상징합니다.

 

혈연가정공동체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님을 중심한 성가정 교회 공동체로 끊임없는 변모가 필수입니다. 끊임없이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닮아가야 합니다. 이 또한 평생과정입니다. 문제없는 가정도, 이상적인 가정도 없습니다. 평생 함께 노력하면서 배워가야 하는 우리 가정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방금 화답송 후렴을 흥겹게 노력했습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하루 종일 흡겹게 짧은 노래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저절로 행복해지는 기분일 것입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교회가 바로 주님의 집입니다. 비단 수도원뿐 아니라 교회가 주님의 집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집에 사는 행복한 자들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하며 은혜로이 깨닫는 진리입니다. 

 

바로 이 성가정 교회를 내 몸담고 있는 가정부터 실현해가는 것입니다. 내 몸담고 있는 가정을 바로 주님의 집, 성가정 교회 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힘겹게 그러나 충실히 가정을 지켜나가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주저없이 성인이라 하며 다음과 같이 격려합니다.

 

“가정에 충실할 때 성인이 됩니다. 가정을 떠나 성인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가정만 잘 지켜도 성인입니다. 부부가 끝까지 살아 자녀들 잘 키우면 그대로 성인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평범하면서도 아주 건실한 성인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가정에 충실한 모든 분들이 성인처럼 보입니다. 하여 성인이 되는 기도, 행복해지는 기도로 ‘행복기도’를 많이 권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뤄 살 수 있겠습니까? 

 

첫째, 중심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중심의 가정이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돈 중심, 일 중심, 사람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가 옳습니다. 성가정 공동체의 기초가 바로 하느님이요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보셔요.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가정, 예수님 중심의 성가정임이 드러납니다. 해마다 파스카 축제일에 예루살렘에 순례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사실 유대인들 남자는 13살 이상이면 일년 중 3회 즉 해방적, 오순절,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할 의무를 지닙니다. 소년 예수님은 12살이기에 순례 의무는 없었지만 부모을 따라 순례길에 올랐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 순례하면서 유대인 가정들은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했을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과 함께 순례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가고, 성지를 순례하며 보고 배운다면 얼마나 이상적인 성가정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범상치 않은 모습이 주목됩니다. 예루살렘 순례중 사흘 후에야 잃었던 예수님을 찾았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추궁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소년 예수님의 확고한 삶의 중심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합니다. 참으로 성가정의 부모들이 배워야 할 지혜로운 처신입니다. 은연중 예수님이 이 성가정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하느님 중심의 깊고 넓은 성모님의 마음이 배경의 품이 되었기에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음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부모님들의 하느님 중심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이 깊어갈수록 이뤄지는 성가정 교회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콜로새서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우리 공동체 삶의 중심으로 할 때 저절로 풍성한 축복의 평화와 감사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공동체, 그리스도 중심의 공동체는 바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이웃도 저절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느님 사랑은 이웃 사랑에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다음 시편도 우리를 고무시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 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시편128,1). 우선적인 것이 우리의 복된 신원에 대한 확인이자 확신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제외될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답게’ 사는 것입니다. ‘인간답게’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답게,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은 신학교때 교수님 말씀입니다. 바로 ‘인간답게’가 아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랑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미사중 주기도를 바칠 때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아뢰오니” 로 시작되는 권고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정성을 다해 함께 바치는 주님의 기도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구체적으로 사랑의 내용을 밝혀 줍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옷입듯이 입으십시오.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그러니까 동정, 호의, 겸손, 온유, 인내, 용서, 사랑의 일곱 개 덕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일곱이지만 결국 사랑의 옷 하나로 귀결됩니다. 결국 사랑의 성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행복기도 마지막 부분도 생각납니다.

 

“이제 당신 사랑을 닮아/겸손과 온유, 인내의 사람이 되는 것이

 제 소망이오니/간절히 청하는 제 기도를 들어 주소서/사랑하는 당신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분도성인은 그의 규칙에서 형제들의 ‘육체나 품행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 했습니다. 끝까지 참아 견디는 인내의 사랑이 참으로 필요한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저는 마음이 편협해 질 때 네 말마디를 생각하며 마음을 너그럽게 펴기 위해 노력합니다. “건들이지 마라!”, “그냥 놔둬라!”, “아, 그게 현실이지!”,“아, 그럴수 있지!”, 참으로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와 수용의 사랑이 참으로 필요한 공동생활입니다. 사람마다 다 마땅한 까닭이 있고, 다른 것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셋째, 질서입니다.

이 거룩한 사랑의 미사은총이 우리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 줍니다.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뤄주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가 관계의 질서입니다. 무질서는 악이자 죄입니다. 질서로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집회서와 제2독서 콜로새서 후반부는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다룹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 받는다.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서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 진다.---얘야,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사실 부모들에게 잘 한 이들 치고 자녀들 때문에 속썩는 사람들 하나도 본적이 없습니다. 부모들의 노부모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보고 배우는 자녀들입니다. 콜로새서는 주님 안에 있는 부부관계와 부모와 자녀관계의 올바른 질서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뤄주는 구체적 내용의 사랑의 질서입니다. 주님 안에 살 때 이런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랑의 순종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거룩한 임무가 주님과 함께 지어 갈,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건설입니다. 주님은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 축일에 그 비결을 알려 주셨습니다.

 

1.중심입니다. 하느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2.사랑입니다. 사랑의 옷을 입고 항구히, 충실히 하느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3.질서입니다. 서로간의 관계의 질서를 항구히 충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셋이지만 결국 사랑 하나로 귀결됩니다. 사랑의 중심, 사랑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은 가정성화주간입니다. 사랑이 거룩하게 합니다. 가정을 성화하는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 당신 성가정의 모범으로 우리를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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