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순례 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2019.1.6.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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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6.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60,1-6 에페3,2.3ㄴ.5-6 마태2,1-12

 

 

평생 순례 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

 

 

방금 부른 주님 공현 대축일 화답송 후렴이 우리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느낌입니다. 오늘 하루 끊임없는 노래 기도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만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

 

오늘 복음의 동방박사들과 함께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 조배하기위해 공현 대축일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새벽 독서 기도시 찬미가도 또 아침기도 후렴도 아름다워 공현대축일의 기쁨을 고조시켰습니다.

 

(찬미가)

-1.박사들 누워계신 아기를 보고 가져온 선물들을 바쳐드렸네

 엎드려 흠숭하며 정성스럽게 황금과 유향몰약 바쳐드렸네

 

 3.황금은 임금이심 드러내 주고 유향은 하느님을 표시해 주며

 몰약은 치를 장례 예고해 주니 세가지 주님사명 드러내 주네-

 

(아침기도 후렴)

-1.박사들이 보물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께 예물로 드렸도다.

 2.샘들아 주님을 찬미하고 바다와 강물들아 주께 노래불려 드려라.

 3.예루살렘아 네 빛이 오신다. 주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오르니,

   이방인들이 네 빛을 향하여 걸어오리라. 알렐루야-

 

참 아름답고 마음 설레는 대축일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주님께 예물로 드리겠습니까? 탄생하신 주님의 빛이 우리를 비춥니다.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대신 여러분 이름을 넣으시면 더욱 실감이 날 것입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우리 모두 주님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삶을 살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주님 영광의 빛을 반사하는 삶일 때 참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순례여정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는 것입니다. 평생 진리자체이신 하느님을 찾는 구도자, 순례자, 수행자로 사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린 구원의 문이요 모두가 초대받고 있는 순례여정입니다.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인 이 거룩한 미사전례는 순례여정을 압축하여 하느님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기쁨을 앞당겨 체험케 함으로 우리의 순례여정에 샘솟는 활력의 원천이 됩니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의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연상되는, 평생 잊지 못할 2014년 가을철 산티야고 순례여정의 체험입니다. 그대로 인생순례여정을 압축한 듯 했습니다. 때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산티야고 순례여정처럼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의 순례여정 역시 흡사한 구조입니다.

 

피정자들에게 늘 묻는 물음입니다. 참으로 현실성을 띠는 절박한 물음입니다. 저는 스스로 물으며 남은 순례여정을 죽음의 귀가준비와 연관시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려는 각오를 새로이 하곤 합니다.

 

1.“일일일생, 내 삶을 하루로 압축하면 어느 지점에 즉, 오전 또는 오후 몇 시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요?” 하는 물음입니다.

2.“일년사계, 내 삶을 일년 사계절로 압축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 위치해 있겠는지요? ”하는 물음입니다. 모두가 웃지만 잠시후는 숙연해 지는 분위기입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은 순례여정의 모범입니다. 우리 각자가 순례여정중의 순례자요 구도자요 수행자입니다. 어떻게 성공적 순례여정의 삶을 마치고 최종 목적지인 아버지의 집에 영광스럽게 귀가할 수 있겠는지 그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참 많이 나눴던 순례여정의 필수요소 넷입니다.

 

첫째, 하느님 목적지입니다.

궁극의 목적지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의 집입니다. 산티야고 순례여정시 산티야고 대성전이란 목적지가, 또 동방박사들의 순례여정중 아기 예수님 탄생하신 베들레헴이 상징하는 바, 우리 평생순례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하느님입니다.

 

죽음과 더불어 늘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최종목적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입니다. 하여 저는 주저없이 하느님은 우리 삶의 목표, 삶의 방향, 삶의 중심, 삶의 의미라 정의합니다. 

 

도대체 이런 궁극의 목적지가 없는 삶이라면 허무와 무의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 목적지를 향한 삶이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존엄한 인간 품위를 유지하며 살게 합니다. 결코 생각없이 막 함부로 살지 않게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그 먼 동방에서 흔들림 없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음도 탄생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생생한 목표의식때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목표의식이 있어 깨어있는 삶입니다. 삶의 궁극 목표를 잃고, 잊고, 방황하는, 또 잠들어 있는 영혼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구원의 문 하느님이십니다. 모두가 당신을 찾아 순례여정에 오르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그 많은 사람들중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는 동방박사들뿐이었습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베들레헴 지척에 살던 예루살렘의 그 누구도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기에  예수님 탄생을 몰랐습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을 찾아나섰던 이들은 동방박사들뿐이었습니다.

 

둘째, 삶의 이정표입니다.

800km 2000리, 산티야고 순례여정중 곳곳에 이정표였듯이 평생순례여정중 삶의 이정표도 필수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이정표는 무엇입니까? 순례여정중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빨리 가는 것이 답이 아니라 삶의 이정표따라 제방향으로 제대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방박사들에게 삶의 이정표는 무엇이었습니까? 주님의 별이었습니다. 찾아야 발견하는 주님의 별입니다.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보이는 주님의 별이 결코 아닙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주님의 별을 발견한 이들은 주님을 찾는 갈망에 깨어 있던 동방박사들뿐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주님의 별입니다.

 

주님의 별이 상징하는 바 삶의 이정표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의 별은, 삶의 이정표들은 무엇입니까? 깨어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발견되는 주님의 별, 삶의 이정표입니다. 저에게는 성전에서의 매일미사와 매일시편전례기도가 빛나는 삶의 이정표입니다. 

 

집무실의 이콘도, 성화도, 흰올빼미의 깨어있는 눈도, 주변의 신심깊은 도반도, 늘 거기 그 자리의 하늘과 불암산도, 수도원길 하늘길도, 수도원길 하늘 향해 쭉쭉 벋는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들도, 하느님 목적지를 가리키는 주님의 별, 삶의 이정표들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에 깨어 있을 때 발견되는 주님의 별, 삶의 이정표들입니다.

 

셋째, 도반입니다.

동방박사들은 혼자가 아닌 함께 였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 갑니다. 함께 읽는 도반들이 있어 계속 쓰는 매일 강론이지 제 혼자 읽는 강론이었다면 벌써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카스팔, 발타살, 멜키올 동방박사들 이름입니다.

 

예전 캐나다 밴쿠버 성당에서 사순특강차 방문했을 때 주선한 형제가 바로 발타살이었습니다. 형제가 셋인데 동방박사들의 이름을 그대로 아버지가 세례명으로 정해줬다 합니다. 참 기막힌 세례명들이라 감탄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서로 인생 순례 여정에 참 좋은 도반 형제들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함께 했으니 최종 목적지 베들레헴에 가서 예수님을 뵈올 수 있었지 혼자라면 도중 하차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도반은 누구입니까? 부부간에 도반이 되고 있습니까? 도반같은 영적친구가 있습니까? 도반없이 평생 순례 여정은 너무 외롭고 힘들어 불가능합니다. 

 

도반들과 함께 살라고 수도공동체의 형제들입니다. 멀리있는 도반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몸담고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이 도반들입니다. 면담성사때 만나는 형제자매들 역시 저에게는 도반처럼 정답게 느껴지기도 하고 무한한 연민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고의 도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평생 도반 예수님과 우애友愛를, 우정友情을 깊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넷째,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가 깨어 있게 합니다. 깨어 있을 때 발견하는 주님의 별입니다. 깨어 있을 때 하느님도 만나고 삶의 이정표도 잘 발견합니다. 사람 도반, 주님 도반과의 관계를 깊이하여 공동체의 일치를 이루는 것도 기도의 은총입니다. 서로간의 소통과 관계를 깊이 하는데 기도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분명 끊임없이 기도하여 깨어있었기에 주님의 별은 놓치지 않고 주님의 별 인도따라 베들레헴 목적지까지 도착했을 것입니다. 성탄의 깊은 신비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될 수 있었음도 분명 기도의 은총이었을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확장되고 깊어지는 내적시야입니다.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나 하느님 구원 섭리가 온 세상, 온 세상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동방박사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아니었습니까?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인류 가족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전해 주는 신비의 내용도 깊은 기도의 열매임이 분명합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의 경사임을 깨닫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주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바쳤습니다. 새삼 기도의 사람들은 ‘경敬의 사람들’임을 깨닫습니다. 경배敬拜, 경탄敬歎, 경청敬請, 공경恭敬, 경애敬愛, 경건敬虔 등 참 호감이 가는 단어들입니다. 

 

바로 이 ‘경敬’이 사라져 가는 안타까운 경박輕薄한 시대입니다. 참으로 간절하고 항구한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동방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합니다. 바로 기도의 사람들임을 입증하는 구절입니다. 

 

최종 목적지 베들레헴에서 주님을 만난 동방박사들 예전의 그들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순례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니라 내적순례여정은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우리의 내적순례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동방박사들과 함께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우리의 참 좋은 예물, 신망애信望愛 셋과 진선미眞善美 셋 전부를 봉헌하는 우리들에게 더 풍부해진 당신의 신망애, 진선미를 선사하시는 참 좋은 주님이십니다. 예전 애송했던 7-8월 만개했던 야생화 ‘메꽃’이란 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느님만 찾는 구도자를 상징하는 메꽃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하늘로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분홍색 소박하게/하늘 사랑 꽃 피어내며

 하늘로 하늘로/오르는 메꽃들!(1997. 7)-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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