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관상과 활동의 조화-2019.1.16.연중 제1주간 수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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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6.연중 제1주간 수요일                                                                              히브2,14-18 마르1,29-39

 

 

하느님 중심의 삶

-관상과 활동의 조화-

 

 

어제에 이어 오늘 역시 강론 주제는 '하느님 중심의 삶-관상과 활동의 조화-' 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삶의 중심을 잡아 주는 기도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하느님만을 찾는 기도의 사람인 우리 수도자의 삶이 이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누누이 강조하는 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고 목표이자 방향인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허물어 질 때 삶은 무질서해고 복잡 혼란해 지며 시끄러워집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바로 섰을 때 삶은 단순해 지고 질서와 균형이 잡힙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하루 삶을 요약합니다. 참으로 분주한 하루입니다. 우선 열병으로 누워있는 시몬의 장모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니 열이 떠나 치유됩니다. 예수님의 치유 활동에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랑의 텃치입니다. 치유받은 후, 시몬의 장모의 모습이 우리에겐 좋은 가르침입니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치유 받자 다시 공동체를 섬기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시몬의 장모입니다. 사랑과 겸손의 섬김입니다. 새삼 우리의 직무는 섬김의 직무 하나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되는 우리 분도 수도 공동체입니다. 

 

이어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바로 안식일이 끝나자 사람들은 병든 이들과 마귀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온갖 병으로부터 치유받고 악령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머무신 집 문앞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어제 주석을 참고하던중 새로운 깨달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머무신 집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주님을 찾아 오는 교회가 진정 살아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 교회라면, 교회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살아 있는 교회인지 심각히 반성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난하고 병들고 자유롭지 못한 이들에게 닫혀 있는, 자기들만을 위한 이기적 집단의 교회라면 결코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신주의로 세상을 성화해야 할 교회가 속화되었다면, 또 세상과 고립단절된 이기적 집단의 폐쇄적 교회라면 선교하는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환대의 우리 요셉 수도원은 교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자부심을 지녀도 좋을 것입니다. 예나 이제나 병든 이들도 많고 마귀들린 이들도 많습니다. 참 위태하고 약한 인간들입니다. 죄도 많고 병도 많고 장애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 참 가난하고 약한 존재인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믿는 모든 이들의 삶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치유자요 구마자로 참 분주한 예수님의 하루의 일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 중심에는 기도가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기도의 샘, 관상의 샘에서 흘러나오는 활동입니다. 이게 옳은 순서입니다. 하여 새벽기도와 미사로 하루를 시작함이 좋습니다. 새벽 일찍 외딴곳에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함으로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으신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고난을 겪으시면서 유혹을 받으셨지만 기도하셨기에 유혹에 빠지진 않으셨습니다. 하여 유혹을 받는 우리들을 도와 주실 수가 있습니다. 

 

수도원을 영적 주유소, 영적 충전소라 일컫던 어느 교구사제의 말도 생각이 납니다. 기도해야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주님의 도움도 받을 수 있습니다. 분별의 지혜도 기도의 열매입니다. 유혹은 끊임없이 소리없이 옵니다. 하여 주님의 기도 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해달라는 주님의 은총과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시몬과 그 일행은 본의 아니게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치유활동, 구마활동은 끝이 없습니다. 관상과 활동의 균형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 중심을 확고히 한 주님의 분별입니다. 떠날 때 잘 떠나게 하는 지혜로운 분별입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은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 온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새삼 부각되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를 쫓아내심으로 그 사명을 다하십니다. 복음 선포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가 치유와 구마 기적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영육의 질병을 치유해 주시며 악령들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끝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좌우명 시중, 관상과 활동이 조화된 하느님 중심의 삶을 고백한 다음 내용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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