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최고의 명약이다 -우연은 없다-2019.1.17.목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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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7.목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히브3,7-14 마르1,40-45

 

 

희망이 최고의 명약이다

-우연은 없다-

 

 

희망이 최고의 명약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희망하는 자에게 기회가 옵니다. 희망이, 꿈이, 비전이, 갈망이, 열정이 없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희망의 빛, 희망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희망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희망 없으면 육적 본능만 남아 다들 거칠어지고 사나워집니다. 타락하기도 쉽습니다.

 

인생은 사랑의 학교라 하는데, 저는 인생을 믿음의 학교, 희망의 학교라 칭하고 싶습니다. 인생은 평생 희망을, 믿음을, 사랑을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평생학교입니다. 평생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평생공부해야 하는 평생학인입니다.

 

저는 우선 순위의 맨 처음에 오는 것이 희망이라 봅니다. 희망이 있을 때 믿음도 사랑도 살아납니다. 또 희망, 믿음, 사랑은 함께 간다고 봅니다. 셋이자 하나입니다. 과연 우리의 신망애의 궁극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신망애의 궁극의 대상입니다. 날로 하느님과 깊어지는 희망의 관계, 믿음의 관계, 사랑의 관계입니까? 하느님께 대한 신망애는 그대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향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궁극의 신망애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와 더불어 깊어가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은 무엇보다 희망에 대한 묵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과연 희망을 지니고 힘차게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요즘 참 주변 사방을 봐도 희망을 찾기가 힘듭니다. 만나는 이들을 봐도 대부분 그러합니다. 또 주님께 희망을 두고 행복한 임종을 맞이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요? 유비무환입니다. 평소에 주님과 신망애 관계를 깊이해 두는 것이 정말 삶의 지혜입니다.

 

새벽에 한 젊은이로부터 짧은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희망없는 세상에 기적처럼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무엇을 위해 하루를 지내는가? 생존이란 희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신앙이 있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온갖 수모를 참아내며 끈질기게 살아가는 젊은이입니다. 그렇습니다. 궁극의 희망의 대상은 하느님뿐입니다. 시편저자도 영원토록 네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 합니다. 분도 성인도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 실망하지 말라 하십니다. 

 

좌우간 절망, 실망, 원망의 삼망三望은 믿는 이들에게는 정말 어울리지 않습니다. 삼망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 감동, 감탄의 삼감三感의 삶을, 상쾌, 유쾌, 통쾌의 삼쾌三快의 낙관적 긍정적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내용입니다. 나병이야말로 불치의 병으로 절망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역시 불치의 병으로 절망중에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그러나 오늘 복음의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의 상황중에도 끊임없이 주님을 찾았던, 주님께 희망을 두고 살았던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그 많은 나병환자중 이 한 사람만이 주님을 만났고 또 치유받았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언젠가의 갑작스런 우연한 만남은 없습니다. 평소에 꾸준히 키워가야할 주님께 대한 희망, 믿음,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날로 깊어져야 할 주님과 희망의 관계, 믿음의 관계, 사랑의 관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는 희망이 무르익어 때가 되자 주님을 만납니다. 당신께 희망을 두고 끊임없이 찾는 이에게 주님은 오십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대로 나병환자의 주님께 대한 간절한 희망과 믿음의 고백이자 기도입니다.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희망과 신뢰가 치유의 전제조건이 됩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치유의 기적은 없습니다. 주님의 치유의 과정이 좋은 깨달음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마르1,41-42)

 

나병환자의 간절한 희망과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1.가엾은 마음, 2.사랑의 텃치, 3.능력의 말씀 셋이 하나가 되어 응답됐을 때 치유의 기적입니다. 상쾌, 통쾌, 유쾌의 삼쾌의 치유기적입니다. 우리가 약한 이웃이나 환자를 대할 때의 자세도 배우니 즉 가엾은 마음, 사랑의 텃치, 그리고 진정성 가득한 말입니다.

 

결코 우연한 치유의 기적이 아닙니다. 나병환자의 간절한 희망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평소 주님과 희망의 관계, 믿음의 관계, 사랑의 관계를 깊이해가는 삶의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고립단절되어 살던 나병환자는 원래의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고 이어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이 치유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반응도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주님은 열광의 대상이나 초점이 되는 유혹의 순간, 지체없이 지혜롭게 피하십니다. 이런 위기를 감지하자 즉시 고을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궁극의 삶의 중심지는 아버지를 만나는 외딴곳의 안식처였음을 봅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 필히 구체적으로 지녀야 할 주님을 만나는 삶의 중심지, 외딴곳의 안식처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줄기차게 그분께 모여드니 주님은 모두의 중심이자 안식처요, 피난처임을 입증합니다.

 

오늘 제1독서 히브리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강조되는 바, 오늘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우리는 날마다 서로 격려하고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생생한 희망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동료가 되어 살 때, 완고한 마음이 아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 주님과 함께 안식처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수도승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105세까지 사신 불가사의의 인물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날마다 주님 안에서 ‘영원한 오늘’의 안식을 사셨기에 이런 건강한 장수의 삶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날로 당신과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 관계를 깊게 해 주시며, 영원한 안식처인 당신 안에서 날마다 영원한 오늘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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