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자유인 -하느님은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2019.1.22.연중 제2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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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연중 제2주간 화요일                                                                          히브6,10-20 마르2,23-28

 

 

 

참 자유인

-하느님은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

 

 

 

“시는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 30년 시를 지어온 나희덕 시인의 고백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시와 사랑으로 하나된 운명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 “강론은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 저 역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닻이자 돛이자 덫인 시없는 시인을 상상할 수 없듯이, 닻이자 돛이자 덫인 하느님 없는, 강론 없는 사제는, 저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 참으로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다.” 구체적으로 성부 하느님은 닻이고 성자 예수님은 돛이며 성령은 덫입니다. 참 행복한 하느님과 사랑으로 하나된 운명에 대한 복된 고백입니다. ‘닻, 돛, 덫’, 비슷한 듯 하면서도 아주 다르고 독특한 우리 말의 뜻과 어감이 참 고맙습니다.

 

하느님은 정주와 희망의 닻이자, 제대로 방향을 찾아가게 하는 돛이며, 평생 내내 하느님에게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는 덫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수도승뿐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고백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인용된 다윗,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님, 히브리서에 인용된 아브라함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희망은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히브리서의 고백이 고맙습니다. 희망의 닻은 하느님의 닻입니다. 하느님의 닻인 희망의 닻따라 갈 때 예수님처럼 천상의 지성소, 하느님께 다가갑니다. 이미 아브라함 역시 믿음과 인내로서 희망의 닻, 하느님의 닻따라 천상의 지성소, 하느님께 이르신 분입니다.

 

하느님이 그들의 닻이자 돛이자 덫이 된 이들이 참 자유인입니다. 예수님이 다윗이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든 성인들이 그러했습니다. 복음 사가 마르꼬는 예수님을 바리사이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처신의 다윗과 비교합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되는 제사빵을 먹지 않았느냐?”

 

이런 다윗과 같이 똑같은 자유를 누린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John Shea)의 주석이 참신한 충격이었고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자유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신뢰한다는 확신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느님께서 나를 신뢰하신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바로 이것이 다윗과 아브라함은 물론 예수님의 참 자유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지요! 절대로 무책임하게 함부로, 막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확신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참으로 하느님을 신뢰하는 자는 하느님께서도 그를 신뢰하십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느님께서도 그를 사랑하십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희망하는 자는 하느님께서도 그를 희망하십니다. 우리만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십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닻이자 돛이자 덫일뿐 아니라, 우리 역시 하느님의 닻이자 돛이자 덫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다윗이, 아브라함이 생생한 본보기입니다. 새삼 우리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가면서 참으로 자유로워질 때 우리도 이웃의 닻이 되고, 돛이 되고, 덫이 될 것입니다. 희망과 사랑의 닻, 희망과 사랑의 돛, 희망과 사랑의 덫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신뢰하셨고, 하느님의 신뢰를 확신했기에 바리사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처신입니다. 절대적인 법은 사랑의 법 하나 뿐이요, 나머지는 다 상대적인 법일 뿐입니다. 궁극의 잣대는 사랑의 법, 하나뿐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바로 이것이 절대적 사랑의 법입니다. 그러니 율법의 잣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판단하는 바리사이들은 율법에 눈 먼이들입니다. 율법의 근본 정신 역시 사랑임을 잊는 탓입니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참 사랑의 법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상대적 모든 법이 아닌 사랑의 법으로 판단하면 답은 당장 나옵니다. 율법에 눈이 가려 예수님 제자들의 배고픈 현실을 못본 바리사이들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주님은 사람 사랑이, 주님 사랑이 판별의 잣대임을 선언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예수님은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상황을 바로 잡으십니다. 모든 판단의 중심에는 분별의 잣대인 사랑의 예수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영원한 닻이자 돛이자 덫인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사랑과 희망, 자유의 닻이자 돛이자 덫인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아 참 자유인이 되어 사랑하는 이웃들의 닻이자 돛이자 덫으로 살게 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에페1,17-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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