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 -복음 선포의 사명-2019.1.25.금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25,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1.25.금요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도22,3-16 마르16,15-18

 

 

 

회심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

-복음 선포의 사명-

 

 

 

오늘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지난 1월 2일 사제서품을 받은 왜관수도원의 두 후배 수도사제(이재현 윤일요한, 김태욱 안토니오)와 예전에 잠시 수도원에 머물렀던 대구 대교구의 새 부제(조현필 알렉산델)가 함께 한 새 사제의 첫 미사가 오늘 축일 을 참 풍요롭게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이 참 극적입니다. 순전히 주님 은총의 회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때가 되자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사울에게 개입하십니다. 바오로 사도 이전의 이름이 바로 사울입니다. 

 

주님과 사울의 만남은 언제 읽어도 신선한 충격의 감동입니다. 주님의 큰 빛이 사울을 비추면서 진행되는 두분의 만남입니다. 큰 빛은 주님의 현존을 상징합니다. 빛의 체험과 동시에 주님과 만남의 체험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사울을 마음 깊이 담아 두었는지 깨닫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줄 것이다.”

 

새삼 박해받는 제자들과 일치의 관계에 있는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통해 만나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과 신비로운 만남으로 결정적으로 회심한 사울입니다. 

 

참 비상한 주님과 만남의 은총입니다. 비상한 신비은총만이 아니라, 우리도 알게 모르게 평범한 신비은총의 회심을 통해 끊임없이 주님을 만납니다. 이어 주님은 사울을 당신이 준비한 인물인 하나니아스에게 인도합니다.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용서를 받으십시오.”

 

참 주님의 섭리가 놀랍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늘 사울과 함께 하시다가 때가 되자 결정적 순간에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은총의 선택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과 함께 회심의 여정중에 있습니다. 결코 주님 곁에서 떠날 수 없는 복된 운명의 우리들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두려워마라. 내가 너의 곁에 있다. 걱정하지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너의 힘이 되어준다. 내가 도와준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이사41,10).

“당신의 얼을 떠나 어디로 가오리까. 당신 얼굴 피해 갈 곳 어디오리까. 하늘로 올라가도 주는 계시옵고, 지옥으로 내려가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시편139,7-8)

 

참 많은 분들에게 고백성사시 보속 말씀처방전에 써드린 성구입니다. 세례 받았다 하여 곧장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회심의 여정을 통해 주님과 일치가 깊어지면서 비로소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심의 여정은 주님과 일치의 여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회심의 여정은 주님과 일치의 여정입니다. 나만을 위한 회심이 아니라 복음 선포의 사명이 필수적으로 더불어 주어지는 회심의 여정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을 증언하는 복음선포의 여정과 함께 가는 회심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은 회심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 복음 선포의 여정입니다. 오늘 복음도 예외없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복음 선포의 사명임을 깨닫게 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주님의 지상명령인 복음선포의 사명은 우리는 물론 교회의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내 몸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가 세상의 중심입니다. 내 삶 전체로 주님을 증언하는 복음선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존재론적 복음선포의 삶이라 정의합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런 이들을 봅니다. 말로의 복음선포가 아니라 회심의 여정에 충실함으로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 때 그대로 복음선포의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과 일치된 삶을 통해 주변을 변화시키는 형제자매들을, 마치 주님의 천리향처럼 그리스도의 향기가 된 사람들을 봅니다.

 

“형제님은 걸어다니는 주님의 복음서같습니다.”

“자매님은 날라다니는 주님의 천사같습니다.”

 

서슴없이 찬사를 드린 형제자매도 생각납니다. 사실 회심의 여정과 더불어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저절로 복음선포의 삶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라는 주님과 일치의 절정을 보여주는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제 수도서원 33주년이기도 합니다. 1982년 2월에 수도원에 입회하여 1986년 1월25일 첫서원을 한 후 오늘로서 만3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과연 그동안 회심의 여정에,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복음선포의 여정에 충실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날마다 넘어야 할 첩첩산중의 삶입니다. 아마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잘쓰든 못쓰든 날마다 하루 새벽 강론을 힘껏 쓰고 나면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하루의 산은 넘었다는 안도감이 듭니다. 

 

값싼 은총의 삶은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회심의 여정, 주님과 일치의 여정, 복음 선포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우선 주님의 은총을 청해야 하고 노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심과 더불어 당신과의 일치를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제 마음을 담아 강론을 마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무슨 일에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늘 그러했듯이 지금도 큰 용기를 가지고 살든지 죽든지 통틀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립1,20-21ㄱ). 아멘.

 


Articles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