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수님의 참가족인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2019.1.29.연중 제3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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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9.연중 제3주간 화요일                                                                           히브10,1-10 마르3,31-35

 

 

 

누가 예수님의 참가족인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누가 예수님의 참 가족인가?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답은 하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참 가족인 ‘내부자insider’에 속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외부자outsider’에 속합니다.

 

그런데 의문이 있습니다. 세례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의 ‘내부자insider’에 속한다 해도 냉담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데 예수님의 참가족이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밖에 있는 ‘외부자outsider’라 해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예수님의 참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내부자와 외부자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그가 어디에 살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그가 진정 ‘내부자insider’이며, 그가 어디에 살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을 때 그는 ‘외부자outsider’라는 것입니다. 결코 교회에, 수도원에 속한다 하여 전부가 내부자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그렇다면 불교에 속한다 해도 그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예수님의 참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힌두의 성자, 간디는 20세기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라 합니다. 간디는 교회의 속하지 않은 외부자였지만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고, 산상수훈 말씀을 곧이 곧대로 실천함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했습니다. 타종교인의 외부자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했던 이들이 우리 내부자들인 그리스도 신자들에겐 끝없는 도전이자 자극이 됩니다.

 

어제 읽은 불교의 잡보장경雜寶藏經에 나오는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아무 재산이 없더라도 남에게 줄 수 있는 7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1.부드럽고 환한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2.사랑, 칭찬, 위로, 격려, 양보의 부드럽고 친절한 말의 언시言施, 3.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는 심시心施, 4.호의를 담은 눈빛으로 사람을 보는 안시眼施, 5.짐을 들어준다거나 하는 몸으로 때우는 신시身施, 6.자리를 내주어 양보하는 좌시坐施, 7.상대의 속을 헤아려 도와 주는 찰시察施등 얼마나 섬세한 이웃 사랑의 표현인 무재칠시인지요.

 

주님은 나를 믿으라 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나를 사랑하라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 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함은 비상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조계사 방문시 함께 식사한 시각장애인이지만 정치학 박사로 독실한 미영순 불자 보살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에서 첫눈에 띈 보살님의 5계戒 6원願입니다. 

 

5계戒-1.일탈을 멋으로 알지 말자, 2.이익에 너무 영리하지 말자, 3.삼가하기에 게으르지 말자, 4.사과하기를 주저하지 말자, 5.오해를 이해라고 착각하지 말자.

 

6원願-1.내 생명에 빚을 남기지 않게 하소서, 2.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3.늘 하심할 수 있게 하소서, 4.생명있는 자, 기아의 애달픔을 없게 하소서, 5.생명있는 자, 병통의 고달픔을 없게 하소서, 6.사람인 자, 무학의 서글픔을 모르게 하소서. 뒤늦게 발견한 보살님의 고백이 감동적입니다.

 

“난 언제나 웃을 수 있었다. 실명했기 때문에 울어본 일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 늘 최선과 최상만을 생각했다. 실명이 곧 좌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깊고 넓은 사유의 세계가 주어졌음을 고마워했다. 잃은 것만큼의 보상이 마련되어 있는 세상의 공평함에 늘 감탄하며 지냈다.”

 

외부자인 불자이지만 어찌 이런 이를 진짜 내부자인 예수님의 참가족이라 할 수 없겠는지요.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한 5계 6원이기 때문입니다. 불교 식당에서 읽은 우리로 말하면 식사전 기도와 같은 오관계五觀戒가 색다른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읽을 때 마다 새롭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計功多少量彼來處(계공다소양피래처)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忖己德行全缺應供(촌기덕행전결응공)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放心離過貪等爲宗(방심이과탐등위종)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아正思良藥爲療形枯(정사양약위료형고)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爲成道業應受此食(위성도업응수차식).-

 

사랑의 진리를 실천하고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음식을 받는다니 얼마나 숭고한 자세인지요.

 

과연 이런 외부자이면서 내부자인 예수님의 참가족 같은 불자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는 내부자로서 참으로 내부자답게 예수님의 참 가족으로 살고 있는지요.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새롭게 마음에 새깁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기도많이 한다고, 신심활동에 충실하다고, 강론을 잘 한다고, 봉사활동에 충실하다고, 성독수행에 충실하다고, 규칙을 잘 지킨다고 예수님의 참가족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참가족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 장면에서 성모님은 외부자처럼 보이지만 성모님이야말로 참으로 내부자이자 예수님 참가족의 모범임을 우리은 이미 익히 알고 있습니다. 평생,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피하지 않고, ‘아멘’과 ‘예스’로 아드님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성모님이셨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부전자전이 아닌 모전자전母傳子傳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후렴이, 히브리서가 참가족의 중심인 예수님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의 성화은총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한 성화은총으로 우리 모두 항구히, 충실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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