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 큰 사랑, 큰 사람 -하느님 중심의 삶-2019.2.3.연중 제4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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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3.연중 제4주일                                                              예레1,4-5.17-19 1코린12,31-13,13 루카4,21-30

 

 

 

큰 산, 큰 사랑, 큰 사람

-하느님 중심의 삶-

 

 

어제 수도원에는 경사가 있었습니다. 봉헌축일에 하느님이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바로 김상엽 레오 형제가 수도원에 입회한 것입니다. 손이 없던 집안에 오랜만에 득남한 듯 레오 형제의 가족도 함께한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축제 분위기 같은 점심 식탁 자리였습니다. 작은 공동체인 수도원도 내적으로는 불암산 같은 큰 산 공동체가된 느낌입니다. 260만의 작은 나라 카타르가 아세안 축구 경기에서 강호 일본을 3:1로 격파하고 우승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작은 나라가 내적으로는 큰 나라임을 증명했습니다.

 

레오 형제의 어머님이 “큰 신부님에게 드린다”며 선물한 과타루페 묵주도 고마웠습니다. 무엇보다 “큰 신부”란 오랜만에 들은 말마디가 반가웠습니다. 하여 즉시 소감을 게시판에 써 붙였습니다.

 

-“‘노老 신부’가 아니라 ‘큰大 신부’란다! 큰 신부답게 살자. 몸이 커서 큰 신부가 아니라, 마음이 커서, 사랑이 커서 큰 신부겠지.” 쓴 다음 예전 써놓았던 ‘큰 산’이란 짧은 자작시를 써넣었습니다.

 

“아/크다/깊다/고요하다/저녁 불암산!”-

 

더불어 '깊고, 쉽고, 아름답고, 울림이 있다.'는 어느 신학자의 제 강론평에 고무됐던 적도 생각이 납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언제 봐도 새롭고 정다운 불암산 '큰 산'입니다. 예전에 자작 애송시 ‘가을 산’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산에/갈수도 없다

 산을/가져올 수도 없다

 이 좋은/가을날!

 아예/산되어 살기로 했다

 단풍물든/장엄한/가을 산으로

 사랑하는 이여/놀러오지 않으련

 넉넉하고 편안한/가을 산/큰 산/내 품으로!”-1999.10.26

 

아, 20년전 시입니다. 여기에 첨가한 시작노트도 재미있어 나눕니다.

 

“단풍 물든 장엄한 가을 산을 좋아하지 않을 자 누구이겠는가? 그 좋은 가을날 휴가도 못가고 참 답답했다. 불암산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던 중 문득 떠오른 시이다. 시란 짜내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줍는 은총의 선물이다. 산에 갈 수도, 산을 가져올 수도 없으니, 아예 정주의 산되어 살기로 작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사랑하는 이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산같은 마음으로 쓴 시이다. 지금도 산이 그리울 때는 즉시 산이 되어 산다. 산이 산을 찾아갈 수는 없지 않나?”

 

‘큰 신부님’이란 말마디에서 연상되어 떠오른 큰 산, 큰 사람, 큰 사랑이란 말마디입니다. 내일이면 입춘, 봄의 시작을 앞두고 밖에는 보슬비가 내립니다. 더불어 떠오른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란 자작 애송시입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봄비!/하늘 은총

 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이름은 무조건/봄비로 하겠다.”-2005.3-

 

14년전 써놓은 시이네요.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봄비같은 사랑이 큰 사랑입니다. 몸이 커서 큰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사랑으로 커서 큰 사랑, 큰 사람입니다. 바로 성경의 사람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독서의 예레미야, 바오로가 큰 사람, 큰 사랑의 모범입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전념하여 하느님을 닮아갈 때 이런 큰 산같은 큰 사람, 큰 사랑, 큰 신부이겠습니다. 

 

휴대폰을 켜니 ‘(미세미세)남양주시 별내동-매우 나쁨, 위험합니다! 외출을 삼가세요.’ 알림 문자가 떠오릅니다. 공기는 미세먼지로 많이 오염되었어도 큰 산같은 큰 사랑의 큰 사람 마음은 언제나 청정淸淨한 무공해 마음일 것입니다. 지난 밤 도착한 가톡 메시지, “신부님, 감사해요, 거기 그대로 계셔 주세요!” 산처럼 그 자리 있어 달라는 메시지에 새삼 제자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처럼, 큰 사람, 큰 사랑으로 살 수 있을까요? 

 

첫째,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두려워하면 집니다. 주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수도원 십자로 바위판에 새겨진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 뒤에는 어김없이 따라오는 말마디가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이 심화될수록 사라지는 두려움입니다. 사면초가, 두려움에 떠는 예레미야를 격려하는 주님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모태에서 나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이제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라.---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벽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배경이 되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어 우리 모두 두려움 없이 주님의 전사가, 주님의 용사가 되어 영적전쟁을 수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두려워하지 마시고, ‘화이팅!’ 힘내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하십시오.

두려움을 몰아내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평생 배워 공부해야 할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할 때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하느님은 샘솟는 사랑의 원천입니다. 사랑보다 영적전쟁에 좋은 무기도 없습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사랑의 승리입니다. 오늘 바오로의 말씀은 사랑의 찬가가 아니라 분열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린토 교회 신도들을 위한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정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좋은 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사랑은 개념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란 불가의 말도 있듯이 가진 것 없어도 사랑은 끝없이 할 수 있습니다. 정작 품위있고 아름다운 사람은 내적 부요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끝없는 사랑 공부가 평생 공부입니다. 사랑하면서 몸은 작아도 마음은 커져 큰 산같은 큰 사람이 됩니다. 사랑은 애매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1.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2.사랑은 친절합니다. 3.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4.뽐내지 않으며, 5.교만하지 않습니다. 6.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7.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8.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9.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10.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위 열가지 사항에 걸쳐 자신의 사랑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스러져도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 희망, 사랑은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이 사랑입니다. 큰 산같은 큰 사람은 바로 큰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하느님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 마음의 순수에 순수한 사랑이요 겸손과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나자렛 고향 사람들이 바로 회개의 대상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바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기근이 들렸을 때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았지만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 엘리야야의 예를 들면서,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진 예를 들면서, 회개를 촉구하지만 마이동풍, 우이독경입니다. 오히려 화가 잔뜩 나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마지막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바로 예수님 삶의 요약입니다. 예수님처럼 위기상황에서도 하느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나아갈 때 통과입니다. 아무도 이처럼 큰 사랑, 큰 사람의 하느님 향한 진로를 막을 수 없습니다. 

 

회개의 여정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입니다. 회개의 일상화를 통해 큰 사랑, 큰 사람으로의 끊임없는 내적성장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회개의 은총입니다. 연중 제4주일, 주님은 우리 모두 큰 산같은 큰 사랑, 큰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사랑하십시오.

3.회개하십시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내적으로 큰 산같은 큰 사랑, 큰 사람으로 성장, 성숙시켜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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